箕山之節(기산지절) 箕山之節(기산지절) 한대 설방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하루는 한나라 조정에서 그를 초빙하기 위해 사자를 보내 왔다. 그러나 설방은 정계로 진출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므로 거절하며 말했다. "요 임금과 순 임금 때는 그 아래 허유와 소보가 있었습니다. 지금 위에 계신 임금께서는 요순.. 글,문학/故事成語 2013.06.25
驥服鹽車(기복염거) 驥服鹽車(기복염거) 백락(伯樂)은 주(周)나라 때 사람으로 말을 감정하는데 도가 튼 명인(名人) 이었다. 그가 훌륭한 말이라고 판정해 버리면 그 말 값이 하루아침에 열곱절은 쉽게 뛰었다. 그래서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말이 생겼다. 명마가 백락을 만나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으로 알아.. 글,문학/故事成語 2013.06.24
騎虎之勢(기호지세) 騎虎之勢(기호지세) 이 말은 수나라 문제(文帝) 양견(楊堅)의 아내인 독고황후(獨孤皇后)가 남편을 격려하여 왕위를 차지하게 하는 말 가운데 "大事己然 騎虎之勢 不得下 勉之(큰일은 이미 기호지세가 되고 말았으니 도중에 내릴 수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세요.)"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 글,문학/故事成語 2013.06.24
지상병담(紙上兵談) 지상병담(紙上兵談) 전국시대 조나라에 조사(趙奢)라는 명장이 있었다. 병법에 능통 할 뿐 만 아니라 무공이 특출해 조나라 혜문왕은 마복군(馬服君)이라는 중책에 봉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조괄(趙括)은 일찍이 병서를 가까이 하여 병법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아비인 조사가 자식.. 글,문학/故事成語 2013.06.23
와각지쟁(蝸角之爭) 와각지쟁(蝸角之爭) 전국시대, 양(梁:魏)나라 혜왕(惠王)은 중신들과 맹약을 깬 제(齊)나라 위왕(威王)에 대한 응징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혜왕은 재상 혜자(惠子)가 데려온 대진인(戴晉人)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대진인은 도가자류(道家者流)의 현인(賢人)답게 이.. 글,문학/故事成語 2013.06.23
발호(跋扈) 발호(跋扈) 한(韓)나라가 외척들과 환관들 때문에 멸망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외척 중에서 10대 순제(順帝)의 황후의 형인 양기(梁冀)란 자가 20년간에 걸쳐 실권을 장악하고 횡포를 부렸다. 그는 순제가 죽자, 겨우 두 살짜리 조카를 충제(沖帝)에 즉위시켰고,1년 후에 여.. 글,문학/故事成語 2013.06.22
쾌도난마(快刀亂麻) 쾌도난마(快刀亂麻) 남북조(南北朝)시대 북제(北齊)의 창시자 고환(高歡)은 漢族으로 그의 부하도 대부분 북방 변경지대의 선비족(鮮卑族)이었다. 선비족의 군사는 난폭했지만 전투에는 용감했기 때문에 고환은 이러한 선비족 군사의 힘을 배경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환은 아들.. 글,문학/故事成語 2013.06.22
삼년불비(三年不飛) 삼년불비(三年不飛) 춘추시대 초엽, 오패(五패)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장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 과인을 간하는 자는 사형(死刑)에 처할 것이오." 그 후 장왕은 3년간에 걸쳐 국정은.. 글,문학/故事成語 2013.06.21
구밀복검(口蜜腹劍) 구밀복검(口蜜腹劍) 당(唐)나라 현종(玄宗: 712∼756) 후기에 이림보(李林甫)라는 재상이 있었다. 장량과 제갈량, 강태공 등이 좋은 방면의 모사(謀士)였다면, 그는 태자 이하 그 유명한 무장(武將) 안록산(安祿山)까지 두려워했던 전형적인 궁중 정치가(宮中政治家)로 간사하기로는 조조와 .. 글,문학/故事成語 2013.06.21
남상(濫觴) 남상(濫觴) 공자의 제자에 자로(子路)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공자에게 사랑도 가장 많이 받았지만 꾸중도 누구보다 많이 듣던 제자였다. 어쨌든 그는 성질이 용맹하고 행동이 거친 탓에 무엇을 하든 남의 눈에 잘 띄었다. 어느 날 자로가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나자 공자는 말했다. "양.. 글,문학/故事成語 2013.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