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故事成語

구밀복검(口蜜腹劍)

淸潭 2013. 6. 21. 10:03

구밀복검(口蜜腹劍)

당(唐)나라 현종(玄宗: 712∼756) 후기에 이림보(李林甫)라는 재상이 있었다. 장량과 제갈량, 강태공 등이 좋은 방면의 모사(謀士)였다면, 그는 태자 이하 그 유명한 무장(武將) 안록산(安祿山)까지 두려워했던 전형적인 궁중 정치가(宮中政治家)로 간사하기로는 조조와 필적할 인물이나 조조는 대인(大人)에 속하지만 임보는 소인 (小人) 가운데 소인(小人)이었다.

뇌물로 환관과 후궁들의 환심을 사는 한편 현종에게 아첨하여 마침내 재상이 된 그는, 당시 양귀비(楊貴妃)에게 빠져 정사(政事) 를 멀리하는 현종의 유흥을 부추기며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만약 바른말을 하는 충신이나 자신의 권위에 위협적인 신하가 나타나면 가차없이 제거했다. 그런데 그가 정적을 제거할 때에는 먼저 상대방을 한껏 추켜올린 다음 뒤통수를 치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수법을 썼기 때문에 특히 벼슬아치들은 모두 이림보를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림보는 '입으로 꿀 같은 말을 하지만 뱃속에는 무서운 칼이 들어 있다[口蜜腹劍]."

당나라를 뒤엎을 만한 반란을 일으켰던 안록산도 이임보가 두려워 그가 죽은 지 3년 후에 반란을 일으킬 만큼 그를 두려워했다.

《십팔사략 (十八史略)》에 기록된 이임보의 평(評)을 보면

이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口蜜腹劍]' 라고 말했다.

서재에 앉아 깊이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다음은 반드시 주살(誅殺)이 있었으며 가끔 큰 옥사를 일으켰다. 태자로부터 이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두려워 했다.

재상 지위에 있던 19년 동안에 천하의 난리를 길러내었으나, 현종(玄宗)은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안록산도 이임보의 술수를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그의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글,문학 > 故事成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쾌도난마(快刀亂麻)  (0) 2013.06.22
삼년불비(三年不飛)   (0) 2013.06.21
남상(濫觴)   (0) 2013.06.21
약롱중물(藥籠中物)  (0) 2013.06.20
포호빙하(暴虎馮河)   (0) 201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