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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파견 100년…‘열사3인’의 발자취

淸潭 2007. 2. 17. 16:27
헤이그 특사파견 100년…‘열사3인’의 발자취



100년 전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 상원 의사당 건물. 한 달이 넘도록 먼 길을 달려왔건만 열사들은 끝내 이 건물의 문을 열지 못했다. 헤이그=금동근 특파원

조국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나선 3인의 대장정은 멀고 먼 고난의 행로였다.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고 한 명은 낯선 땅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지만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에 선포한 그들의 단심(丹心)은 100년이 흐른 지금도 시들지 않았다.

 

올해는 1907년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은 이준 열사 등 3인이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려 네덜란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됐던 ‘헤이그 특사 파견’ 100주년이다.

 

뜻 깊은 해를 맞아 동아일보는 돌아오지 못한 길을 떠난 이준 열사의 궤적을 좇는 답사 프로그램 ‘열사의 길을 따라서’를 비롯해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100년 전의 역사와 현재의 만남을 준비하며 본보는 헤이그 현지에서 열사들의 발자취를 좇아가 봤다.

 

헤이그의 덴하흐 HS역. 4월 22일 서울을 출발한 이준 열사가 5월 하순 러시아에서 합류한 이위종 이상설 열사와 함께 한 달이 넘도록 허위허위 먼 길을 달려 도착한 역이다. 지금도 기차역인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열사들의 도착일은 6월 25일. 만국평화회의가 개막한 지 10일이나 지난 뒤였다. 뒤늦게 도착해 마음이 얼마나 초조했을까. 인파 사이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세 열사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기차역 정면으로 난 길을 따라 시내로 향했다. 100년 전 열사들도 이 길을 걸었다. 1km도 채 안 되는 지점에 ‘이준 열사 기념관(이준 평화 박물관)’이 보인다. 100년 전 ‘드용’이라는 호텔이었던 곳. 세 열사가 묵었던 숙소다. 3층짜리 작은 건물. 호텔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했다.

 

지금은 2, 3층이 기념관이다. 교민 이기항(70) 송창주(67) 씨 부부가 건물을 사들여 1995년 기념관으로 재단장했다. 이 기념관은 이 씨 부부가 모은 자료로 가득했다. 당시 열사들의 활동을 보도한 ‘만국평화회의보’, 열사들이 배포한 호소문, 스즈키 일본 특명전권대사가 본국으로 타전한 전보 등 귀중한 자료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쪽 구석에는 1999년 한 일본인 교수가 “용서를 구한다”며 보내 온 종이학 1000마리가 걸려 있었다.

 

호텔에 여장을 푼 다음 날인 6월 26일, 열사들은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요청했지만 “초청장이 없으니 참석할 수 없다”는 싸늘한 대답만 돌아왔다.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곳은 현재 상원 의사당으로 쓰인다. 멀리서도 첨탑 2개가 눈에 띄었다. 마치 작은 교회당 같다.

 

기자가 갔을 때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100년 전 세 열사도 끝내 이 문을 열지 못했다. 회의장 앞 광장에서 통한의 눈물을 삼켰을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대로 물러설 수 없던 열사들은 호소문을 돌렸고, 7월 8일 국제기자클럽에 초청받아 작은 연설회를 열었다. 운하 옆에 있는 국제기자클럽 건물은 지금도 그때 모습 그대로다. 다락방까지 포함해도 3층밖에 안 되는 이 작은 건물은 오늘날 사무용 빌딩으로 쓰인다.

 

연설회를 통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희망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 비극이 발생했다.

7월 14일. 이준 열사가 숙소에서 숨을 거뒀다. 기념관에서 열사의 유해 운구 소식을 보도한 만국평화회의보 7월 17일자를 보니 당시의 쓸쓸한 정황이 지금도 가슴을 저민다.

 

“유해를 뒤따르던 친구(이상설)가 아는 유일한 영어 단어는 ‘So sad, so sad(매우 슬프고 슬프다)’였다. 그가 많은 단어를 알았더라도 감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순 없었을 것이다….”

 

열사의 유해는 56년간 헤이그 시 외곽의 묘지에 묻혀 있다가 1963년에야 한국으로 옮겨졌다. 열사의 묘적지에는 이제 흉상과 비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추모의 발길은 지금도 이어졌다. 기자가 찾은 날도 묘지 입구와 제단 꽃병에는 누군가 방금 갖다 놓은 듯 새하얀 국화가 놓여 있었다.

 

헤이그=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