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도 당했다...한 해 24명 목숨 앗아간 길 위의 무법자 '킥라니'
[편집자주] 전동킥보드의 보도 주행은 불법이다. 면허증 없이 타는 것도 금지돼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전동킥보드가 무면허로 보도를 질주하며 보행자들을 위협한다. 한때 차세대 이동수단으로 각광받은 전동킥보드가 이젠 도로 위의 시한폭탄으로 전락했다. 보행자와 전동킥보드 이용자가 안전하게 공존할 방법을 찾아본다.[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20일 서울시내 거리에 공유 전동킥보드가 주차돼 있다. 정부는 이달부터 올 연말까지 전동킥보드 주행 최고속도를 시속 25㎞에서 20㎞로 낮추는 시범운영 사업을 시행하고, 다음 달 말까지 안전모 미착용 등 안전수칙 위반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실시한다. 2024.08.20. kgb@newsis.com /사진=김금보
#1.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9월쯤 자택 인근에서 달리는 전동 킥보드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9월26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도로교통법상 전동 킥보드는 원동기장치 자전거에 속하는 차로 운전면허증이 필요하다"며 "법을 준수하는 산업의 활성화를 장려하되 이를 어기고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는 공존을 위해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당시 사고를 계기로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2. 방탄소년단(BTS)의 슈가(본명 민윤기)가 지난 8월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도로에서 취중 전동 스쿠터를 몰다 넘어진 채 경찰에 발견됐다. 슈가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보완하는 차세대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기대를 모았던 전동 킥보드와 전동 스쿠터가 어느새 '도로 위의 골칫덩어리'가 돼 버렸다. 전동 킥보드와 전동 스쿠터 모두 법적으로 보도 주행이 금지돼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곳곳에서 불쑥 나타나 사고를 일으키는 탓에 킥보드와 고라니를 합친 '킥라니'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보행자와 이용자 모두의 안전을 위해 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개인형 이동장치에 대한 안전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총 5건(임호선·이병진·조인철·정동만·모경종 의원) 발의됐다.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의 최고 속도를 현행 시속 25km에서 시속 20km로 낮추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개인형 이동장치를 운전하는 경우 자동차 음주운전과 동일하게 처벌하며 △대여사업자가 개인형 이동장치를 대여할 때 이용자의 운전 자격을 확인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으로 대부분 지난 21대 국회 때도 발의됐던 법안이다. 이번 국회에서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으나 아직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인형이동수단 이용자와 보행자 등의 안전과 편의를 증진하기 위해 종합시책을 마련하고, 5년 마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관리 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개인형 이동수단의 안전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 제정안(박성민·홍기원 의원)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에 계류돼 있다. 이 제정안은 지난 21대에서 발의돼 국토위를 통과했지만, 업계 이해관계자 등의 반발로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끝내 넘지 못했다.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21대 국회 마지막 법사위에서 업계 이해관계자들이 여러 가지 우려를 제기했고, 경찰청에서는 주차 공간 문제를 두고 이견이 보여서 통과가 안 됐다"며 "사업자 입장에서는 규제를 최소화하면 좋은 것이지만, 법을 규율하는 입장에선 안전이 최우선이라 입장차가 있다"고 말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는 '개인형 이동장치'(PM), 전동 스쿠터는 '원동기장치자전거'로 각각 분류된다. 개인형 이동장치는 시속 25km 미만에서만 전동기가 작동하고, 차체 중량 30kg 미만인 것을 말한다. 시속 25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거나 중량이 30kg을 넘기면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돼 일반적인 오토바이와 유사한 규제를 받게 된다.
어느 쪽이든 보도로는 다닐 수 없다. 현행 법상 개인형 이동장치는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게 원칙이고, 그게 없다면 차도의 우측 가장자리로 다녀야 한다. 원동기장치자전거는 자전거도로도 이용할 수 없고, 차도 우측 가장자리로만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이용자들이 통행이 금지된 보도에서 과속을 일삼으면서 보행자와 주행자 모두가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형 이동장치 관련 교통사고는 총 2389건이었다. 이로 인해 24명이 숨지고 2622명이 부상을 입었다. 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치사율은 개인형 이동장치 관련 사고에서 5.6%를 기록했다. 같은 해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 1.3%의 약 4.3배에 달한다.
개인형 이동장치 사고 중 가운데 전동 킥보드 등 차와 사람 간 사고의 비율이 46%였다. 전체 차종 기준 차 대 사람 사고 비율인 18.7%의 2배가 훌쩍 넘는다. 일부 전동 킥보드 이용자들이 통행이 금지된 보도를 달리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19일 서울 시내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경찰청은 늦어도 내년 1월까지 유관기관 단체와 협의해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 전용 운전면허 신설과 관련한 합리적 안을 도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재 도로교통법상 공유 전동킥보드는 제2종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 또는 그 이상(제2종 소형·보통면허, 제1종 보통면허 등)의 운전면허 소지자만 이용할 수 있다. 면허 취득 방식으로는 세 가지가 거론된다. 학과시험(필기시험)만 치르거나, 학과와 기능시험(실습시험)을 함께 치르거나, 온라인 교육만 이수하는 방안 등이 있다. 2024.11.1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형 이동장치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윤영희 서울시의원이 서울시에서 제출받은 '개인형 이동장치 대시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서울 시민 75.6%가 '전동 킥보드 운행 금지' 조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지난 9월 15∼69세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79.2%가 전동 킥보드 때문에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통행을 방해하는 전동 킥보드를 바로 수거하는 등 견인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93.5%가 찬성했다.
업계에서는 개인형 이동장치가 금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인사는 "정부·지자체·국회가 손 놓고 있는 사이 개인형 이동장치가 골칫덩이가 된 것인데 여론이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금지하겠다고 한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그는 서울시가 최근 '킥보드 없는 거리' 시범 운영 지구를 설정하겠다고 밝힌 일을 사례로 들었다.
실제 해외에는 공유 전동 킥보드를 퇴출시킨 도시도 있다. 호주 멜버른은 지난 8월 시의회에서 안전을 이유로 공유 전동 킥보드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멜버른은 2002년 2월 공유 전동킥보드를 도입해 2년간 시범 운행했었다. 앞서 프랑스 파리도 지난해 9월 주민투표를 통해 공유 전동 킥보드를 금지시켰다.
한국PM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안전과 비즈니스(산업 육성)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아야 한다. 전체 시장 파이를 키울 생각을 해야 한다"며 "(개인형이동수단) 면허도 원동기 면허가 아니라 전동 킥보드 면허를 만들고 (최고시속도) 헬멧을 쓰지 않도록 15km로 낮춰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규제를 해서 (개인형이동수단이) 못 다니게 하는 건 하수 정책"이라며 "걷기에는 애매한 거리를 연계시켜주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니 제도 안착을 통해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현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개인형 이동수단에 관련된 부처로 경찰청,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부, 행정안전부 등이 있다. 도로 통행에 관해서는 다른 교통수단과 마찬가지로 경찰청이 담당하는 게 타당하지만 이동기기 안전이나 관리에 대해서는 소관 부처가 명확하지 않다"며 "개인형 이동수단 이용이 레저용에서 근거리 교통수단으로 확대되고 있어 안전을 책임지고 관리할 부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