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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팔영(廚蔬八詠)

淸潭 2024. 8. 21. 13:10

사가시집 제13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주소 팔영(廚蔬八詠)

 

토란〔芋〕

병든 입에 일찍이 맞는 게 없었지만 / 病口曾無可

토란만은 일찍 내 공신이 되었으니 / 蹲鴟早策勳

흡사 용연의 향내가 풍겨 오는 듯 / 龍涎香欲動

우유처럼 윤활함도 논할 만하여라 / 牛乳滑堪論

먹을 땐 산승을 본받아 함께 먹고 / 啖擬山僧共

찾아온 손에게 나누어주기도 하네 / 來從野客分

알뜰살뜰히 누가 너를 심을거나 / 殷勤誰種汝

내 또한 전원에 가기만 바라노라 / 我亦望田園

 

고사리〔蕨〕

그 누가 서산의 씨앗을 캐 왔던고 / 誰採西山種

능히 와서 내 눈앞에 가득하구나 / 能來滿眼前

노인의 배를 채우긴 마땅커니와 / 宜充老人腹

소아의 주먹에 비유함도 알겠네 / 解比小兒拳

좋은 맛은 원래에 담박하지만 / 滋味元來淡

맑은 향은 누린내도 안 나누나 / 淸香不染羶

하증은 그 어떤 사람이었기에 / 何曾何似者

한 끼니에 천 전을 허비했던고 / 一食費千錢

 

미나리〔芹〕

미나리는 예로부터 좋은 나물이라 / 芹子由來美

아침 밥상에 국거리도 좋고말고 / 晨盤亦可羹

청니는 오늘날에 심은 곳이요 / 靑泥今日種

벽간은 예전에 있던 이름일세 / 碧澗舊時名

이미 시인의 읊조림엔 들었거니와 / 已入詩人詠

야로의 인정엔 자랑할 만도 했네 / 堪誇野老情

나도 구구한 정성 바치고 싶어라 / 區區吾欲獻

남쪽 처마 밑에 앉아 등을 쬐어서 / 曝背坐南榮

 

배추〔菘〕

청색 백색이 섞인 싱싱한 배추를 / 生菘靑間白

일일이 봄 쟁반에 담아 올리는데 / 一一飣春盤

살살 씹으면 어금니에서 아삭아삭 / 細嚼鳴牙頰

소화를 잘 시켜 폐간에도 좋은 걸 / 能消養肺肝

고기와 맞먹는 거야 누가 알랴만 / 誰知能當肉

밥 많이 먹으라 권할 만도 하구려 / 亦足勸可餐

주랑이 내 마음을 먼저 얻었도다 / 周郞先得我

돌아가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건만 / 歸去亦非難

 

순채〔蓴〕

매끄러운 순채 줄기를 퍽 좋아해 / 絶愛蓴莖滑

가을바람에 흥이 벌써 더하누나 / 秋風興已添

은빛 같은 생선회도 실컷 봤지만 / 飽看銀縷鱠

수정 같은 소금을 쓸 것도 없다오 / 未下水精鹽

젓가락으로 들자도 어찌 떨어지랴 / 擧筯何曾落

군침 흘려라 벌써 식탐을 깨닫겠네 / 流涎已覺饞

굳이 다섯 가지를 한할 필요 없이 / 不須生五恨

가서 계응과 함께하고만 싶구나 / 去欲季鷹參

 

냉이〔薺〕

고기 먹을 상이 원래 없었는지라 / 食肉元無相

봄 식탁에 냉이나물이 향기롭네 / 春廚薺菜香

국에 넣어 끓이면 아주 맛나고 / 和羹能悅口

밥이 더 먹혀 속도 든든하구려 / 佐食足撑腸

보드랍기론 어찌 꼭 우유뿐이랴 / 軟滑何須酪

달기는 사탕수수보다 훨씬 낫네 / 甛甘絶勝糖

손이 오거든 내 자랑하고 싶어라 / 客來吾欲詫

이게 바로 제일가는 고량진미라고 / 第一是膏粱

 

파〔葱〕

오훈을 남들은 경계하는 바이나 / 五葷人所戒

나는 병 때문에 안 먹을 수가 없네 / 我病不能無

하나하나가 황금 같은 뿌리에다 / 箇箇黃金本

더부룩한 백설 같은 수염이로다 / 鬆鬆白雪鬚

약으로 나를 붙든 공은 많거니와 / 多功扶藥餌

맛도 있어 식탁의 입맛을 돋우네 / 有味助庖廚

서 말을 누가 능히 먹을 수 있으랴 / 三斗誰能食

염매보다는 쓰이는 바가 적고말고 / 鹽梅小所須

 

생강〔薑〕

나에게 군신의 약도 있거니 / 我有君臣藥

어찌 자모의 생강이 없을쏜가 / 寧無子母薑

신명을 통하고 악취를 제거하며 / 通神能去穢

매운맛은 향기가 은은히 풍기네 / 帶辣暗生香

공자가 어찌 그만둔 적 있었던가 / 孔聖何曾撤

배생은 어찌하여 먹지 않았던고 / 裴生奈不嘗

누가 알랴 참다운 성질이 있어 / 誰知眞性在

늙을수록 더욱 견강해지는 것을 / 到老愈堅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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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14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화병(畫屛)에 팔 수(首)를 제하다.

 

먼 산에는 하고 많은 절이요 / 遙山多少寺

거룻배에는 두세 사람이로다 / 小艇兩三人

시골 집이 있는 곳은 그 어디멘지 / 何處村家在

사립짝이 물가를 가로질러 섰네 / 柴門枕水濱

 

산이 높으니 달은 따라서 작고 / 山高月仍小

물이 넓으니 배 또한 더디어라 / 水闊舟更遲

돌아보니 강 정자는 저물었는데 / 回首江亭晩

가을 풍광이 시처럼 말끔하구나 / 秋光淡似詩

 

강산은 눈이 온통 다 뒤덮었고 / 江山雪包盡

송죽은 모진 바람에 흔들리는데 / 松竹風擺殘

도롱이 삿갓에 외론 배의 나그네 / 蓑笠孤舟客

돌아가는 길은 날이 퍽 차갑구나 / 歸來天政寒

 

바람이 잠잠해 돛은 막 멈추었고 / 風靜帆初定

강물이 맑아 기럭은 갈앉을 듯하네 / 江淸鴈欲涵

예전 그대로인 그림 속의 풍경에 / 依然畫圖裏

갑자기 강남 땅 고향이 생각나누나 / 忽爾憶江南

 

시골 주막엔 술이 처음 익었고 / 野店酒初熟

강 마을엔 고기가 한창 살졌는데 / 江村魚政肥

어부는 또한 제멋대로 즐겨라 / 漁郞也隨意

가을 흥취가 무궁무진하겠구나 / 秋興重悠悠

 

외론 배는 포구를 가로질러 있고 / 孤舟橫浦口

큰 누각은 산허리를 걸터 섰는데 / 傑閣跨山腰

띠 처마 밑에 서로 마주 앉았으니 / 相對茅檐坐

유유한 시골 흥취가 넉넉하구나 / 悠悠野興饒

 

소낙비는 산을 씻어 지나가고 / 急雨梢山去

거센 바람은 땅을 말아오더니 / 顚風捲地來

앞 강 물결이 이미 사나워진 걸 / 前江浪已惡

보고 문득 낚싯배가 돌아가누나 / 見却釣船廻

 

산 빛은 강을 건너서 멀리 비치고 / 山光渡江去

기럭 그림자는 가을을 띠어 오는데 / 鴈影帶秋來

사람이 떠나서 배는 막 조용하고 / 人去船初靜

모래는 밝고 물은 이끼 빛 같구나 / 沙明水似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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