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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부 장녹수의치마를 밟아 죽다,

淸潭 2020. 2. 11. 10:44

요부 장녹수(張綠水)


조선시대 3대 요부(妖婦)하면 연산군의 장녹수(張綠水) 광해군의 김개시(金介屎) 숙종의 장희빈(張禧嬪) 셋을 꼽는다.
그 중 처음인 장녹수는 장한필(張漢弼)의 서녀로 원래
성불구자로 알려진 제안대군(齊安大君1466-1525)의 종(從-奴婢)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다.
형부 김효손(金孝孫)의 천거로 입궁할 당시 서른으로 추정되니 연산(燕山)보다 다섯 살 정도 연상이다.
실록에는 그녀가 특별한 미녀는 아니나 가무에 사람을 끄는 힘이 대단했다 한다.
연산과의 사이에서는 영수(靈壽)라는 딸 하나를 낳아 연산의 총애를 받았으며
녹수는 묘한 마력으로 왕을 사로잡았다.
어느 때는 왕을 조롱하고 반말도 했지만 연산은 녹수 앞에만 있으면 마냥 즐거워했다고 한다.


 장녹수(張綠水)의 치마를 밟아 죽다


1505년 연산군(燕山君) 11년 11월, 장녹수(張綠水1471-1506)의 위상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유흥을 위해 동원된 기생 중 옥지화(玉池花)라는 여인이

후궁인 장녹수의 치마를 실수로 밟는 사건이 일어났다.
연산군의 기생부대는 계급 구성이 흥청(興靑), 운평(運平), 계평(繼平), 채홍(採紅), 속홍(續紅),

부화(赴和), 치여(治黎) 등인데 옥지화는 운평에 속한 기생이었다.

장녹수가 일렀던지 왕은 신하들을 불러 옥지화를 처벌하도록 했다.
당시는 옳은 말을 하는 신하들이 다 없어진 연산군 말기라서 영의정 이하 대사헌까지 한 명도 참언을 하지 않았다.
결국 같은 노비(奴婢) 출신이지만 하급 기생이 종3품 숙용(從三品 淑容)을 능멸했다는 죄로

옥지화는 참수되었다.


 장녹수(張綠水)의 말로


갈수록 녹수(張綠水)는 교만해지고 청탁이나 청원으로 집에는 인산인해에
재물이 산더미였으며 신하들의 생사여탈권까지 있었다니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다.
연산((燕山1476/94/1506)은 녹수의 아들에게 유모까지 붙여 주고
형부 김효손(金孝孫)은 벼락 승진해 정3품 당상관(正三品 堂上官)까지 올랐으며 말년인
재위 12년에는 공신들로부터 뺏은 토지에 대궐같은 집도 만들게 했다.
그러나 녹수의 입궁이 1502년이었으니 그녀의 권세도 5년을 넘지 못했다.
1506년 9월 1일 중종반정(中宗反正) 다음 날 다른 후궁 전비(田非)와 함께
지금의 시청앞 광장에 끌려가 공개 처형되고
재산은 모두 몰수당했으니 그녀의 나이 35세 안팎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