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께 죄송하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시고 선표하신 것이 1446년이라고 한다. 물론 한글은 오랫동안 한자 문화에 시달리면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글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우수한 많은 학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한글이 반포되던 15세기만 해도 집현전에 선비들이 영어나 불어, 독일어나 스페인어에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세종이 펴낸 한글 28글자에는 ‘F, Th, V, R’ 등에 해당하는 기호가 없어서 전 세계가 서로 소통해야 하는 21세기에 이런 한계 때문에 민망한 생각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세종대왕의 책임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못나서 그렇게 된 것 뿐이다. Fan 과 Pan이 한글로 구분되지 못하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Fan handle이 Panhandle로, Rice 가 Lice 로 둔갑되는 현실을 참고 있는지가 벌써 몇 년째인가. 적폐를 청산한다고 큰 소리 치지 말고 조상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바로잡는 일에 제구실을 다해야 후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법무부 안에 과거사 위원회를 두고 '장자연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고 인력을 동원하여 쑤셔대더니 새로운 범죄 사실이 없다고 판정하고 손들고 나오는 관계자들을 보면서 왜 이런 일에 그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시간이 있고 정력이 있으면 세종대왕께서 다하지 못한 일을 바로 잡아 보겠다고 열을 올려야 마땅한 것이 아닌지, 하는 수 없이 한마디 한다. 오호 통재, 오호통재!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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