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조계종

“종도 뜻 받아들이겠다”…

淸潭 2018. 7. 28. 12:28
“종도 뜻 받아들이겠다”…
설정 스님, 사실상 총무원장 사퇴 표명

  • 최호승
  • 승인 2018.07.27 19:24
  • 호수 1450


7월27일 기자회견서 거취 표명
종단 구성원 뜻 수용의사 밝혀
종헌종법 틀 안에서 퇴진 가닥
‘외부 세력 개입 거부의사’ 해석
이르면 8월 초에는 사퇴 전망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7월27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진=임은호 기자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7월27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진=임은호 기자

설정 스님이 사실상 조계종 총무원장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타종교 성직자를 비롯한 외부 세력의 압력에 의하지 않고 종헌종법의 질서가 존중되고 종단 구성원들의 뜻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설정 스님은 7월27일 오후 3시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시일 내에 사퇴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종정, 원로의원, 교구본사주지, 중앙종회의원, 전국비구니회 등 종단 구성원들이 뜻을 모아주신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설정 스님의 거취 표명은 적폐청산 시민연대를 비롯한 타종교인, 사회 인사 등 외부의 압박을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의지표명으로 읽힌다. 실제 설정 스님은 종단 운영 근간인 종헌종법 질서를 존중하고 종단 주요 구성원들의 뜻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설정 스님은 “종단 내부의 자율적 운영체계인 종헌종법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동규범”이라며 “종헌종법 질서를 부정하고, 갈등과 분규라는 과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종단은 종도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 회복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고 깊이 우려했다. 특히 “반드시 종헌종법 질서를 근간으로 현재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설정 스님은 본인에 대한 의혹 조사를 위임했던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와 그 활동 기한인 8월30일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때문에 구체적인 퇴진 날짜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종헌종법 틀 안에서 관련 절차가 이뤄지면 이르면 8월초 늦어도 8월 중순에는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자회견 전후로 설정 스님은 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월암 스님과 공동대표 의정 스님, 중앙종회 상임의장단 스님과 잇따라 면담을 가졌다. 이날 오후 4시10분경에는 예고 없이 단식 중인 설조 스님을 만나 “마음을 내려놓고 종도들 의견 따르기로 했으니 단식 푸시고 건강 잘 챙기시라”는 말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설정 스님이 읽어 내려간 입장문에는 짧지만 거취 표명까지 많은 고심이 있었음이 역력히 묻어났다. 스님은 “사실이 아니기에 금세 의심은 걷힐 것이라 기대했고,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었다”며 “이렇게까지 혼란을 겪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회한을 밝혔다. 또 “종단 구성원으로서 평생을 품고 살았던 수행종풍 진작과 종단 발전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 믿었다”며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종도들과 국민들로부터 신뢰가 갈수록 무너져 내리는 상황을 목도했다”고 털어놓았다.

수행자로서 많은 번민의 시간을 보냈다는 설정 스님은 “종단의 어려움은 전적으로 제 부덕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힌 뒤 “종도들과 국민들에게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데 대해 진심어린 사과말씀을 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어 종헌종법의 엄중함을 재차 강조한 설정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는 새로운 희망의 길을 만들 수 있다”며 “그 자신감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도반으로 함께 할 수 있길 간절히 기원드린다”고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조계종 한 중진 스님은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당장 물러나고 싶겠지만 종헌종법을 존중하고 그 틀 안에서 용퇴하겠다는 것이 설정 스님께서 종단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며 “발표문은 얼핏 알쏭달쏭한 화두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선사로서의 진중함과 의연함이 곳곳에 담겨있다”고 말했다.

한편 설정 스님이 사실상 사퇴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곧 종정스님을 비롯한 원로의원, 교구본사주지, 중앙종회, 전국비구니회 단위에서 공의를 모아 설정 스님에게 전할 것으로 보인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