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유럽여행

마테호른 봉우리를 찾아...

淸潭 2014. 11. 25. 13:52

20여년 전에 스위스 체르맛에 있는 마테호른 봉우리를 찾아 적어둔 글입니다.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명곡 <알프스 교향곡>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친근하리라 생각되어 올려봅니다.

체르맛 마을에서 본 마테호른

 

                 마테호른 기슭에서

 

캠페 지휘 앨범의 마테호른

 

카라얀 지휘 앨범의 마테호른

 

여기는 스위스의 브리그 기차역이다. 바젤을 거쳐 다시 빠리로 갈 작정이다. 마테호른 한 번 본다고 새벽차로 여기 와서 하루 종일 등산열차 타다가 막 떠나려는 참이다.

내가 유럽을 그동안 너무 작은 규모로 오해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1990년에 왔을 때는 원체 넓은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직후라 상대적으로 유럽이 좁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이번에 다녀보니 여기도 시간이 걸릴 만큼은 족히 걸린다. 열차로 산 하나만 등산하고 내려왔는데도 하루가 다 가버렸다.

특히 이곳은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버렸고 하물며 그 흔한 간이음식점 한 군데도 없어 사실 종일 굶은 셈이다. 어제 산 과자 부스러기로 하루를 버텼다. 산의 냉기가 아직 온 몸에 남아있고 영양섭취를 제대로 못한 상태이다 보니 정말 춥고 배고프다. 대한민국의 중견 직장인이요, 훌륭한 마누라가 있는 내가 너무 초라한 여행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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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 마테호른은 과연 명산이었다. 지금까지 지구에 있었다는 수차례의 빙하기 중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빙하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생긴 건 분명하다고 한다. 조각칼로 깍은 듯한 거대한 삼각 봉우리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랜드캐년과 요세미티, 캐년랜즈, 옐로스톤, 나이아가라 폭포에 이어 발견한 또 하나의 환희... 자연이 빚어낸 훌륭한 걸작이었다.

 

내가 없는 살림에 하루를 꼬박 바쳐 마테호른을 찾은 것은, 나의 애청곡인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음반 표지 사진 속 마테호른 삼각 봉우리를 직접 대하는 순간을 늘 가슴 깊이 동경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명곡의 수많은 연주들 중 캠페와 카라얀 지휘의 음반을 주로 듣는데 두 음반 모두 표지에 마테호른 봉우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카라얀 음반을 더 자주 찾은 듯하다전체가 다 좋지만, 정상에서 알프스의 파노라마를 보고 하산하다 폭풍우를 만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온 알프스가 어둠의 적막에 잠기는 광경의 묘사는 실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음악 애호가들 중 카라얀을 폄하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음을 알고는 있으나 이 알프스 교향곡에 있어서만큼은 카라얀을 최고라 인정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음반 사진으로 수없이 보던 봉우리를 직접 대하고 보니 꿈은 이루어진다는 상투적 문구가 절로 떠올랐다.     

책에서 읽은 지구의 역사가 사실이라면, 원시 지구는 고온, 고압이었으며 대기는 수증기로 덮여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지구가 식기 시작한다. 점차 뜨거운 상태의 바다가 형성되고 그 바다가 식으면서 생명체가 등장한다. 이후 고생대, 신생대, 몇 번의 빙하기를 거쳐 육지가 생기고 그 와중에 인류가 출현한다... 원시 지구에서부터 생명체의 등장까지를 생각해보면 현 인류의 생존기간은 그야말로 순간에 불과한 것이며 공룡이 그러하였듯 우리 인간도 언제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지구가 바다로 덮여있었던 그 흔적을 그랜드캐년에서 볼 수 있으며, 빙하시대에 빙하가 지나가면서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 마테호른 봉우리와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인 것이다.

등산열차에서 보니까 알프스 산악지대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스위스 국민들이 어느 정도의 고뇌와 노력을 쏟아 부었을 지를 어렴풋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제 발생할지도 모르는 산사태 등을 대비하여 많은 연구도 있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경치만 좋아 돈 버는 나라 같지만 이면에는 자연과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으리라. 아까도 곳곳에서 산사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산골 계곡에 띄엄띄엄 집 짓고 사는 인간들의 인생을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대대로 목축을 하며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먹고살던 사람들이 최근에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분잡스러운 일(관광기념품 제작, 판매 등)에 많이 종사할 것 같고, 더러는 현찰 수입 증대에 상관없이 전통적인 일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섭섭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마누라가 만들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다. 뜨뜻한 북어국밥에 시큼한 김치 덮어서 헛소리하며 잘 먹어보고 싶다. 일상의 행복이 정말 소중한 것임을 절감하고 있다. 여행은 환상 깨기... 지구촌 구석구석에 대한 허상을 벗는 작업은 앞으로도 틈틈이 계속하되, 고향땅에서 가족, 벗들과 재미있게 살아보려 애쓰는 것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리라...

시용 성이 있는 몽트뢰와 로잔 등도 가보고는 싶은데 다음에 마누라와 올 때를 위해 몇 군데는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으니 이번엔 그냥 지나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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