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팔공산 선본사 갓바위
- 병고 시달리는 중생의 천년 시름을 감싸 안다
- 2012.04.10 10:41 입력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발행호수 : 1141 호 / 발행일 : 201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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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선본사 소향실에서 하루저녁을 기댔다. 때 아닌 4월 눈은 바람을 타고 팔공산을 휘감았다. 팔공산은 밤늦도록 울어대는 눈바람에 시달렸다. 다음 날, 소향실까지 ‘지심귀명례’가 바람에 실려 왔다. 객은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바쳐 귀의하고 예배한다는 스님 목소리에 새벽 내내 시달렸다(?).
불법으로 돌아가 의지하며 부처님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바치고 스스로도 그렇게 되리라는 강한 원력을 담은 ‘지심귀명례’. 갓바위 부처님을 홀로 조용히 참배하고자 아침 일찍 선본사를 나섰다. 일주문 옆 금륜교를 지나 해발 850m 팔공산 관봉(冠峰) 정상으로 향했다.
정비된 길을 5분쯤 오르자 가파른 계단이 앞을 막아섰다. 페인트 벗겨진 난간이 반질반질했다. 수없이 많은 기도객들이 계단을 오르내렸다는 증거다.
계단 옆으로 크고 작은 돌탑들이 쌓여 있었다. 갓바위 부처님을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에 돌탑들이 뒤따랐다. 갓바위 부처님 닮은 돌탑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뒤 따르는 기도객들 탓에 숨고를 틈도 없이 발길을 재촉했다.
15분 더 힘을 내니 칠성과 산신, 용왕을 모신 삼성각이 위치한 하단에 다다랐다.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팔공산 관봉 아래 자리한 선본사(주지 덕문 스님)는 갓바위 부처님 도량을 상단과 중단, 하단으로 나눠 부른다.
상단에는 갓바위 부처님과 유리광전이, 중단엔 선본사 대웅전과 만불대원탑이 자리했다. 하단이 바로 삼성각이다. 이곳에서 갓바위 부처님까진 210m 거리다. 이쯤 되니 약사여래불 정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에 이끌려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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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팔공산 장엄하는 약사여래 정근
대웅전에서 계단을 따라 100m를 더 올랐다. 벌써 기도객 20여명이 절을 하고 있었다. 몇몇은 도반인 듯 나란히 앉아 기도했고 어느 처사님은 쉴 새 없이 절을 했다. 한가하게 기도하려던 안이한 생각은 저만치 뒤로 밀려났다. 맨 뒷줄에서 108배 한 뒤 흐르는 땀을 식히고자 아래를 내려다보니 멀리 선본사가 팔공산 자락에 안겨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갓바위 부처님이 기도객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선본암중수기문’에 따르면 638년 원광법사 수제자 의현 스님이 어머니 명복을 빌기 위해 팔공산 관봉에 약사여래좌상(갓바위 부처님)을 조성했다. 대웅전 벽화가 떠올랐다. 대웅전 벽화엔 의현 스님이 부처님을 모신 얘기가 새겨져 있었다.
영험하게도 스님이 불사를 하던 중 추위에 떨면 큰 학이 날아와 날개를 펴 덮어주고, 상처 입으면 약초를 물고와 치료해 줬다고 한다. 불사를 마쳐갈 무렵 원광법사가 입적하자 의현 스님은 다비식을 마치고 점안의식을 위해 다시 팔공산으로 올랐다. 놀랍게도 이미 완성된 부처님은 갓을 쓰고 계셨단다.
갓바위 부처님의 정식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이다. 머리 위에 갓을 쓴 듯 자연 판석이 올라가 있어 갓바위 부처님으로 부른다. 부처님은 몸에서 나는 빛을 표현한 광배가 없다. 뒤에 병풍처럼 두른 암벽이 대신했다. 불상과 대좌 모두 하나의 돌이며, 전체 높이가 4m에 이른다. 무릎 위 두 손은 석굴암 본존불과 같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지만 왼손바닥에 작은 약합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좌상이라고 한다. 1962년 10월2일자 ‘동아일보’에 소개되면서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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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이다. 동방 정유리세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님의 원만행을 닦는 이로 하여금 무상보리의 묘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다. 과거세에 약왕이라는 보살로 수행하며 중생의 아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원력을 세웠다. 이 가운데 일체 신체장애가 완전히 회복되도록 하며 온갖 질병을 다 없애고 몸과 마음이 안락해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도록 하는 서원이 와 닿는다.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중생 마음을 어찌 그리 잘 아신단 말인가.
그래서일까. 갓바위 부처님은 천년 세월 동안 병고에 시달리는 중생을 품에 안고 다독여왔다. 2002년부터 갓바위 부처님께 기도 드렸던 불국토(58) 보살은 실명할 뻔한 눈을 되찾았다. 비몽사몽에 부처님이 몸을 쓰다듬어주더니 눈에 한 가득 빛이 들어왔다고 했다. ‘약사경’ 1독 뒤 약사여래불을 하루 1만독 정근한 결과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심이 일어났다”고 했다. “부처님과 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못 이룰 게 없다”고 확신했다.
불교용품점 불연각에서 만난 감로심(52) 보살도 마찬가지였다. 남편 사업이 파산하고 아이가 아팠다. 보살은 마음이 급했다. 아니, 간절했다. 대구 시내의 한 도량에서 2년간 매일 1000배를 올렸다. 스님이 더 큰 도량에서 기도하라며 갓바위 부처님을 소개했다. 보살은 대구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갓바위 부처님을 찾아와 100일간 1000배씩 절하며 기도했다. 남편은 재기했고 아들은 건강이 돌아왔다.
선본사 신도모임 발심회장 천련화(69) 보살은 40년 전 갓바위 부처님 가피를 얻은 뒤부터 11년째 불단을 돌본다. 천련화 보살 자매들이 시집 간 뒤 20대 후반에 세연을 접었다. 보살도 20대를 마무리 할 무렵 이유 없이 온몸이 아팠다. 주위에선 “또 저 집 딸 죽는다”는 소리가 돌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갓바위 부처님을 찾았다. 기도가 뭔지 몰랐던 시절, 그냥 그렇게 갓바위 부처님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내려갔다. 헌데 거짓말처럼 병이 나았고, 그 뒤 보살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갓바위 부처님께 기도했다. “간절한 마음 안고 친견만 해도 가피를 얻는다”고 보살은 웃었다.
맨 앞줄에서 절 삼매에 든 어느 보살 얘기도 전했다. “부산 보살인데, 자궁암이었다고 해요. 매일 죽어라 기도하더니 건강이 돌아왔다고 하네요. 8년째 매일 여기서 기도 중이에요.”
안양의 법련화 보살이 앉은뱅이가 될 뻔한 딸을 낫게 한 일화는 유명했다. 보살은 1987년 다리가 마비된 딸을 지게에 싣고 올라와 갓바위 부처님께 매달렸다. 딸 다리를 낫게 해달라며 떼쓰듯 억지 부리며 눈물만 흘린 채 해보지도 않은 3000배를 올렸다. 탈진한 채 부처님을 바라봤다. 부처님은 남 속도 모르고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이 부처님도 영험이 없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딸의 다리가 풀렸다.
예나 지금이나 간절함은 낙숫물 같다. 한 방울 한 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평일에도 기도객 발길 끊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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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천신께서 약을 주시니 병이 낫지 않음이 없으리다. 이에 붉은 정성 다해 가만히 도우심을 바라나이다. (…중략…) 듣자오니 석가모니께서 경을 설하실 때에 특별히 약사여래의 발원이 깊은 것을 말씀하시되, ‘맹세코 병고에 신음하는 이를 구제하려고 손바닥에 바리를 들고 다닌다’ 하였으니, 부처께서 어찌 헛말을 하시겠습니까. 이에 징험(徵驗)합니다. 스님들을 모아 법회 자리를 베풉니다. 천명의 합장 정진으로 백억 신(身) 부처님의 돌보심을 얻고자 합니다.”
‘동문선(東文選)’ 제113권 기록이다. 조선초 대학자 변계랑(1369~1430)이 쓴 ‘정릉에서 태상왕의 병을 구하고자 약사정근을 거행하는 글(貞陵行太上王救病藥師精勤梳)’이다. 억불 시대에도 약사여래에게 왕의 치병과 장수를 기원하는 애틋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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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 스님도 ‘삼국유사’ 제5권 제6 신주편에 약사여래의 신통함을 기록했다. 밀본법사가 늙은 여우를 잡아 선덕여왕의 병을 고쳤다는 내용이다.
선덕여왕 덕만이 병을 얻어 오랫동안 낫지 않자 밀본이 궁안으로 초청됐다. 밀본이 왕 옆에 앉아 ‘약사여래본원경’ 독경을 끝내자 육환장이 침실로 날아들어 늙은 여우 한 마리를 뜰 아래 거꾸로 내던졌다. 그제야 덕만의 병이 씻은 듯 나았다. 밀본의 이마 위에 신비스런 빛이 비치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는 후문이다.
용수보살은 ‘대지도론’에서 “삭발 염의해도 신심이 없다면 법해(法海) 가운데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기도는 기복이란 이름으로 ‘구시대 유물’처럼 여겨진다. 허나 우리네 마음밭에 뿌리 내린 지 오래다. 부처님을 향한 간절함이 봄볕처럼 언 마음을 녹이리라. 그렇게 갓바위 부처님은 기도를 굽어 살피며 천년 넘게 중생 마음에 신심이라는 연꽃을 피워 왔다.
무심코 휴대폰을 켰다. 먹통이었다. 3G, 4G, LTE 등 최신식 휴대폰은 무용지물이라는 게 선본사 설명이다. 갓바위 부처님 앞에선 구시대 유물이 돼 버린 2G 휴대폰만 안테나가 바로 섰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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