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제6교구본사 마곡사 경내 가득히 참 나를 찾는 이들의 수행이 이어졌다. 동국대 국제선센터 등이 주최한 간화선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70여 명은 오는 7월1일까지 마곡사에서 간화선 실참수행을 갖는다. 실참수행 후에는 봉화 각화사 무여스님, 문경 봉암사 적명스님, 충주 석종사 혜국스님을 찾아가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마곡사=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
다 알다시피 부처님이 교화를 폈던 마가다국은 뜨거운 혹서기(酷暑期)가 있는 나라였다. 그러니 그곳 사람들은 청랭한 바람이 선들선들 부는 곳을 이상향, 즉 극락으로 여겼던 것이다.
인도의 혹서기와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우리나라의 여름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원한 곳을 찾아서 휴가를 보낸다. 중국의 동산 선사는 더울 때는 더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위가 없는 곳이라고 일렀지만 이는 깨달음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소식일 터이다.
보통사람들로서는 첫여름만 되도 숲 그늘이 있고 계곡물이 흐르는 산사를 그리워한다. 그런데 여름산사가 주는 선물은 피서(避暑)만이 아니다. 산사는 자잘한 욕망으로 헐떡이며 사는 자신을 반조케 하여 초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런가 하면 누구라도 한 순간이나마 시인이 되게 한다. 시(詩)란 말(言)과 절(寺)이 합쳐진 낱말이 아니던가. 산사에 들어서 무심코 스스로 묻고 답하는 침묵의 언어는 시가 되는 법이다.
집착하면 몸과 마음은 병들게 마련이다…
무거운 것 놓아버리니 얼마나 홀가분한가
내가 사는 산중 부근에는 쌍봉사와 운주사가 있다. 예전에 써둔 글을 보니 자주 보는 절인데도 풋풋한 감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쌍봉사 해탈문에 대한 메모다.
‘해탈문이란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문이다. 쥔 손을 펴라는 문이다. 불행을 쥐고 있지 말라는 문이다. 집착하면 몸과 마음은 병들게 마련이다. 무거운 것을 놓아버리니 얼마나 홀가분한가.’
운주사에서 적은 메모도 꺼내 볼 때마다 나를 각성케 한다.
‘마을사람들은 갓처럼 생긴 옥개석이 너덜너덜하다고 하여 거지탑이라고 부른다. 미완의 탑이 분명하다. 그러나 운주사에서는 덜 다듬어진 탑과 불상들이 대접받고 있다. 세상을 지탱하는 이치가 바로 그거다. 미완성이 있으니까 완성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미완의 소중함을 모른다. 나는 거지탑 바위에 기대선 거지부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합장한다. 사랑도 미움도 다 버린 무욕의 얼굴이다. 이루고 싶은 꿈이 복잡한 나로서는 결코 닮지 못할 얼굴이다.’
노스님 중에는 나보고 스님보다 더 많이 절과 암자를 순례한 사람이라고 격려하셨던 분이 있다. 젊은 날에 매주 절은 물론이고 400여 군데의 산중암자들을 출가하는 마음으로 다녔다는 얘기를 듣고 하신 말씀인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절 순례가 나를 위한 나만의 예수재(豫修齋)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 자신을 녹슬게 했던 삼독(三毒)이 어느 만큼은 씻어져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음을 불현듯 느낄 때가 많았던 것이다.
[불교신문 2828호/ 6월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