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붓다를 만난 사람들]-38. 우파리

淸潭 2011. 12. 7. 14:23

 

38. 우파리
신분의 한계 극복하고 지계제일로 거듭나다
2011.12.06 17:40 입력 발행호수 : 1124 호 / 발행일 : 2011-12-07

이발사 출신의 하층민…석가족 귀족 쫓아 출가
철저한 지계행…1차 결집서 율 송출 역할 맡아

 

 

▲삽화=김재일 화백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는 사성계급이라는 엄격한 신분제도 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바라문교의 사제계급 브라흐마나, 왕족 크샤트리야, 상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평민 바이샤, 그리고 이들 세 계급을 섬기며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노예 수드라, 이 4종의 신분 가운데 어느 신분에 속하는가에 따라 삶은 크게 달랐다. 특히 노예계급인 수드라 출신은 평생 가난하고 비참한 삶 속에서 차별받는 인생을 살아야 했다.


율 제정될 때마다 암송·실천


하지만 부처님은 세속에서의 신분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최상층인 브라흐마나 출신이든 최하층인 수드라 출신이든 기꺼이 승가의 일원으로 차별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마치 여러 개의 강이 있지만 이들이 흘러가서 대해(大海)에 이르면 이전의 강 이름을 버리고 그저 ‘대해’라는 이름으로 불리듯이, 승가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사람은 불교의 출가수행승으로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차별받으며 한 많은 삶을 살던 수드라 계급의 사람들에게 있어 부처님의 이런 자비가 얼마나 가슴 깊이 와 닿았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테라가타’에는 부정물(不淨物), 즉 사람들의 대소변을 청소하는 천한 직업을 갖고 있던 수니타(Sun-I ta)라는 비구가 읊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전해진다.


“나는 천한 집에 태어나 그 비천한 가업을 이어 부정물을 청소하는 가난한 사람이었다네. 사람들은 나를 꺼렸고 싫어했다네. 그들은 노골적으로 나를 비난하고 조롱했다네. 나는 마음을 낮추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정각자이신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둘러싸여 마가다국의 수도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았다네. 내가 짐을 풀어두고 예배하려 다가가자 그 분은 나를 자비롭고도 연민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셨네. 나는 부처님의 발에 예배를 올리고 그 분의 얼굴을 우러러보며 이 일체생류 가운데 최고자이신 그 분에게 출가를 허락해 주십사 청을 올렸다네. 그러자 연민의 마음으로 모든 세간을 보신 부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네. ‘잘 왔구나, 비구여.’ 그것은 바로 나의 수계가 되었다네.”


정(淨)과 부정(不淨)의 관념이 강했던 인도인에게 있어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기피의 대상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그 부정한 기운이 자신에게 옮겨 붙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런 인식 속에서 수니타가 받았을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잘 왔구나, 비구여’라고 말씀해 주신 부처님을 수니타는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런데 부처님의 10대 제자로 승가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던 비구 가운데에도 수니타처럼 하층계급 출신의 자가 있었다. 바로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평가되는 우파리이다. 원래 우파리는 부처님의 출신 종족인 석가족의 궁중 이발사였다. 이발사는 사성계급 가운데 제일 하층에 속하는 수드라다. 석가족은 자신들이 크샤트리야 계급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고, 또한 아만심이 강하고 교만했다고 전해지는데, 만약 정말 그랬다면 우파리의 삶도 고달팠으리라 추측된다.


여하튼 이런 우파리가 석가족의 명문가 자제들과 함께 출가하게 되는 기이한 일이 발생한다. 부처님의 득도 소식을 들은 석가족 청년들은 앞을 다투어 부처님 밑으로 출가하고자 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그것도 강렬하게 출가를 원한 것은 아누룻다였다. 아누룻다는 자신의 출가를 완강히 거부하는 어머니를 납득시키기 위해, 당시 석가족의 왕이라 불리며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있던 친구 밧디야를 설득해 함께 출가하기로 한다.


한편 이들의 출가 소식을 들은 아난다와 데와닷타, 바구, 캄빌라가 합류함으로써 전부 6명의 양가집 자제들이 출가를 하게 된다. 우파리는 평소 이들을 모시던 이발사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그 6명은 출가 길에 우파리를 동반하고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해 길을 떠났다. 출가할 때 머리를 자르는 일이라도 거들게 할 셈이었던 것일까. 여하튼 카필라국의 국경 근처에 이르자 이들은 몸에 걸치고 있던 갖가지 장신구를 벗어 상의에 싼 후 그것을 우파리에게 주면서 말했다.


“우파리여, 너는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거라. 적지 않은 재산이 될 것이다.”
석가족의 귀공자 6명이 모두 풀어놓은 장신구는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값비싼 것들이었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은 우파리는 저 멀리 떠나가는 그 6명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런데 문득 우파리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저 분들은 모두 석가족의 명문가 자제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집도 지위도 재산도 버리고 저렇듯 당당하게 떠나고 있다. 분명 멋진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가야겠다.’
우파리는 받은 것을 길 가에 있는 나뭇가지에 걸쳐둔 후 걸음을 재촉하며 6명의 뒤를 쫓았다. “누구든 원한다면 가져가시오” 라는 표시였다.


아누룻다를 비롯한 6명의 석가족 청년, 그리고 우파리가 향한 곳은 말라족의 영역인 아누피야라는 마을이었다. 부처님을 만난 이들은 예를 올린 후 출가의 뜻을 밝혔다. 부처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승가에 들어오는 순간 세속에서의 지위나 신분, 나이 등은 모두 의미가 없어진다. 오로지 법랍(法臘)이라 하여 수계식을 먼저 받은 사람이 선배가 되는 구조였다.


따라서 하루라도 먼저 출가한 자에 대해 나중에 출가한 자는 선배로서의 예를 다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7명 가운데 누구를 가장 먼저 출가시켜야 하는가. 약간의 동요가 있은 후, 6명의 석가족 청년들은 제안한다.


“우파리를 가장 먼저 출가시켜 주십시오. 저희들은 지금까지 매우 교만했습니다. 여기 있는 우파리는 오랫동안 그런 저희들을 잘 섬겨왔습니다. 부처님, 부디 그를 가장 먼저 출가시켜주십시오. 저희들은 지금부터 그를 장로로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례하겠습니다. 그것에 의해 저희들은 지금까지의 교만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속에서 천대받던 우파리를 선배로 모심으로써 자신들의 교만심을 제거하겠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렇게 해서 이발사 우파리는 여래의 법과 율에 의해 살아가는 승가의 정식 구성원, 그것도 다른 6명의 공경을 받는 장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청정한 생활로 승단의 존경


평생 남의 머리를 잘라주며 살던 우파리였다. 수드라였기에 베다를 비롯한 그 어떤 학문적 소양을 쌓을 자격도 또한 기예를 닦을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성실한 삶을 살아오며 몸에 베인 그만의 좋은 습성이 있었다. 부처님은 이를 간파하셨던 것 같다. 어느 날 우파리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저도 아란야에 들어가 수행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아란야란 인적이 드문 한적한 장소를 말한다. 홀로 명상하기 좋았기 때문에 콘단냐나 마하캇사파 등과 같은 비구들은 아란야에서의 수행을 매우 즐겼다. 그런데 부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우파리야, 아란야에서 수행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라. 인적이 드문 곳에 머문다는 것은 참으로 쓸쓸한 일이고, 홀로 산다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니라. 특히 아직 정심(定心)을 얻지 못한 비구에게 있어 삼림은 그의 마음을 위축시킬 것이며, 들판은 그의 뜻을 뺏을 것이다. 너는 하지 말거라.”
“왜 다른 수행자들은 가능한 수행을 나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일까.”
시무룩한 얼굴로 서 있는 우파리에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우파리야, 예를 들어 여기 하나의 큰 연못이 있다고 하자. 한 마리의 큰 코끼리가 찾아와 그 연못에 들어가 등을 씻고 귀를 씻는다. 참으로 보기만 해도 즐거운 광경이다. 그런데 멀리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 마리의 토끼, 혹은 고양이가 그 즐거운 모습에 이끌려 코끼리가 떠난 후 연못 속에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한쪽 발을 연못에 넣는 순간 갑자기 두려움을 느껴 뛰어나오고 말았다. 무슨 이유이겠느냐. 코끼리의 신체에 비해 그들의 신체는 너무나도 작기 때문이다.”


우파리의 수행에 대한 열정은 가상하지만, 아란야에서의 수행은 그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신 것이었다. 대신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파리야, 너는 승가 안에 머물러라. 승가 안에 머무르고 있으면 너는 항상 안온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우파리가 승가 안에 머물며 자신의 장점을 살린 것은 바로 계율의 수지였다. 성실하고 섬세한 우파리는 율이 제정될 때마다 귀 기울여 들었고 또 철저하게 실천했다. ‘테라가타’에는 계율수지에 대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게송이 전해진다.


“신앙에 의해 세속으로부터 떠나 새롭게 출가한 신참의 수행승은 게으름피우지 말고 청정한 생활을 하는 좋은 친구들과 사귀어야 한다네. 신앙에 의해 세속으로부터 떠나 새롭게 출가한 신참의 수행승은 승가 안에 살면서 총명하게 계율을 배워야 한다네. 신앙에 의해 세속으로부터 떠나 새롭게 출가한 신참의 수행승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마음에 새겨 마음이 산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네.”


▲이자랑 박사
부처님이 그에게 승가에 머물라고 하신 것은 우파리의 이런 근기를 통찰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수드라 계급으로서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을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려놓았던 우파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 우파리는 지계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왕사성결집에서 당당히 율을 송출하는 큰 역할을 맡을 정도로 모든 수행승들의 귀감이 되어 있었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