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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가의 빈 책장

淸潭 2010. 5. 1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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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서가의 빈 책장 ♡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한나 수오넨에게 들은 이야기다. 작은 무역 회사에 다니는 한나는 용돈의 반 이상을 책 사는 데 쓸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애서가 동호회에도 가입했다. 애서가들의 꿈 중 하나는 이것이다. ‘더 많은 책을 갖고 싶다.’ 어느날동호회 회장 렌의 아파트에 방문한 한나는, 집 안을 가득 채운 책을 보고 놀랐다. “이 정도 책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노박 선생님에 비하면….” 얼마 뒤 한나와 렌은 노박 선생의 전원주택에 갔다. 단층 실내는 책장으로 가득했다. 지하실에도 여기저기 책이 쌓여 있었다. “지난달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지. 책 둘 곳이 없어서 말이야.” “책이 정말 많네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한나에게 노박 선생은 말했다. “라이넨 교수는 한술 더 뜨지. 3층 건물을 사서 책만 들여놨다니깐.” 한나는 그 건물을 구경하고 싶었다. 며칠 뒤 한나와 렌은 라이넨 교수의 건물을 방문했다. 라이넨 교수는 만날 수 없었지만, 미리 허락을 받은 상태라 여직원의 안내로 건물을 훑어보았다. 서가는 듀이 십진법에 따라 분류되었다. 0은 총류, 1은 철학, 2는 종교…. 3층은 역사 서적으로 가득찼다. 한나와 렌은 놀라며 물었다. “모두 몇 권이나 되나요?” “4만 권쯤 될걸요.” 하루에 한 권씩 109년 동안 읽을 분량이었다. 건물을 나오려는 그들에게 여직원이 쪽지를 건넸다. “교수님이 드리라고 했어요.” 쪽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진짜 장서가는 따로 있다네. 빌렌 선생. 555-1234-5678.” 전화를 걸자, 빌렌 선생은 흔쾌히 방문을 허락했다. 둘은 선생을 찾아갔다. “어서 오게.” 10평 정도 되는 사무실에는 삼나무 향기가 나는 책장 십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런데 책장이 군데군데 비었다! 빌렌 선생과 두 사람은 책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셨다. “책을 좋아한다고?” “네.” “다행이구먼.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안 읽어. 그런데 나는 책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야. 집과 사무실에 있는 게 전부지.” 한나는 조심스레 서가를 훑어보았다. 세 번째 서가에 빌렌 선생의 책이 꽂혀 있었다. “저건….” “응, 내가 지은 책들이야. 30권쯤 되나?” “정말 책을 많이 쓰셨네요.” “그냥, 다 허풍이야. 하하하.” 빌렌 선생은 말했다. “여기 있는 책들 중 맘에 드는 거 골라서 가져가.” “네?” “어서, 나는 또 공부해야 하니까. 힘들 좋으니 10권씩 가져가.” 한나와 렌은 책을 골라 들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한나가 물었다. “이렇게 많이 가져가도 돼요?” “괜찮아. 위장도 비워야 채우지. 책장도 빈 곳이 많아야 자꾸 새 책으로 채우고 싶거든.” 두 사람은 두둑해진 가방을 메고 건물을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나는, 누가 진짜 책 부자인지 알 것 같았다. 한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서재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책을 나눠 주고 있다. 진정한 애서가의 서가는, 조금은 비어 있어야 한다. - 좋은 생각 6월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