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 대한민국아, 서해 바다 속 장병의 소리를
- ▲ 강천석·主筆
국민의 의무를 목숨으로 일러 준 천안호 관련 희생자
이제 나라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물을 때
한 나라의 국민이 그의 조국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는 아주 오래되고 그러면서도 항상 새로운 물음이다. 이때 떠오르는 것이 케네디 미국 대통령 취임연설 속의 한 구절(句節)이다. "미국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뜻도 뜻이려니와 낱말과 낱말 사이의 기막힌 리듬 덕분에 모서리가 닳아질 만큼 자주 들먹여지는 명구(名句)다. 사실 이 명구는 케네디보다 딱 2000년 앞서 살았던 로마 정치가 키케로의 작품이다. '로마 시민 여러분'을 '미국 국민 여러분'으로 갈아 끼웠을 뿐이다.
이 오래된 문제가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다시 우리 앞에 떠오르고 있다. 침몰 당시 천안함에는 104명의 장병(將兵)이 근무 중이었다. 그 가운데 58명이 살아 돌아왔다. 미귀환(未歸還) 장병 46명 중 남기훈·김태석 상사는 차디찬 주검으로 떠올랐고, 나머지 44명은 아무런 소식이 없다. 후배를 구하러 거친 바다에 뛰어들었던 한주호 준위는 그 든든한 등만 보여준 채 뚜벅뚜벅 삶 너머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풍랑을 뚫고 천안함 장병을 찾아 헤매던 금양호 선원 9명도 연락이 끊겼다. 천안함 장병은 왜 검푸른 바다에 싱싱한 젊음을 묻어야 했고, 한주호 준위는 왜 사나운 물살에 겁먹지 않았으며, 금양호 선원은 왜 된장 뚝배기가 폭폭 끓는 푸근한 저녁 밥상을 뒤로하고 바다로 나갔을까. 그들의 등을 떠민 것은 오로지 '나는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였을 것이다.
2000년 전 공화국과 시민과의 관계를 골똘히 궁리했던 키케로는 시민의 최고 덕목(德目)으로 '공화국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희생해야만 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믿고 실천에 옮기는 용기'를 꼽았다. 한주호 준위는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바다가 차고 거칠고 어둡더라"고 했다. 아들은 "이제 좀 쉬시라"고 아버지를 말렸다. 한 준위 자신이 꼭 바다에 뛰어들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머지않아 예편(豫編)하게 돼 있었고, 잘 훈련된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후배가 얼마든지 있었다.
로마가 지중해 세계 전체의 패자(覇者)로 활짝 피어날 무렵의 로마인들은 의무를 두 가지로 나눴다. 하나는 '공화국이 그 안녕을 위하여 구성원들에게 반드시 실천하도록 강제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공화국 시민이 공화국을 위하여 실천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일'이다. 로마인들은 '공화국이 맡긴 의무'보다 '시민 스스로가 다짐한 의무'를 훨씬 고귀하게 여겼고, 이 고귀한 의무에 투철한 사람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로마는 이런 고귀한 희생이 거름처럼 켜켜이 쌓인 기름진 흙 위에서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한주호 준위는 그 주검으로 이 나라에서 '의무의 개념'을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렸고, 그 주검만큼 이 나라의 척박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돌아오지 않는 천안함 장병들과 금양호 선원들 -인도네시아 출신 두 선원을 포함해- 역시 대한민국이 시상대(施賞臺)에 올려 기려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런 인물들을 서해(西海)바다에 허무하게 묻었기에 잡초 우거진 여의도가 더 삭막하게 다가서는 듯하다. '애국'이나 '애국자'라는 단어는 헌 말이 된 지 오랜 게 이 나라 사정이다.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조차 촌티 나는 수구(守舊) 꼴통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나라가 자기네 집이라고 국민이 깨닫기 전에는 누구도 나라를 구할 수 없다'던 백범(白凡) 김구 선생의 말은 옛날 옛적 이야기가 돼 버렸다.
"당신들은 신(神)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신을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그 축복 아래 살듯, 당신들은 떠났지만 우리는 당신들이 내리는 혜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고 고대(古代) 그리스의 대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전몰(戰歿)장병 앞에서 애도했다. 그로부터 2천500년이 흐른 오늘 대한민국에선 '호국(護國)의 신'이 된 천안함 장병 유족이 부사관급은 보상금으로 2억원 안팎, 연금으로 월 200만원 내외를 받게 된다고 한다. 사병은 보상금 3천600만원이 전부다. 바다 속에서 숨이 멎는 순간까지 눈에서 놓지 않으려 했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은 6개월 후엔 살고 있는 20평 아파트를 떠나야 한다. 금양호 선원들에겐 상주(喪主)도 상가(喪家)도 없다. 물론 보상금도 없다. "대한민국이여, 국민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조국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먼저 물으십시오." 이대로 가면 반은 울먹이는 듯, 반은 분노한 듯한 이 목소리가 머지않아 천둥치듯 대한민국의 귓전을 때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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