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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부터 양쪽 눈에 고질적인 염증이 생기는 '포도막염'을 앓고 있는 김모(30)씨는 그 동안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스테로이드 등을 복용하며 치료를 받았다. 포도막은 안구를 싸고 있는 막으로, 이곳에 염증이 생기면 시력이 떨어져 실명(失明)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포도막 치료는 잘 되지 않으면서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얼굴이 달덩이처럼 커지고 위장 장애까지 왔다. 절망하던 김씨에게 최근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안구 안에 마이크로 칩을 이식해 스테로이드를 서서히 방출하는 '눈 속의 타임 머신'인 신약(新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포도막염 치료제인 '레티서트'(바슈롬)를 두 달 전 시술 받은 김씨는 0.02였던 시력이 0.8까지 회복됐다. 고(高)용량 스테로이드 복용을 중단한 뒤 달덩이 같았던 얼굴 모양도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장기 약물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매일 또는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하거나 주사를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이다. 제약회사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먹지 않고 붙이는 약을 개발하거나, 매일 먹지 않고 몇 달 또는 1년에 한번만 먹어도 되는 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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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스조선 DB
- ▲ 헬스조선 DB
- ■몸 안에 이식하는 동거형 약물|지난해 첫 아이를 낳은 회사원 박모(31·여)씨는 둘째와 터울 조절을 위해 왼팔 겨드랑이 밑에 피임약 '임플라논'(오가논)을 심어놨다. 피임약은 매일 먹는 부담이 있지만, 몸 안에 넣는 이식형 피임제는 한번 심어두면 3년간 매일 일정량의 호르몬이 방출돼 배란을 억제한다. 지난해 국내에서 2만여 명의 여성이 이 약물을 이식 받았다.
뇌종양 치료제 '글리아델 웨이퍼'(바이오프로파마슈티칼코리아)는 세계 유일의 이식형 방사선 치료제. 작은 동전 크기(직경 1.45㎝, 두께 1㎜)의 이 약물은 뇌 종양 수술을 받은 환자의 뇌에 넣어두면 치료 성분이 계속 방출돼 남아 있는 종양을 치료해준다. 약물이 필요한 곳에 집중돼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면서 항암치료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약효가 오래 가는 마라톤형 약물|골다공증으로 척추가 골절돼 수술 받은 권모(73·여)씨는 골다공증 치료제를 한 달에 한 번 복용한다. 과거에는 매주 한 번씩 약을 먹었다. 글로벌 제약사 GSK는 지난해 이 같은 방식의 골다공증 치료제 '본비바정'과 함께 3개월에 한 번만 주사를 맞으면 되는 '본비바주'도 내놨다. 또 다른 골다공증 치료제 '아클라스타'(노바티스)는 1년에 한 번 15분간 정맥주사를 맞으면 치료효과를 갖는다. 약물이 1년간 뼈에 붙어 약효를 내도록 설계됐다.
남성 갱년기 장애 치료제인 '네비도'(바이엘쉐링)도 3개월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면 된다. 기존 갱년기 치료제는 남성 호르몬을 매일 먹거나 피부에 발라주는 방식이었다.
■몸에 붙이는 착용형 의약품 |천식 치료제 '호쿠날린'(애보트)은 몸에 붙이는 패치형으로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얇은 패치를 붙이면 24시간 약효가 지속된다. 천식으로 밤에 고생하는 어린이에게 유용하다. 기존 천식 치료제는 대부분 입에 뿌리는 스프레이 형태로, 어린이들은 사용이 불편했다.
올해 시판 예정인 치매 치료제 '엑셀론 패치'(노바티스)도 매 끼니마다 약을 복용해야 했던 번거로움을 크게 줄여줄 것으로 보인다.
진통제도 패치형으로 나온다. 올 하반기쯤 출시 예정인 '아이온시스'(한국얀센)는 일회용 밴드 3개 크기의 밴드 모양으로 피부에 붙인다. 환자가 통증을 느낄 때마다 밴드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미세한 전류가 흐르면서 진통제가 피부를 통해 흡수된다. 주사바늘은 없다.
■인공지능형 미래 약물 |주사를 겁내는 사람을 위한 기술도 개발 중이다. 그 중 하나가 '패치형 주사기'. 피부에 찔러도 아픔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침 수백 개에 약물을 넣어 피부에 패치처럼 붙이는 기술이 미국 등에서 개발되고 있다.
또 혈당을 감지하는 센서가 붙은 작은 칩을 당뇨병 환자의 몸에 이식하면 혈당 수치를 자동으로 체크한 뒤 인슐린 펌프를 작동시켜 필요한 양만큼 인슐린을 투입하는 인공지능형 약물도 개발되고 있다. 손목시계 형 인슐린 주입장치도 개발되고 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