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불교 속에서 우리 나라를 지리적으로 구분할 때는 북방불교(北方佛敎)이며 사상적으로 구분할 때는 대승불교(大乘佛敎)라고 합니다. 대승불교에 속한 영향으로 예로부터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 위한 수행의 기본 덕목(德目)으로 육바라밀을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바라밀(波羅蜜)은 범어로 paramita의 음역으로 피안(彼岸)에 이르는 것으로 해석되고 도(度)라고 하며 이상(理想)을 달성하는 것, 완성에 도달하는 것이라 하며 육바라밀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말합니다. 우선 전체적으로 사익경(思益經)의 말씀으로 설명드리고 나서 개별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사익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보살이 능히 모든 모양(相)을 버리면 이름이 단(檀; 보시) 바라밀이라 하며 능히 모든 수지(受持)하는 바를 멸하면 이름이 시(尸; 지계) 바라밀이라 하며, 육진(六塵)에 상(傷)하는 바가 되지 않으면 이름이 찬제( 提; 인욕) 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행(行)하는 바를 여의면(離) 이름이 비리야(毗梨耶; 정진) 바라밀이 되며, 일체법(一切法)을 기억해 생각(情念)하지 않으면 이름이 선(禪) 바라밀이 되며, 모든 법(法)의 무생성(無生性)을 인(忍)하면 이름이 반야(般若) 바라밀이 되느니라.” 하셨습니다.
다시 보시바라밀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보시바라밀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재물을 베푸는 것으로 재시(財施), 진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법시(法施), 공포를 없애고 안심을 주는 것으로 무외시(無畏施)가 있습니다.
같은 보시를 행하여도 금강경(金剛經)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공덕을 더욱 찬탄하였으니, 부처님의 전생담에 보면 눈을 빼달라고 하면 눈을 빼주셨고, 그 빼준 눈을 밟아버려도 동요가 없으셨고, 새를 살리기 위해서 살을 잘라내어 주셨고,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던져주셨고, 화살을 대신 맞으시고 나찰에게 피를 뽑아주는 보시를 하시면서도 하신다는 생각이 끊어진 상태에서 보시를 하셨습니다.
벳산타라 왕은 처자를 달라는 바라문에게 처자를 보시했고 지장경(地藏經)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님께서 과거 바라문녀로 수행시 돌아가신 어머니의 천도를 위하여 집을 팔아서 향과 꽃과 공양구를 부처님의 탑사에 올린 공덕이 있습니다.
한없는 보시는 한없는 공덕이요, 보시는 모든 선업(善業)의 근본이 되는 것이니 모름지기 실천에 힘써야 합니다. 지계바라밀은 계율(戒律)을 지키는 것인데 계율은 대비유익(大悲有益)으로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안겨다 주는 대자대비의 말씀이요, 대인유지(大人有智)로 큰 스승 부처님의 지혜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잠시 율장(律藏)이 결집된 유래를 말씀드리자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제자들이 통곡을 하며 슬퍼하는데 “해방됐다. 스님들 슬퍼하지 마시오. 우리는 이제 해방이 되었소. 잔소리쟁이가 가셨으니 지금부터 우리는 자유요. 앞으로는 이것은 마땅히 행하라, 저것은 행하지 말라고 간섭할 스승은 없소.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것이오.”라고 하며 대중을 선동하는 몇몇 무례한 스님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가섭 스님(迦葉尊者)께서 근심하시며 계율을 재정립하실 뜻을 세우시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3개월 뒤에 필발라국에서 지계제일(持戒第一) 우바리 스님(優婆離尊者)으로 하여금 계율을 외우게 하여 율장부터 결집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다고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무례한 제자들로부터 진실한 제자들을 지켜낸 계율이야말로 불교를 지키는 방어벽이며 생명선, 보호선입니다.
부처님께서 계를 정하실 때는 열 가지 뜻을 생각하셨는데 이를 결계십구의(結戒十句義)라 하며,
첫째는 대중을 성취하기 위하여(攝取於僧),
둘째는 대중의 화합을 위하여(令僧和合),
셋째는 대중의 안락을 위하여(令僧安樂),
넷째는 다스리기 어려운 자를 잘 다스리기 위하여(難調者令調順),
다섯째는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는 이들에게 안락을 주기 위하여(慙愧者得安樂),
여섯째는 믿음이 없는 자에게 믿음을 주기 위하여(未信者令信), 일곱째는 이미 믿음을 일으킨 자의 믿음을 더욱 자라나게 하기 위하여(已信者令增長),
여덟째는 현세의 번뇌를 끊게 하기 위하여(斷現世煩惱),
아홉째는 후세의 탐욕과 악을 끊게 하기 위하여(斷後世俗惡),
열번째는 정법을 영원히 유통시키기 위하여(令正法得久住)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이 불법을 지키는 것이며 불종자(佛種子)를 지키는 것이며 복을 지키고 지혜를 지키는 것이니 모름지기 지계를 생활화합시다. 인욕바라밀은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으로 만약 자신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남을 핍박하지 않는다면 이는 인욕을 성취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인위(因位; 깨달음 이전, 수행의 시대)에서 인욕선인이 되시어 인욕의 수행을 닦으실 때 가리왕이 몸을 칼로 찢고 잘라내도 참고 정진하신 인행이 금강경에 적혀 있으며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에 보면 인욕태자(忍辱太子)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비바시불 때에 바라나국왕에게 인욕이라는 태자가 있었습니다. 태자의 부모가 병이 중하게 되자 의원이 말하기를 “대왕의 병에는 성내지 않는 사람의 고기가 약입니다.” 하니 태자가 생각하기를 ‘내가 나서부터 이 날까지 성내지 않았으므로 인욕이라 이름했으니 나의 살이 약이 되리라. 나라 안에 성내지 않는 자가 있더라도 어찌 그가 나의 부모님을 구할 수 있겠는가?’ 하고 스스로 살을 베어 약으로 드리니 부모의 병이 곧 나았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거룩한 행입니까?
제가 살아보니 참는 것도 자꾸 노력하면 처음에는 힘들어도 차차 인욕의 열매가 익어져서 버릇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업이 바뀌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도 열심히 노력해서 어떠한 경계에도 자연스럽고 태연스럽게 대하며 참을 것조차도 없는 인욕선인이나 인욕태자처럼 됩시다.
정진바라밀은 진실의 도를 느슨히 하지 않고 정밀하게 실천하는 것으로 악을 쫓고 선을 닦기 위한 목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모두 인과법(因果法)으로 이루어져 가는데 씨앗이 곧 열매는 아니고 씨앗이 자라서 열매가 맺어지니 열매가 되려면 시간이 흘러야 하는데 이 흘러가는 시간 동안에 정진을 잘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정진을 할 때는 모름지기 돌탑을 쌓듯이 돌다리를 놓듯이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화엄경에 정진에 대하여 “만법(萬法)이 스스로 청정함을 이름하여 정이라 하고 무공(無功)의 지(智)로 응하여 근기를 알아 중생을 이롭게 함을 이름하여 진이라 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선정바라밀은 정신을 통일하고 안정시키는 것으로 마음의 번뇌를 가라앉히고 사념(思念)을 없애는 것인데 선정을 닦으면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에 열 가지 큰 이익이 있다고 하여서 이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안주의식(安住儀式)으로 정숙한 위의를 성취하며 모든 근(根)이 적정(寂靜)하고 정정(正定)이 나타나는 것이며,
둘째는 행자경계(行慈境界)로 항상 자애심이 생겨서 살상하려는 생각이 없어져서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무번뇌(無煩惱)로 욕심, 성냄, 어리석음 등의 번뇌가 자연히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넷째는 수호제근(守護諸根)으로 모든 근(根)을 잘 지켜 색(色) 등의 여러 진(塵)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이며,
다섯째는 무식희락(無食喜樂)으로 선열(禪悅)의 맛을 얻게 되어 도체(道體)를 도와주게 되며 비록 음식을 먹지 않아도 자연히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이며,
여섯째는 원리애욕(遠離愛慾)으로 일심(一心)이 고요해져서 산란하지 않으므로 일체 애욕의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수선불공(修禪不空)으로 선의 공덕을 얻고 진공(眞空)의 이치를 증득하므로 단멸(斷滅)의 공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며,
여덟째는 해탈마견(解脫魔 )으로 생사의 일체 마구니의 그물(魔網)을 멀리 여의어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안주불경(安住佛境)으로 무량한 지혜를 밝게 발하고 깊이 법의 뜻에 통달하여 부처님의 지견(知見)이 자연히 밝아지므로 마음이 적멸하게 되는 것이며,
열번째는 해탈성숙(解脫成熟)으로 일체의 미혹한 업(惑業)이 소멸되어 무애해탈(無碍解脫)이 자연히 원숙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즈음 불자님들은 기도나 참선을 시키면 “이렇게 하면 무엇이 좋습니까?” 하고 꼭 따지고 물어오는 버릇이 있기에 저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끝으로 지혜바라밀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지혜바라밀은 진실한 지혜를 얻는 것으로 실상(實相)을 비쳐보는 지혜로써 나고 죽는 이 언덕을 건너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른 배나 뗏목과 같으므로 바라밀다라고 합니다.
지혜야말로 험악한 길에서는 길잡이가, 어둠에서는 횃불이, 생사의 바다에서는 배가, 병중에는 양의가, 삿된 마음을 부수는 태풍이, 마군을 깨뜨리는 장군이, 길을 비추는 태양이, 갈애를 죽이는 감로가, 어리석음을 끊는 칼날인 것입니다.
육바라밀 중에서 앞의 다섯 바라밀도 중요하지만 이 지혜바라밀은 그 기본이 되는 바라밀로서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에는 “만약 지계에 지혜가 없다면 잠시 상욕계(上欲界)에 태어났다가 도로 지옥에 떨어지며, 인욕에 지혜가 없다면 과보로 단정한 모습은 얻지만 적멸인(寂滅忍)을 증득하지 못하며, 정진에 지혜가 없다면 한갓 생명의 공(功)을 일으킬 뿐 진상해(眞常海)로 취항하지 못하며, 선정에 지혜가 없다면 다만 색계선(色界禪)을 행할지라 금강정(金剛定)에 들어가지 못하며, 만선(萬善)에 지혜가 없다면 공연히 유루인(有漏因)을 이룰 뿐 무위과(無爲果)에 계합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바라밀 중에 지혜바라밀을 얻지 못하면 바라밀이라는 명자(名字)도 얻지 못하며 또한 견고치도 못하니 지혜바라밀은 육바라밀의 시작이자 끝이 됩니다.
이제 부족하나마 육바라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으니 다 함께 대승보살의 정신으로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수행자가 됩니다.
- 교수불자수련회 입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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