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법문

淸潭 2008. 3. 1. 23:16

 

불기 2547년 8월 12일 하안거 기도 회향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입니다.

오늘은 하안거 해제일이면서 칠월백중 우란분절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읊은 게송은 구십일 동안 묶어 놓았던 발이 오늘 풀려났으니 석달 간 안거는 자취도 찾기 어렵다. 지금 냉정하게 돌아앉아서 살펴보니 천하의 총림들이 두 눈에 텅 비었더라 하는 게송입니다.
천하총림에 두 눈이 텅 비었다는 이 소식을 알면 대중은 오늘 해제를 하는 것이 될 것이고 또한 우란분절이라 부르는 백중을 잘 모셨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곳은 결제와 해제가 일년에 두 번 있습니다.
하안거라고 하는 것은 사월보름부터 칠월 보름까지 일체 수행자는 금족을 하고 밖에 출입을 안하고 정진 하는 것을 결제라 하고 그 삼개월 동안 묶었던 발을 풀어서 스스로 공부한 것들, 스스로 기도한 것들, 스스로 정진한 것들도 모두 굴레를 벗는 것을 해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구십일 동안 금족을 했던 이유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몸만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그러한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탐친치인 삼독심의 산란한 마음을 묶어 놓고 공부를 했다는 것을 쉽게 이야기해서 금족이라고 하며 결제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해제하고 스님들이 만행에 나서니 절이 텅 비었는데 절이 비었다는 것은 우리 몸에 붙어있던 나쁜 습관이나 성질 내는 어리석은 탐욕의 분별심이 떨어졌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빔으로 하여금 가득 차게 되는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여러 신도님들 또 자리한 사부대중께서는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해제를 하고도 삼독심이 남아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해제라 이야기할 수도 없고 오늘 칠월백중을 잘 지냈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이 해제와 선망부모 천도나 스님들께 공양물을 올리는 것은 비단 물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성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마음에 걸림이 없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정말 해제를 하셨습니까? 정말 백중을 잘 모셨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계십니까?

부처님은 어떤 분이고 무슨 일을 한 분인가. 경에 말씀하시길 일체 유주무주가 전부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불성을 가졌지만 범부라하고 그 불성을 몰록 현저히 밝힌 사람을 부처라고 하는데 도대체 부처는 어떤 분이고 무엇을 한 분인가?  이 부처를 진실로 알고자 할 진데, 거북이 등에 털이 나고 토끼에 뿔이 하늘에 가득차 있는 이치를 알면 부처가 어떤 분이며 또한 부처님이 무엇을 했는지 알수 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은 오늘 무엇 때문에 이곳에 모여있나? 또한 어떤 욕심 때문에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이 시주물을 부처님 전에 바치면서 한여름에 땀을 흘리면서 절을 하는 것인가?  
이것은 여러분들이 다 가지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스스로 발현을 하고 깨달아서 스스로 빛을 발할 때만이 오늘 값진 기도와 값진 해제를 맞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무엇이냐 자기 본분사를 밝히는 것입니다. 석가도 자기 본분사를 밝혔고 달마, 육조대사도 자기 본분사를 밝혔습니다. 또한 근대한국불교의 선풍을 진작시킨 경허선사도 자기 본분사를 밝힌 것입니다.
밝히고자 하나 왜 밝히고 못 밝히느냐? 부처님 경전을 거꾸로 보고 바로 보고 아무리 해도 소용 없다고 했습니다.
욕심과 분별심을 내고 시비하고 탐하는 생각을 전부 땅바닥에 바가지 엎듯이 엎어라. 그럴 때만이 네가 진실한 부처님의 경지로 간다. 푹 쉬어버려라. 욕심내고 시비하고 분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전부 쉬어버리라고 했습니다.
달마스님께서도 안으로는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어버리라고 했는데 왜 헐떡거리냐 하면 욕심 때문에 헐떡거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푹 쉬어버리고  밖으로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고 모든 것을 다 끊어버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육조스님께서도 말씀하시길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일으키는 생각도 푹 발 밑에 묻어버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도리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분별 없는 생각에 공연히 사로잡혀서 꿈인가 생시인가, 좋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렇게 하면 이득인가 손해인가, 이렇게 저울질 하고 하는 것들이 분별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그런 생각만 끊어버리면 참으로 자유로와 질 것이다.
이 자유로와질 때만이 해제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면 다시 여러분들은 동안거를 준비해야되지 않겠습니까. 백일기도 다시 준비해야 합니다.

회향이라는 것은 그 원력에 나머지 없고 바램조차도 없이 다 뚝 떨어지는 것이어야 만이 회향이라고 합니다.
내가 대학입학 기도를 해서 붙었다 하는 것이 회향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내 생각자체에 분별심이 떨어져야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결제에 대해 말씀드리면 결제의 풍습은 원래 인도에서 계절적인 영향을 받아서 시작된 것이 하안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도는 여름이면 비가 많이 오고 열대지방이라 수행자들이 유행하며 공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또한 많은 곤충과 미생물이 밖으로 기어나와 살생계를 범하기 쉬워 만들어진 것이 수행자들이 한 곳에 모여 수행 하는 하안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달라졌는데 중국에는 눈이 많이 오고 다니기 불편하기에 하안거, 동안거 이렇게 일년에 두 번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안거를 해야 스님들이 승랍이 얼마다 법랍이 얼마하는, 즉 스님으로서의 나이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사대명절은 초파일 성도절 출가절 열반절의 네가지가 있는데 부처님 당시에는 칠월 보름을 가장 뜻 있고 중요한 명절로 꼽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날은 스님들이 모두 삼개월 동안 정진을 했기에 정진력이 함께 모아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재가불자들은 이날이면 스님에게 맛있는 음식과 백종이라해서 백가지 음식과 과일을 스님들에게 공양을 하고 또한 공덕의라고 해서 칠월백중을 기해서 스님들께 옷공양을 올리는 풍속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방에 앉았으면 신도님께서 속내의 겉옷 이런 것을 많이 해다 바칩니다. 저는 경상도 선방에서 칠십년대에 많은 신자들이 가져다 주는 것을 실제 받아보기도 하고 목격도 했습니다. 이러한 보시공양은 이런 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로 해제하고 결제하는 이런 선종의 발달 과정을 보면 중국에서는 안거 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청규로 제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큰스님으로부터 법문을 들어 잘 아시겠지만 백장청규라고 해서 '일일불작 일일불식' 이라고 있습니다. 하루에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를 굶겠다고 하는 말이죠.
함께 일하는 방법을 규정한 뜻입니다. 결제 기간 중에 울력 목탁이 울리면 죽었던 송장도 벌떡 일어났다는 옛말이 있듯 이렇게 엄한 규칙입니다. 그러니 울력에 참가 안하면 그 사람은 크게 대중 참회를 해야하고 또한 몇 번 걸러서 그것도 안되면 사문출소까지 시켰던 것이 승가의 아주 엄한 규칙이었습니다.

울력과 관련해서 제가 조금 전 말씀드렸습니다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백장스님이 나이가 팔십이 넘었는데도 매일 젊은 대중과 함께 울력을 했는데 젊은 스님이 보다 못해 못나오게 하려고 백장스님께서 직접 손수 챙겨다니던 호미와 괭이를 감추었습니다. 백장스님께서 나와 보니 호미와 괭이가 없어진 것을 알고 당신은 그날 하루 문을 잠그고 굶으셨어요. 내가 오늘 부처님의 공양을 먹을 수 있을 일을 못했음에 하루 굶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엄한 것이 승가의 청규입니다. 그래서 일일불작 일일불식은 승가에서는 생활화 되어 있고 풍속으로 전래되고 있음을 여러분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 한 일을 하지 않고 어떻게 밥이 들어가느냐. 어떻게 내가 부처님께 예를 하지 않고, 부처님께서 가르친 공부를 하지 않고, 또한 땀흘려서 가져온 시은의 공덕에 보답하는 기도와 정진을 하지 않고,  감히 어떻게 혀바닥에 밥알을 넣겠느냐. 이것이 승가의 전통적인 풍속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결제가 끝나고 해제일이 되면 스님들은 아주 거룩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자자'라 하는 일종의 고백의식입니다. 스님들은 한 달에 두 번 씩, 꼭 참회행사를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보름과 그믐날입니다. 포살은 부처님의 계목을 스스로 외우고 잘못이 없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보살계를 받을 때 계목을 외우면서 지키겠느냐 말겠느냐하면 지키겠습니다하고 답을 해놓고 돌아서서 깜박 잊어버리듯이 스님들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입니다. 허물이 있고 잘못도 있을 수 있어요. 그것을 스스로 보름과 그믐에 잘못을 되돌아보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대중 앞에 참회하고 대중한테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자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식은 부처님도 하셨습니다. 부처님도 제자에게 나의 잘못을 지적해달라고 요청한 것인데 아함경 제45권 회수경은 그때의 장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어느해 하안거를 왕사성의 기원정사에서 보냈다. 마침 안거가 끝나는 날이 되자 인근에서 수행하던 500명의 수행자들이 자자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달이 뜨자 규칙에 따라 모임의 우두머리인 부처님부터 자자를 시작했다.
대중들이시어 이제 자자를 시작합니다. 지난 안거 동안 내가 몸으로나 입으로나 생각으나 무엇인가  비난 받을 일을 했거나 그렇게 보이도록 미심쩍은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불쌍히 여겨 지적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이 자리에서 참회를 하겠습니다. 하고 부처님이 그랬습니다.
요새는 위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야단만 치지 당신 스스로 지적해 달라하지 않고 만약 지적해서 "아버님, 어머님 잘못됐습니다"하면 "야! 이놈아 어른이니까 그렇지"라고 합니다. 화합이나 화목이란 이런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스스로 발견하고 참회하고 발견 못했을 때에는 남에게 지적해 주기를 요청해서 그 소리를 듣고 진실로 시인하고 참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처님께서 당신이 잘못한 것이 있는가 지적해달라 했지만 사리부타가 벌떡 일어나 이렇게 말했습니다.부처님 께서는 몸과 말과 생각이 조금도 잘못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거룩하고 깨끗한 한 철을 보내셨습니다. 사리부타는 이어 자신도 장궤합장을 하고 자자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부처님께서도 그의 청정함을 인정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사리불타의 정말로 네가 빈틈없이 부처님의 계를 잘 지켜 정진했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 후 500명의 제자가 순서대로 자자를 했으나 아무도 비난의 말을 들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에 있었던 어느 해 여름의 자자 장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에 따르면 부처님도 자자를 하고 제자들도 자자를 한 것인데 감동적인 것은 그날 아무도 비난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승가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미워하고 비난하는 현실에서 볼 때 이러한 것은 투명한 거울이요 인생의 나침반이다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승단의 어른인 부처님이 나서서 스스로 자기 잘못을 이야기해달라는 당당한 모습은 현실의 우리 거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윗사람들로부터 나서서 참회하는 모습은 다른 교에선 볼 수 없고 불교만 있는 전통의식입니다.
이것을 다 지키지 못하고 공연히 시비하고 불화를 보일 뿐이지 이러한 전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불교만 가지고 있는 전통이다.

이 경은 오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몸으로는 살생 투도 음란을 범하고 있고 입으로는 망어 양어 기어를 수없이 해서 싸움과 갈등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생각으로는 탐욕과 증오와 망상을 일삼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돈 벌었으면 좋겠다, 출세했으면, 시집 장가 잘 갔으면 좋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보고 탓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높은 사람일수록 스스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도 입만 열면 거짓말을 쏟아붓는데 물론 진실 내용을 포장하기 위해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렇습니다.
또한 여당도 야당도 언론도 경찰도 검찰도 그렇습니다. 또한 종교단체 이끄는 성직인들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전부다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나는 잘했다고 하는데 흔히 하는 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 신자중 오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비웃어도 좋고 욕해도 좋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시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누가 다섯가지중 한 가지만 못 지켜도 비난을 막 퍼붓습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히 적용시켜려는 오만된 생각 때문입니다. 내가 범한 잘못은 이유가 있고 남이 한 잘못은 용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의 도덕적 무책임과 불감증이 어느 정도 증폭되어 있는가를 실감케 하는 것입니다. 개인, 가정, 사회, 국가가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남의 허물 보기 전에 자기 허물부터 스스로 살펴서 잘못이 있으면 참회하고 인정하는 슬기와 도덕적 감성이 자리매김을 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비유하자면 비만 오면 물 새는 집에 사는 사람이 있는데 장마 오기 전에 고쳐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인데도 남의 집 봉창에 구멍난 것 가지고 시비한다면 그것처럼 허물 된 일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백중법회를 하는 것은 우리의 허물을 되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석달동안 우리는 어떤 잘못을 범했나 되돌아봅시다. 잘못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한 것 있으면 칭찬해 주는 습관을 기릅시다.
오늘 친구를 만나거나 집에 가 가족을 보거든 서로 앉아서 부처님 당시에 오백명 제자 데리고 자자했던 것처럼 가족끼리 모여서 자자를 하십시오.
그것은 부처님의 자자요 여러분 스스로 불성을 키워서 정말 자유롭고 걸림 없이 사는 거룩한 행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자신이 거룩하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사회와 국가가 밝고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가 자기 코 끝의 뾰족한 것만 보지 말고 남의 눈동자가 모난 것은 묻지 말라. 스스로 나만 생각하지 말고 남의 허물을 탓하지 말라는 말이죠.
이와 같이 수행해 간다면 곳곳이 도 닦는 곳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곳곳이 선불장 이요 여러분 머무는 곳곳이 일체의 보궁이요 부처를 보는 마당이 될 것이며 소원성취하는 기도처가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서 항상 자기 허물부터 살피는 그런 불자가 되도록 같이 노력합시다.

끝으로 백중하면 선망부모 천도를 하고 지옥 아귀 축생도까지 전부 이고등락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했습니다. 생노병사라 하는 것은 구름이 생겼다 없어지는 것과 바람이 불었다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생노병사는 간단합니다. 먼저 왔다고 먼저 가는 것이 아니라, 올 때는 먼저 왔지만 갈 때는 다릅니다. 어떤 자식은 배 안에서 죽고 어떤 자식은 나와서 죽고 이것은 부모 맘이 아니라 인연법에 의해서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영가는 다 어디로 갔느냐? 정말 극락왕생 위해 천도했는데 극락왕생 된 것인가? 극락왕생 됐는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정말로 선조나 이웃에 있는 영가까지도 극락세계 왕생했는지 확인하고자 하고 또한 그렇게 극락세계 왕생토록 하기 위해서는 극락세계니 지옥세계니 하는 분별심을 훌떡 버리고 짚어버려라. 그럼 그것이 해탈이라.


여러분들 깨달음을 얻어서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고, 부처가 되고 싶으면 부처가 되고 범부가 되고 싶으면 범부가 되고, 천상에 가고 싶으면 천상에 가는 것들은 분별심과 탐진치의 삼독 같은 이런 생각을 오늘 이 순간 조계사 법당에 다 쏟아 놓고 생각을 그와 같이 비우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보름 법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의견글

 

[한규희]

법장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노라면 살아 게신것 같아요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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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8년 2월 20일] 신중기도입재 법장스님 법문

 

 

2006-06-30

 

 

 

5

 

[2548년 2월 5일] 동안거기도회향법회

 

 

2006-06-30

 

 

 

4

 

[2547년 11월 24일] 신중기도입재법회 법문

 

 

2006-06-30

 

 

 

3

 

[2547년 11월 8일]동안거기도법회 입재 법문

 

 

2006-06-30

 

 

 

2

 

[2547년 8월 28일] 신중기도입재법회

 

 

2006-06-30

 

 

 

1

 

[2547년 8월 12일] 하안거기도회향법회

 

 

200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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