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기자의현문우답]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
깨친 후에도 약산선사는 『법화경』 『열반경』 『화엄경』 등의 경전을 늘 곁에 두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경전을 펼치고 있으면 불호령이 떨어졌죠. “경전의 노예가 된다. 경전을 읽지 말라”고 말이죠. 이를 참다 못한 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스님. 저희에겐 경전을 덮으라 하시면서, 스님은 왜 날마다 경전을 보십니까?” 이에 약산선사가 대답했죠. “나는 경전을 눈 앞에만 놓았을 뿐이다.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느니라.” 그러자 제자가 ‘옳거니’하면서 말했습니다. “저희도 경을 눈 앞에만 두고 읽지 않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약산선사는 무표정하게 제자를 쳐다봤죠.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밖을 보며 말했죠. “나는 눈 앞에만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너희가 경전을 눈 앞에 놓을 때 문자가 너희를 보지 않느냐. 그걸 어찌 막으려 하느냐.” 엥?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요. 언뜻 들으면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란 얘기네요. 그러나 선의 세계는 냉혹하고, 정확합니다. “어버버”하며 넘어가는 두리뭉실한 세계가 아니죠. 한 마디만 던져도 ‘내가 선 자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니까요. 그럼 약산선사와 제자들의 차이는 뭘까요. 바로 ‘나의 유무’죠. 약산선사는 이미 ‘나’가 허상임을 본 거죠. 그래서 그에겐 경전을 보는 ‘나’가 없는 겁니다. 경전을 보고, 비교하고, 풀이하는 ‘나’를 여읜 거죠. 그러니 마당에 있는 소나무, 하늘을 나는 새처럼, 경전도 그냥 눈 앞에 놓기만 할 뿐이죠. 그 외에 달리 무얼 할 수 있을 까요. 그러나 제자들은 딴 판입니다. 경전을 보는 ‘나’가 엄연히 존재하죠. 경전을 재고, 평하고, 따지는 ‘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도 경전을 눈 앞에만 놓고 읽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무의미한 거죠. 그걸 약산선사가 안 겁니다. 그래서 꼬집은 거죠. ‘네가 경전을 보지 않아도, 경전이 너를 보지 않느냐’라고 말이죠. 제자들에게 ‘나’가 없다면 경전도 제자를 못 보겠죠. 산중의 큰스님들은 종종 “선과 악, 양변을 여의라”고 하십니다. 대체 ‘양변’이 어딜까요. 이 일화에도 양변이 있습니다. ‘나’와 ‘경전’, 그게 바로 양변이죠. 그래서 한쪽 변인 ‘나’를 여의면, 다른 쪽 변인 ‘경전’은 절로 여의게 됩니다. 줄다리기는 한쪽만 줄을 놓아도 당겨지질 않습니다. 그때는 수천 번, 수만 번 경전을 봐도 ‘경전의 노예’가 되지 않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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