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禪이야기

오늘도 마음에 부처님 오신 날

淸潭 2007. 5. 24. 13:31

오늘도 마음에 부처님 오신 날

재가불자들 5분 참선부터 시작해 생활화


“상대 위하는 사람이 부처” 쉬운 법문 ‘쏙쏙’

 
 
한겨레 조연현 기자
 
 
» 수선회 선방에서 참선 중인 현담 스님(앞줄 맨 왼쪽)과 수선회원들. 도심에서도 산중의 고요가 느껴진다.
 
현담 스님이 이끄는 도심선방 ‘수선회’

고요한 마음이 필요한 곳은 오히려 옛사람보다 바쁜 현대인이요, 산사보다 번잡한 도심일 것이다. 육신은 시공에 갇히지만, 마음은 시공에 가둘 수 없다고 했던가. 마음의 터를 닦아 도심에서 산중 선원과 히말라야의 고요를 경험할 수 있다면 현대의 도시인에게 더할 나위가 있을까. 한국불교 1번지라는 서울 조계사의 ‘등잔 밑’에 있어 잘 눈에 띄지 않는 수선회가 그런 도심선방이다.

지난 16일 부처님오신날(24일) 맞이가 한창인 조계사의 화려한 연등을 지나 조계사와 담이 맛닿아있는 원당빌딩 3·4층에 올라가니, 참선하는 재가불자들의 얼굴에서 산사의 솔바람이 느껴진다. 세상 번민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바위처럼 앉은 재가 선객들의 주위에선 선선한 기운만이 감돈다.

수선회 회원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부동 자세로 앉아 오래도록 참선의 맛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선회를 이끄는 현담(53) 스님은 오히려 부동 자세도, 밤샘 참선도 강요한 적이 없었다. 또 참선 중에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다고 죽비로 내려치는 법도 없었다. 힘이 들면 언제나 다리를 뻗으라고 했다. 그리고 한 시간도 아닌, 하루에 단 ‘5분씩’만 참선을 하라고 했다. “한 시간을 하겠다고 맹세하고 30분 밖에 못하면 꺼림칙한데, 5분 한다고 다짐하고서 10분을 하면 흡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수선회원들은 이처럼 ‘부담 없이’ ‘5분 참선’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참선을 습관화하고 생활화했다. 매주 토요일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하는 철야 정진 때 8시간 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 참선하는 이들도 처음엔 그렇게 5분부터 시작했다.

현담 스님은 망상이 많은 사람들에겐 참선에 앞서 먼저 ‘숫자를 세는’ 수식관을 하도록 한다. 처음엔 50부터 1까지 숫자를 거꾸로 센다. 세다가 중간에 숫자를 잃어버리면 다시 세어야 하기에 마음을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숫자에만 집중하다보면 걱정과 분노가 ‘쉬어지게’ 된다. 결국 수식관에 이어 가르치는 화두선도 번뇌 망상을 쉬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수선회라고 참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그의 법문이야말로 한 생각을 돌이키게 하는 데 그만이다.

“마음이 마구니이고, 마음이 부처입니다. 모든 게 마음 먹기 달린 것이지요. 어떤 사람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날 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힘든 일을 겪을 때, ‘왜 내게만 이런 고통이 오는 것이냐’고 불만을 터트리기보다는 ‘이만 하니 다행이다’고 생각을 바꿔보세요.”

그는 상대에 대한 분노가 상대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것임을 명심하게 한다.

“자기가 자기를 괴롭힐 때 만나는 것이 바로 병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준다. 성한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가족이 있는 것에 감사하는 등 감사할 것을 헤아려보거나 공책에 낱낱이 적어보라고 권한다.

“상대를 편안하게 하고, 상대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바로 부처입니다.”

스님의 법문으로 한 생각을 돌린 수선회원들이 다시 참선을 시작한다. 2500여년 전의 부처, 나와는 너무 동 떨어져 멀게 만 느껴지는 부처는 이제 없다. 불안한 마음을 쉬면서 평안해진 얼굴들이 말해주지 않은가. ‘날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수선회는 조계사 학생회 출신들이 첫발…수료자 4천명

수선회는 1976년 조계사 학생회 출신의 재가자들에 의해 탄생했다. 현담 스님이 수선회 회장을 맡은 것은 88년. 90년대까지 전국의 선방에서 안거를 나면서 동시에 수선회를 이끌어온 현담 스님은 스님들 가운데서도 소수만이 할 수 있다고 알려질 만큼 어려운 참선의 핵심을 현대인들이 알기 쉽게 해석해 주었다.

그는 마음을 화두, 생각, 망상으로 구분했다. 화두를 참구하지 않을 때에도 ‘의식적인’ 생각은 해야하지만, 번뇌인 망상에선 벗어나도록 한다. 화두 참구자들 가운데도 헷갈리기 쉬운 전제와 단제도 명쾌히 구분했다. 단제 자리는 괴로움도 공포도 죽음도 붙을 수 없는 근본 당체이며, 전제는 찰나에도 수없이 감정과 생각과 번뇌가 오가는 자리로 분명히 구분해줌으로써 초심자도 혼동 없이 매진할 수 있게 했다.

수선회는 선교육 후입방을 원칙으로 한다. 일단 누구나 현담 스님으로부터 다섯 차례의 참선교육을 받아야한다. 지금까지 참선교육 수료자만 4천여 명에 이른다. 교육 뒤 세번의 안거(90일간)를 거쳐야 정회원이 되어 양평의 산중선원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하는 철야정진에 참여할 수 있다. 수선회에선 공식적인 철야정진만 300여 차례를 했다.

현재 1천여 명의 정회원이 있고, 이곳을 거친 이들 가운데 무려 120여명이 출가해 전국의 선방에서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조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