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축특집] 충북 괴산 공림사 감인선원 |
유달리 황사가 심하던 지난 8일, 노랗게 먼지를 뒤집어쓴 승용차로 고속도로와 꼬불꼬불 산길을 3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충북 괴산 공림사 감인선원(堪忍禪院). 전국 대부분의 선원에 전화를 돌리는 노력 끝에 어렵사리 섭외된 취재였지만 내심 “수행현장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했던 기자는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이내 생각을 바꿔야 했다.
“절에 불이 나도 오로지 정진하라” 불호령
“화두 없으면 죽은 것…죽기 살기로 전념해라”독려 “수행에 방해” 대중공양도 마다…불교 저력 엿보여
누구라도 맥박이 빨라지게 만드는 힘 있고 시원스러운 낙양산과 길섶을 따라 하늘거리는 색색의 이름모를 꽃들, 부처님오신날의 오색등 그리고 부는 바람에 춤을 추는 느티나무 사이로 보이는 감인선원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승용차로 들어서면 감흥이 깨질 것 같아 산문 초입부터 걸어 오르며, 주책바가지 핸드폰 전원도 꺼놓았다.
잠시 머물다 가려던 번뇌망성도 정진열기에 꺽일 것만 같던 지난 8일 충북 괴산 공림사 감인선원의 수행현장.
충북 괴산 공림사의 감인선원은 안거(安居)철 외에도 연중 자율정진이 진행되고 있는 선방이다. 적막에 감싸인 선원에 누가 될까, 발끝걸음으로 걷는데 종무소 한 켠에서 책을 읽고 있는 감인선원 선원장 성종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반갑게 맞으며 호탕한 웃음을 쏟아내는 성종스님의 안내로 참선 정진에 한창인 감인선원 문지방을 넘었다. 시간이 멈추고 무중력 상태에 빠진 느낌이라면 표현부족일까. 문밖,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했다. 자율정진이지만 좌복 위에 앉은 스님들의 꼿꼿한 등줄기와 단전에 가지런히 모은 흐트러짐 없는 손모양이 결제와 상관없이 수행정진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방 가운데 모셔둔 탄생불이 수행자들에게 “거듭 태어나라”며 말없이 경책했다. “딱딱딱”. 타임머신을 되돌리는 듯한 죽비소리와 함께 방선(放禪)시간이다. 느린 필름이 돌아가듯 스님들이 졸음을 쫓고 굳어진 몸을 푸는 경행(經行)이 시작됐다. 선원장 성종스님이 격려의 말을 건넨다. “죽기 살기로 화두(話頭)공부에만 전념하십시오. 화두를 들고 있으면 살아있는 것이고 화두가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모든 번뇌와 사소한 근심 걱정은 모두 선원장에게 맡기십시오” 자율정진인 만큼 방선시간을 틈타 경행하는 스님들께 접근했다. 30년간 화두공부에만 전념해온 진철스님은 “공부중이라 이야기할 수 없고 아무것도 모르니 그런 줄 아십시오”라며 합장했다. 참선 10년차의 종강스님도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낙양산 산행에 올랐다. 감인선원에서 2년째 수행중인 자인스님이 갑자기 대변인이 됐다. “이해하십시오. 원을 세우고 24시간이 수행정진 중인 스님들이시니 지금은 방해받고 싶지 않으신 겁니다” 취재만을 생각하고 어설픈 질문을 들이대려던 기자가 머쓱해졌다. 감인선원은 24시간 참선수행만을 하겠다는 수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 어설프게 마당의 풀을 뽑겠다고 나서는 수좌가 있으면 도리어 선원장 스님이 나서서 “내가 뽑겠다”며 “절에 불이 나도 정진하라”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참선수행에만 정진할 수 있게 바로 옆 대웅전에서도 예불하지 않고 선방에서 죽비예불로 대신할 때도 있다. 선원장 성종스님은 “중창주 이신 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탄성스님께서 선방을 유지하기 위해 법당을 지은 절인 만큼 공림사의 모든 활동은 감인선방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감인선원에는 신도들의 ‘대중공양’도 받지 않는 특별한 ‘선풍(禪風)’도 있다. 대중공양이 관성화되고 수행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양식조달 등 모든 것은 선원장이 처리할 테니 공부에만 전념하라”는 의미에서다. 때문에 감인선원을 찾는 모든 선객들은 “절도 돈도 없이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는 스님들만 찾는다”는 농담 섞인 말도 내뱉는다. 다시 한번 침묵 속에 빠져든 감인선원을 나서며 한국불교의 저력이 어디서 시작되는 지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괴산=배재수 기자 dongin21@ibulgyo.com
감인선원 /
사철 아름다운 꽃과 나무 “도량 가꾸는 것도 禪실천”
감인선원은 1년 내내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는 도량이다. 3년 전 성종스님이 선원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도량 곳곳에 아름다운 야생화와 나무들을 심었기 때문이다. 부처꽃 범부채 작약 목단 철쭉을 비롯해 사과꽃나무 홍매화 등 계절별로 피는 총100여종이 넘는 야생화와 나무가 4만여 그루 이상 심겨져 있다. 또 1000여 평 규모의 연못에는 연꽃과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화엄경〉에 염불로 절에서 소리가 많이 나면 그 기운이 땅속에 스며들어 꽃으로 핀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사찰의 스님들은 감인선원을 화엄의 꽃으로 장식했다. 어설픈 기교가 아닌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불교사상을 담은 도량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 조선시대 의병장 양대박과 학자 송시열이 도량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던 감인선원인 만큼 선원장 성종스님은 “불보살이 늘 상주할 수 있는 도량으로 가꾸는 것도 또 다른 선(禪)의 실천”이라고 말했다. 올해 감인선원은 일주문 안쪽의 밭을 모두 철거하고 꽃과 나무로 채우기로 했다. 특히 절에 오르는 길을 느티나무 숲길로 조성할 계획이어서 감인선원을 찾는 불자들의 기쁨이 배로 늘어날 것 같다. 배재수 기자 dongin21@ibulgyo.com
“수행자가 잘 먹는 게 무슨 의미 있나”
선원장 성종스님, 관성화된 대중공양 병폐에 쓴소리
성종스님〈사진〉은 호탕하고 큰 웃음소리를 지녔다. 게다가 순박한 시골청년 인상과 친절한 말투는 종무소를 처음 들른 불자들의 발걸음도 붙잡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할머니 신도들의 인기는 대단해서 스님을 처음 만난 사람은 ‘선원장’이 아닌 포교하는 스님인가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님은 봉암사 해인사 등 제방선원에서 20안거를 성만한 철저한 수행승이다. 사실 스님이 감인선원 선원장과 함께 절의 살림살이를 도맡는 공림사 주지를 겸하고 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선방에서 공부하면서 누군가는 선객들의 공부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고 지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는 스님은 “넉넉한 절은 아니지만 선방에서 선객들이 수행에만 전심전력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선방교육이 비구계를 받기 위한 의무교육으로 변했다”고 한탄하는 스님은 선원의 병폐에 대해서도 주저 없이 밝혔다. 스님이 지적하는 선원의 병폐는 관성화된 ‘대중공양’. “문경 봉암사 같은 사찰은 선(禪)수행만 하는 곳이니 먹고살기 힘들어서 스님들의 반연(攀緣)에 따라 대중공양을 시행하지만 요즘에는 일반사찰에서도 대중공양을 합니다. 사실 수좌스님들이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스님이 대중공양을 하게 되면 어느 순간 의무가 돼 버립니다. 옆에 스님이 대중공양을 했는데 그 다음은 내가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 말이죠. 또 신도분이 대중공양오시게 몇 번을 전화해야 하고 또 오시면 안내하고 이야기하다보면 수행하는 마음이 흐트러지기 십상이죠.” “수행자가 돈을 많이 받고 잘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묻는 스님은 “공부하는 기간에는 공부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재수 기자 dongin21@ibulgyo.com
[불교신문 2330호/ 5월2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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