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불(磨崖佛)
돌 속에는 우주가 들어있다. 부처님도 들어있고, 보살도 들어있고, 연꽃도 들어있고, 동물도 들어있다. 석탑과 석등도 물론이다. 다만 석공은 돌 속의 그것들을 정을 이용해 찾아낼 뿐이다.
마애불이란 자연암벽에 새긴 불상으로, 불감이나 석굴사원의 벽에 새겨진 것도 마애불에 속한다. 마애불의 기원은 서기전 3~2세기경 인도 아잔타 석굴사원의 외벽과 입구 주변의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중국으로 건너와 운강.용문 등의 석굴사원에 많은 마애불을 낳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삼국시대에 마애불이 제작되기 시작했는데, 삼국 중 백제의 마애문화가 먼저 꽃을 피웠다. 백제 마애불의 경우는 육로를 통하지 않고 해로를 통해 중국의 마애문화를 직수입하였다. 중국의 산동반도와 백제의 태안이 지리상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태안 마애삼존불상과 서산 마애삼존불상이 그 당시 대표적인 백제 마애불이다. 신라의 마애불은 백제보다 늦게 꽃을 피웠지만, 다양하고 화려한 마애문화를 이루었다. 경주 단석산에 있는 신선사마애불상군을 비롯하여 경주 남산일대에 많은 수의 마애불상이 남아있다. 고려시대 역시 법주사 마애여래상, 파주 용미리석불입상 등 전국적으로 많은 작품을 남겨놓았다. 조선시대의 마애불상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술성도 비교적 떨어진다.
마애불은 자연의 바위면을 이용하므로 대부분 규모가 큰 작품이 많고,또한 법당에 안치하는 불상과는 달리 경관이 수려한 자연 속에 위치하고 있어 외경심과 경건함을 더욱 고취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으므로 그 제작이 성행했다고 생각된다. 마애불의 기법은 양각(부조)과 음각(선각)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부조는 조각성이 뛰어나고 선각은 회화성이 뛰어난다. 마애불 가운데는 감실을 마련한 것이 많으며, 감실에는 인공적으로 전각을 만든 것이 있는가 하면 자연 암벽을 이용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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