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겨울 숲
눈 그치고 바람 잦아든 날,
오랜만에 보는 푸른 하늘은 갇혀있던 마음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한다.
집을 나서 이웃의 여섯집만 지나면 바로 숲이다.
언제나 묵묵히 그 자리에서 내 투정과 한숨과 턱없이 부풀기도 하는 자잘한 기쁨까지 다 알고 있는 숲.
두툼한 겉옷에 머플러, 장갑, 모자를 눌러쓰고 스노우부츠까지...
주머니속에 도치의 조그만 디카가 잡힌다.
우연하게도 숲의 모습을 담을 수도 있겠다...
늘 걷는 쪽으로 들어서자마자 길이 막힌다.
제풀에 쓰러진 것 같진않고 아마도 위험해서 미리 잘라둔것 같다.
커다란 나무둥치 두개가 길을 막고 서있다.
아마 내일이나 모래쯤 다시와서 토막으로 잘라 숲 안쪽으로 밀어둘 것이다.
돌아선다.
덕분에 자주 들어서지 않는 위쪽으로 올라갔다.
사람의 집들이 있는 도로쪽에서 더 가깝지만 숲길은 아래쪽 깊은 숲보다 의외로 어지럽다.
더러 길이 넓어지고 광장처럼 모여있는 곳도 있지만.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 수월하게 눈길을 걸으며
살아가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은혜로
지금 쉬운 길을 가고 있는지 문득 생각해 본다.
100년전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민사 초기의 중국인들이 겪어낸 수모와 고초덕분에
그래도 억울함없는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이민세대속에 내가 있는것처럼.
갑자기 눈이 부시게 숲으로 들어서는 저녁햇살.
내 앞에 우뚝 서서 환히 웃는다.
마치 어디서든 날 기다려주고 있을것 같은 친구처럼...
얼핏, 햇살이 나무를 비추는게 아니라
나무가 숨겨두었던 따스한 빛을 가만히 내보여 주는거란 생각이 들었다.
기실, 겨울나무속에는 얼마나 많은 묵인과 이해와 긍정이 들어있는걸까.
한번쯤, 눈 그친 어느 저녁무렵
그것들 따스한 빛으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놀랄것을 없다.
되돌아 내려오는 길,
강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내려가 본다.
흰눈에 덮인 돌멩이들이 웅크리고 앉아있다.
마치 눈쌓인 장독대처럼 괜시리 믿음직하고 정겨워진다.
묵묵함이 주는 아름다움이란 이런것인가보다...
마음이 조금쯤 부끄러워진다.
강 건너
하늘의 풍경을 바꾸며 서있는 겨울 나무들.
말은 필요하지 않다.
가을이면 연어가 올라오는 겨울 강.
저 강물속에 수장된 연어의 한 생애는
다시 또 거슬러 오르는 꿈을 꾸기 위해 강물에게 순종하며 흘러가고 있을것이다.
꿈을 간직하기 위해 그 꿈을 따라가기보다
팍팍한 현실을 따라 반대방향으로 갈때가 더 많은 우리들 삶이 그러하듯이.
얼마만에 보는 푸른 하늘인걸까.
늘 곁에 있을때면 그 소중하고 어여쁨을 곧잘 잊고마는 인간의 우둔함.
나, 네가 있어 가슴밑바닥 간지럼타듯 행복했던 기억 더러 잊었음을 용서해주길...
너, 내 마음 소홀히 생각해 날 아프게 했던 날들 내가 먼저 잊어주리니.
언제나 변함없이 꿋꿋하게 푸른 상록수의 기상은 설명이 필요없게 의연하지만
겨울에 만나는 사철나무는 내겐 좀 무겁고 답답하다.
내 삶이 그리 늘 푸르지 못하고
내 마음이 그리 늘 꿋꿋하지 못한탓일까.
빛날만큼 빛나고, 흔들릴만큼 흔들린 뒤에
때 되면 빈 몸으로 설줄 아는 겨울나무가 그래서 내겐 아름답다.
그건 약속이므로.
다시 새 잎나고, 수런거리도록 초록이 짙다가, 불타듯 단풍들고 다시 또 다 비워내겠다는...
옅은 노을이 지는 저녁에 만나는 겨울나무 빈 가지들은
평범하게 놓여있던 풍경을 키워
숨겨둔 쓸쓸함조차도 황홀하게 고백할 수 있게 한다.
저녁의 쓸쓸함을 딛고 만나는 다시 살오르는 아침은 더 환하리라.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겨울나무가 만들어준 풍경속을 걸어서.
겨울 숲 눈밭에도 끝내 묻어두지 못한 아직 뭉클한 삶의 이유들,
말없이 채 녹지않은 눈길을 밟으며 나를 따라온다.
'쉼터 > 경치,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국립공원 유타 (0) | 2007.01.18 |
---|---|
신이만든 정원 (0) | 2007.01.18 |
[스크랩] photographer Wayne Suffield (0) | 2007.01.12 |
[스크랩] 계림 산수의 아름다움 (0) | 2007.01.12 |
설경, 순백의 세상으로 떠나는 ‘겨울여행’ (0) | 2007.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