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불교관련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동,서,남해)

淸潭 2006. 11. 1. 20:31

3대관음성지

 

일반적으로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근본도량은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남쪽 해안의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이며, 중국은 경치가 좋은 주산열도(舟山列島)의 보타도(補陀島) 조음동(潮音洞)이 관음성지이다.

바다가 없는 티베트에서는 키추(Kichu)강을 바다로 가정하고 강 유역에 있는 라사(Lhasa, 拉薩)를 보타낙가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표적인 관음도량은 모두 바다에 접하여 있으며,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 서해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을 3대관음성지로 하고 있다.

 

가. 동해 낙산사 홍련암

 

         

 

<위 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소 속>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 낙산사의 산내 암자

<연 혁> 홍련암은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신라 화엄종의 초조인 의상대사 (625∼702년)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홍련암(紅蓮庵)은 낙산사의 산내 암자로서 의상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관음굴 위에 지었다. 의상 스님이 이곳에서 밤낮없이 7일 동안 기도를 하자 바다 위에서 한 떨기 붉은 연꽃이 솟아났고, 꽃 속에서 관세음보살이 현신(現身)하였기에 암자 이름을 홍련암이라 하였다. 바닷가 암석굴 위에 자리잡은 홍련암은 창건 당시부터 법당 마루 밑을 통하여 출렁이는 바다를 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 여의주를 바친 용도 불법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홍련암에서는 조선 숙종9년(1683년)에 관음굴의 불상을 개금할 때 공중에서 한 알의 명주(明珠)가 내려 오는 기적이 있어 이를 목격한 석겸(釋謙) 스님은 곧 사리탑을 건립하고 탑의 이름을 공중사리탑(空中舍利塔)이라 하였고 1694년에는 사리탑을 세우게 된 유래를 적은 공중사리탑비를 세웠다. 근대에 들어서는 1930년 2월 25일에 현대 고승 경봉(鏡峯) 스님이 이곳에서 관음기도를 시작했는데 13일째 되던 날 참선 중에 바다 위를 걸어 다가오는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큰 정진력을 얻었다 한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479호 동종, 제499호 7층석탑이 있다.

 

나. 서해 낙가산 보문사

 

         

 

<위 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소 속> 대한불교 조계종 제1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

<연 혁>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懷正)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곳에 와서 산세를 보고 인도의 보타낙가산과 비슷하여 절을 짓고 관세음보살의 성적(聖蹟)에 의하여 산 이름을 낙가산, 절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

강화도 서쪽에 있는 석모도의 낙가산에 위치하는 보문사는 우리 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여기서 낙가는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이름이고, 보문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수 없이 몸을 나투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산이름과 절 이름이 모두 관세음보살을 상징하는 보문사는 관음도량으로 조선시대에 들어 한때 쇠퇴의 길을 걷던 보문사는 순조 12년(1812년)에 홍봉장(洪鳳章)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대대적인 불사로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고종 30년(1893년)에는 명성왕후의 전교로 요사와 객실을 중건했고, 1920년에는 대원(大圓) 스님이 화주가 되어 관음전을 중건했다. 1928년 주지 선주(善周) 스님의 원력으로 마애관음보살상 조성불사가 이루어져 보문사는 전국적인 관음기도 도량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현존하는 전각으로는 대법당, 관음전, 종각, 석실 등이 있다. 석실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굴 안에는 나한상이 봉안돼 있다. 석실 입구에는 세 개의 홍예문이 설치돼 있고, 동굴 안에는 21개소의 감실이 마련돼 있다. 석실 법당 좌측 위에 있는 길이 40m, 촉 5m의 암반인 천인대는 이 절 창건 당시 인도의 한 스님이 이 바위에 불상을 모시고 날아왔다는 전설이 있다. 절에서 1km 가량 뒤쪽 산으로 올라가면 절벽에 조성된 높이 32척, 너비 11척인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보살상을 덮고 있는 기묘한 형태의 눈썹바위는 보살상을 보호하는 하늘이 주신 지붕으로서 신비감마저 들게 한다. 또한 수령(樹齡) 600년이 넘은 향나무가 석실과 범종각 사이에 있는 큰바위 틈에서 자라고 있다. 높이가 32m, 둘레는 굵은 곳이 2.8m이며, 그 외에도 많은 나무와 성보문화재들이 있다

문화재로는 인천 유형문화제 제29호 마애관음보살상 인천 지방기념물 제17호 향나무(수령 600년)가 있다.

 

다. 남해 금산 보리암

 

          

 

<위 치>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상주리

<소 속>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의 말사

<연 혁> 신라 문무왕 3년(683년)에 원효 스님이 절을 짓고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로 하였으며, 후에 보리암으로 개칭되었다.

보리암은 남해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1300여년의 세월을 지켜온 3대 관음성지의 하나이다. 원효 스님은 <화엄경>에 관세음보살의 상주처(常住處)가 보광궁(普光宮)이라는 데서 착안하여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고 하였다.

조선 현종 1년(1660년)에 사찰 옆에 있는 "이씨기단(李氏祈壇)"에서 이성계가 기도를 하여 새 왕조를 열었다고 하여 현종이 절을 왕실원당으로 삼고, 보리암이라 개명하였다. 1901년에는 낙서(樂西), 신욱(信昱) 스님이, 1954년에는 동파(東波) 스님이 각각 중수하였고, 1969년에 양소황(梁素滉) 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리암에는 보광전, 간성각(看星閣), 산신각, 범종각, 요사 등의 전각이 있다. 관음상 왼쪽에는 남순동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이 모셔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상은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에서 모셔왔다고 한다.

보광전 맞은 편 바위 끝에 있는 해수관음상이 있고 그 옆에 있는 3층탑은 높이가 2.3m로서 신라탑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상륜부에는 보주(寶珠)가 놓여 있다. 원효대사가 이곳에 사찰을 세울 때 건립했다고 하나 학자들은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로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과 경남 유형문화재 제74호 3층석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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