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아빠와 함께 살고 싶어요” 12살 소년의 간절한 외침
전국 청소년 25명 중 1명은 ‘가족돌봄 청소년(영 케어러·Young Carer)’다. 부모나 가족을 돌보며 어린 나이에 사실상 보호자 역할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이들의 67.8%는 학교생활 부적응을, 52.3%는 학업 성적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가족돌봄 청소년 중 한 명인 12살 장우(가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떡집 아저씨와 12살 아들의 이야기
“아빠, 오늘은 제가 라면 끓여드릴게요.”
쌀쌀한 겨울 아침, 장우가 텅 빈 부엌에서 마지막 남은 라면을 꺼냈다. 단수된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자, 그는 미리 받아둔 물통을 찾아 냄비에 물을 따랐다. 옆방에서는 아버지 김모(63)씨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2년 전만 해도 장우네 가족은 시골 마을에서 떡집을 운영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장우는 “아빠가 만든 떡이 제일 맛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6년 전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모든 것이 변했다. 사고 후 찾아온 뇌경색은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동반했고, 점차 치매 증상까지 나타났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났던 장우의 어머니는 남편을 헌신적으로 보살폈지만, 치매 증상까지 심해지자 이웃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하던 모든 재산을 처분한 채 홀연히 떠났다.
◇아버지를 향한 12살 아들의 사랑
“아빠가 가끔 저를 알아보지 못하실 때가 있어요. 그래도 예전처럼 따뜻하게 웃어주실 때면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장우의 하루는 여느 또래 아이들과 달랐다. 어머니가 떠난 후 모든 것이 막막했다. 체납된 공과금을 내지 못해 수도와 가스 공급이 중단됐고, 휴대전화마저 끊겼다. 관리비가 270만원이나 쌓였지만,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그래도 장우는 매일 학교에 다녔다. 근처 공부방에서 숙제하고 간식을 먹은 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돌봤다.
그러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와 장우는 아버지와 분리될 위기를 맞았다. 치매 증상이 심해진 아버지가 더 이상 어린 장우를 위해 식사를 챙기거나 빨래하는 등 기본적인 돌봄조차 하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우는 단호했다. 아버지의 의도가 아닌, 병으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아빠랑 계속 같이 살고 싶다. 제가 크면 아빠를 돌봐드릴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사각지대 위기 가정을 지원하는 이랜드복지재단의 ‘SOS위고’ 매니저의 도움으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긴급 생계비 지원을 받아 밀린 공과금을 해결했다. 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검진받아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치매 진단을 받았고, 정부로부터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게 됐다.
하지만 아버지의 증상은 점점 악화됐다. 결국 장우는 가정에 돌아가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모인 그룹홈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럼에도 주말마다 아버지를 보러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고 했다. 장우는 “언젠가는 아빠랑 다시 같이 살 수 있을 것”이라며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면서 아빠를 자주 찾아뵙겠다”고 했다.
장우 아버지가 잠시 치매 증상이 완화되었을 때 쓴 감사 편지. /이랜드복지재단◇어른도 힘든 치매 간병, ‘영 케어러’에 관심 필요한 이유
장우 아버지와 같은 65세 미만 치매 환자는 2022년 기준 1만5000여 명에 달한다. 특히 50대 치매 환자는 매년 8~10%씩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부담도 심각한 수준이다. 치매 환자 가족의 86.7%가 우울 증상을 경험했으며 77.3%는 직장을 포기하거나 근무시간을 단축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치매 환자 한 명을 돌보는데 들어가는 연간 관리 비용은 약 2060만원이다. 돈만 들어가는 건 아니다. 가족 간병인은 월평균 287시간(하루 평균 9.5시간)을 환자 돌봄에 투자하고 있다. 성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장우의 이야기는 수많은 ‘가족돌봄 청소년’들이 겪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이랜드복지재단 관계자는 “12살 아이가 아버지를 돌보는 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라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가정을 조기 발견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사회 체계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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