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첩立春帖
입춘立春은 24졀기의 첫 번째 절기로 한자로 들 입入 자가 아니라 설 립立 자를
쓰는 것이 의미롭다. 직역하면 "봄에 들어간다"는 뜻이 아니라 "봄이 섰다"는
뜻이니 곧 "봄이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계절은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자리를 지키며 저들의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꽃다지>
떼꿩 푸두둥 날아오른 양지 녘
시린 푸성귀
세상이 온통 눈보라로
꽁꽁 얼어붙고 있을 때에도
흐린 햇살로 연명하고 있을 때에도
봄은 아주 가버린 것이 아니었구나
영영 사라진 것이 아니었구나
마른 덤불 속에 숨어
저들의 영토를 지키고 있는
여린 풀잎들을 보아
서로 끌어안고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입술 푸른 새싹들을 보아
우리, 따뜻한 봄풀처럼 살자꾸나
설혹 암담한 계절이
매서운 추위를 몰고 올지라도
벌써 보푸라기 이는 산등성이를 보아
신비스러운 마술을 보아
처음 그 자리
한겨울을 이내 봄빛으로 물들이곤 했던
저들의 성지를 아끼고 보듬으며
달래 냉이 쑥 벌금자리 꽃다지처럼
우리, 아름다운 이름으로 살자꾸나
- 자작시 <입술 푸른 새싹처럼> 전문
웅크린 어깨나 한 번 펴보는 것이 고작인 요즈음 현대인에 비해 우리 조상님들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을 앞두고 아름다운 풍습을 지키며 살았다.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이 어릴 적만 해도 그랬다.
우리가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당시의 세시풍속에 따르면,
먼저 입춘 전날을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으로 '절분節分'이라고 했는데,
이 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았다. 입춘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았던 것이다.
또 다음 절기까지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서, 이때가 되면 '⑴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⑵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⑶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 다닌다'고 하였다.
그리고 입춘날이 되면 시간에 맞추어 '입춘첩立春帖'을 써서 대문이나 기둥, 천정
등에 붙여두고 봄기운과 더불어 가정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했다.
<'입춘대길'은 오른 쪽, '건양다경'은 왼쪽에 붙였다>
이밖에도 입춘전후에 받아 둔 빗물을 '입춘수立春水'라고 했는데 이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해서 즐겨마시는가 하면,
'맥근점麥根占'이라고 해서 보리뿌리로 그 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하였다.
늦가을에 심은 보리가 입춘 때 쯤이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데, 보리 뿌리를 파보아
뿌리가 세 갈래면 풍년이고 두 갈래면 평년, 시들었거나 하나뿐이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던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던 조상님들의 지혜와 정서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풍속이 아닌가.
생각같아서는 이제 먹고살 만큼 되었으니 이러한 풍속들을 재현하는 행사를 봄축제로
승화시켜 가뜩이나 먹고살기 어려운 농촌을 관광자원화 해보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입춘 추위에 장독대 깨진다'는 말처럼 막상 입춘이라고는 하지만 추위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하지만 유난히 춥고 눈도 많았던 겨울도 자연의 순리 앞에서 어쩌겠는가.
그래서 그러한가 겨우내 회색으로 머물던 풍경들이 자줏빛으로 보드랍게 다가온다.
<잠실 수중보 근처 버들강아지>
'봄'이란 말은 일설에 의하면 '보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둣빛으로 얼굴을 내미는 새싹들을 바라보고
거짓말처럼 벙그는 꽃봉오리를 바라보고
파랗게 번지는 들판을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동안 힘들게 겨울나기를 하며 봄을 고대하고 있을 친구들을 일일이 찾아보고
내친 김에 입춘첩을 써주며 덕담이이나 건네볼까.
<청량산 진달래>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양재천 쥐똥나무>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대영子孫萬代榮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시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양양 낙산사 풍경>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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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오래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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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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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百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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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잠실철교>
거천래去千災 래백복來百福 온갖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라.
<태백산 천제단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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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종춘설소災從春雪消 복축하운흥福逐夏雲興 |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라.
덕담으로 건넨 말들이 결국 내가 내게 바라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란 걸 저들은 알고있을까.
아니 지독한 불황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이란 걸 저들은
알고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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