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어느 금슬좋은 노부부의 생애

淸潭 2018. 8. 5. 10:05

어느 금슬좋은 노부부의 생애



오래 전에

아는 분이 계셨는데

오랫동안 서로 소식이 끊겨

어디서 어떻게 사시는지

한동안 서로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 언젠가

동네 아우랑 둘이서  

남한산성 등산가다 만났는데

2톤 트럭에 땅콩이나 잣 같은 걸

한 차 가득 싣고 등산로에서 팔고 계셨다


젊어선 직업군인으로

서슬퍼런 헌병으로 천하를 호령했고

아릿다운 아가씨 만나 신접살림 차려서

딸 둘에 아들 하나 세상 누구 부럽잖게

알콩달콩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


아무튼 세월이 흘러

한동안 못 본 사이에 무슨 사연인지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월세를 사시고

우리 사무실 옆 빌라로 이사를 오셨는데

서로 형제하자며 자주 술자리를 벌렸다


지하방에 물이 새서

문정동 교회 근처로 다시 이사를 가셨는데

어느 주말 밤 중에 갑자기 형수께서 뇌졸증으로

앰블런스 불러 급히 삼성의료원을 갔지만

당직 의사 밖에 없어 적기의 수술 시간을 놓쳐


주말이라 전문의가 없어

위급한 환자를 제 시간에 수술을 못하고

무려 입원하고 10시간이나 지나 수술했으니

결국 반신불구의 몸으로 석달만에 퇴원하여

시내에 있는 모든 요양병원을 전전하셨다


형님의 지극정성으로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아 많이 좋아져

대화도 나누고 혼자서 식사도 할 정도로

이제 곧 걸을거라며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노환과 오랜 병상 생활이 더 이상 낫지를 않아


잔 병에 효자 없다고

무려 5~6년을 병상에서 보냈으니

매주 오던 자식들 발길도 점 점 뜸해져

세곡동에 있는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셔서

더 이상 악화만 되지마라며 형님의 눈물겨운 간호


기어이 형님께서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하여 보호자 겸 간병인으로

그렇게 또 4~5년을 부부가 병마와 혈투를 벌였으나

천하장사도 병하고 오래 싸우면 이길 수 없는 법

이 더운 여름을 못 이기고 어제 한많은 생을 마치셨네


이제 홀로 남은 형님

그 처량하고 허망한 형상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형수님 깊은 믿음대로 주님의 품안에서

부디 평안히 영생을 누리소서!


2018년 8월 4일

'열대야의 밤이 계속되어

무더운 토요일 아침에'


푸른 돌(靑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