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佛骨表.논불골표』
<諫迎佛骨表.간영불골표>
<부처의 사리를 맞아들이는 것에 대하여 간하는 표문>
韓愈
臣某言, 伏以佛者, 夷狄之一法耳, 自後漢時流入中國, 上古未嘗有也, 昔者黃帝在位百年, 年百一十歲, 少昊在位八十年, 年百歲, 顓頊在位七十九年, 年九十八歲, 帝嚳在位七十年, 年百五歲, 帝堯在位九十八年, 年百一十八歲, 帝舜及禹 年皆百歲, 此時天下太平, 百姓安樂壽考, 然而中國未有佛也,
신모언, 복이불자, 이적지일법이. 자후한시유입중국, 상고미상유야. 석자황제재위백년, 연백일십세, 소호재위팔십년, 연백세, 전욱재위칠십구년, 연구십팔세, 제곡재위칠십년, 연백오세, 제요재위구십팔년, 연백일십팔세, 제순급우, 년개백세, 차시천하태평, 백성안락수고, 연이중국미유불야,
臣 한유는 아룁니다, 엎드려 말씀 올리옵건대, 佛이란 것은 오랑캐의 一法일 뿐입니다. 후한 때에 중국에 유입된 것으로, 상고시대에는 없었습니다. 옛날에 황제는 100년 동안 在位했었고, 나이는 110세였습니다. 소호는 80년을 在位하였고, 나이는 100세였습니다. 전욱은 在位 79년이고, 나이는 98세, 제곡은 在位 70년, 나이 105세, 제요는 재위 98년, 나이 118세 순과 우 황제는 모두 100세였습니다. 이때 천하는 태평하고, 백성은 안락하고 오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중국에는 佛이 있지 않았습니다.
*字句- 佛骨<불골>부처의 유골. 伏以<복이>엎드려 생각하건대. 黃帝<황제>3황 5제중 한분으로 軒轅氏로 少典의 아들. 少昊<소호>金天氏로 이름은 현효. 황제의 아들이었다고 함. 顓頊<전욱>高陽氏로 황제의 손이고 昌意의 아들. 帝嚳<제곡>高辛氏로 현효의 아들이며 황제의 증손. 壽考<수고>장수하는 것. 佛敎가 중국에 들어온 때 : 後漢 明帝 永平年間(58-75)
其後殷湯亦年百歲, 湯孫太戊在位七十五年, 武丁在位五十九年, 書史不言其年壽所極, 推其年數, 蓋亦俱不減百歲, 周文王年九十七歲, 武王年九十三歲, 穆王在位百年, 此時佛法亦未入中國, 非因事佛而致然也,
기후은탕역연백세, 탕손태무재위칠십오년, 무정재위오십구년, 서사불언기연수소극, 추기연수, 개역구불감백세. 주문왕연구십칠세, 무왕연구십삼세, 목왕재위백년, 차시불법역미입중국, 비인사불이치연야.
그 후 은∙탕 또한 나이가 100세이고, 탕손 태무는 在位 75년, 무정은 在位 59년입니다. 書史에는 그 수명이, 다한 바를 말하지 않았는데, 그 연수를 추측하면, 대개 모두 백년보다 적지 않았습니다. 주 文王의 나이는 97세였고, 武王은 93세였습니다. 穆王은 100년을 在位하였는데, 이때에 佛法은 또한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佛을 섬기는 것에 因하여 그러함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字句- 書史<서사>서적과 사기. 事佛<사불>부처를 받드는 것. 致然<치연>그와 같은 일을 이루다.
漢明帝時始有佛法, 明帝在位纔十八年耳, 其後亂亡相繼, 運祚不長, 宋齊梁陳元魏以下, 事佛漸謹, 年代尤促, 惟梁武帝在位四十八年, 前後三度捨身施佛, 宗廟之祭, 不用牲牢, 晝日一食, 止於菜果, 其後竟爲侯景所逼, 餓死臺城, 國亦尋滅, 事佛求福, 乃更得禍, 由此觀之, 佛不足事, 亦可知矣,
한명제시시유불법, 명제재위재십팔년이, 기후난망상계, 운조부장, 송제양진원위이하, 사불점근, 연대우촉, 유양무제재위사십팔년, 전후삼도사신시불, 종묘지제, 불용생뇌,주일일식, 지어채과, 기후경위후경소핍, 아사대성, 국역심멸. 사불구복, 내갱득화. 유차관지, 불부족신, 역가지의.
한 명제 때 비로소, 불법이 있었는데, 명 황제는 겨우 18년을 在位하였을 뿐입니다. 그 후 어지러움과 亡함이, 서로 계속되어 하늘로부터, 받은 국운이 길지 않았습니다. 宋, 齊, 梁, 陳, 元魏 이하는 佛을 점차로 삼가며 섬겼음에도, 재위연수나 세대는 더욱 짧았습니다. 오직 梁武帝가 48년을 在位하였을 뿐인데, 무제는 생애 세 번이나, 불문에 들어가 불도가 되어, 종묘의 제사에는, 희생을 쓰지 않고, 종일 한번 만의 식사를 들음에, 야채와 과일만 취하셨는데, 그 후 마침내는 후경한테 몰려, 대성에서 굶어 죽었고, 나라 또한 얼마 안 되어 멸망했으니, 불도를 섬기어 복을 빌었다가, 도리어 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불도는 섬길 것이 못됨을 알겠나이다.
*字句- 漢明帝<한명제>後漢의 임금. 班超를 보내 西域을 지배함. 불교는 대월씨 에서 들어옴. <서기 67년>. 宋齊梁陳<송제양진>남북조시대의 남조의 나라들. 元魏<원위>북방 이민족 척발씨가 5호 16국 난을 평정, 화북을 통일하여 세운 나라. 牲牢<생뢰>은 소, 말, 돼지, 양을 말하고, 뇌는 이를 삶지 않고 통째로 제물로 바친 것을 말함. 천제, 종묘제향에 쓰이는 소, 돼지, 양 등의 犧牲<희생>하여 제를 지냄. 侯景<후경>양나라 권신. 양무제를 궁중에 유폐하고 음식을 주지 않아 굶어 죽음. 尋滅<심멸>곧 멸망되다.
高祖始受隋禪, 則議除之, 當時羣臣, 材識不遠, 不能深知先王之道, 古今之宜, 推闡聖明, 以救斯弊, 其事遂止, 臣常恨焉, 伏惟, 睿聖文武皇帝陛下, 神聖英武, 數千百年已來, 未有倫比卽位之初, 卽不許度人爲僧尼道士, 又不許創立寺觀, 臣常以爲高祖之志, 必行於陛下之手, 今 縱未能卽行, 豈可恣之轉令盛也!
고조시수수선, 즉의제지, 당시군신, 식견불원, 불능심구선왕지도, 고금지의, 추천성명, 이구사폐, 기사수지. 신상한언, 복유, 예성문무황제폐하, 신성영무, 수천백년이래, 미유윤비, 즉위지초, 즉불허도인위승니도사, 우불허창립사관. 신상이위고조지지, 필행우폐하지수. 금종미능즉행, 기가자지전령성야!
당 고조께서 비로소, 수나라로부터 황위를 받았을 때, 곧 이를 제거할 것을 의논하셨는데, 당시 뭇 신하가, 재능과 식견이 훌륭하지 못하여, 능히 선왕의 도와, 고금의 마땅함을 깊이 알고, 성명을 추천하여, 폐단을 구하지 못해, 이일이 드디어 그쳤으니, 신은 항상 이일을 한탄스럽게 여깁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예성문무황제폐하의, 신성하고 영무스러움은, 수천 백년 이래, 비할 바가 없습니다. 천자에 오르신 처음에, 도첩을 발급하여 중이나 , 도사가 되는 것을 불허하시고, 또 사찰과 도교의 사원창립을 불허하셨는데, 신은 항상 고조께서 지니셨던 뜻이, 폐하의 손에 의하여 행해지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제 비록 원래의 뜻을 실행하지 못 하실망정, 어찌하여 불도가 제 마음대로, 더욱 성하게 할 수 있아오리까?
*字句- 隋禪<수선>수나라 임금의 선위. 材識<재식>재주와 식견. 推闡<추천>열어서 밝히는 것. 遂止<수지>드디어 정지됨. 唐 武德 9년 4월<당 9년), 太史令 傅奕<부혁>이 불교를 제거할 것을 상주. 高祖는 신하를 모아 이일을 의논. 그러나 부혁의 의견에 찬성한 자는 太僕卿 張道源<장도원> 한 사람이었음. 고조는 불교사원을 정리, 통합하는데 그침. 睿聖<예성>슬기롭고 성스러운 것. 예성문무황제는 한유 당시의 임금인 憲宗을 말함. 英武<영무>영특하고 문무에 뛰어남. 倫比<윤비>비교하는 것. 僧尼<승니>승은 남자 중, 니는 여자 중. 道士<도사>도교의 승려. 寺觀<사관>사는 불교의 사찰, 관은 도교의 사원. 縱<종>설사, 가령의 뜻. 恣<자>마음대로 행하는 것. 轉<전>방침을 바꾸다 의 뜻.
今聞陛下令羣僧, 迎佛骨於鳳翔, 御樓以觀, 舁入大內, 又令諸寺遞迎供養, 臣雖至愚, 必知陛下不惑於佛, 作此崇奉, 以祈福祥也, 直以年豐人樂, 狥人之心, 爲京都士庶, 設詭異之觀, 戲玩之具耳, 安有聖明若此, 而肯信此等事哉,
금문폐하령군승, 영불골우봉상, 어루이관, 여입대내, 우령제사체영공양. 신수지우, 필지폐하불혹우불, 작차숭봉, 이기복상야. 직이연풍인락, 순인지심, 위경도사서, 설궤이지관, 희완지구이, 안유성명약차, 이긍신차등사재!
이제 듣자오니, 폐하께서는 많은 중으로 하여금, 불골을 봉상으로부터 맞이하게 하시고, 누상에 오르시어 바라보시며, 궁중으로 떼메어 들게 하시옵고, 또 모든 사찰로 하여금, 번갈아 맞이하여, 공양을 드리게 하신다면, 신은 비록 지극히 어리석다 할 것이오나, 폐하께서 불도에 미혹되시어, 이렇게 부처를 높게 받드는 일을 하시옵고, 복을 비는 것에 미혹되지 않을 줄을, 반드시 알고 있나이다. 폐하께서는 단지 풍년에 인민이 화락하므로, 인민의 심정을 따라, 서울의 인민들을 위하여, 색다른 구경거리를 마련하시어, 즐거운 놀이감이 되도록 하자는 뜻일 따름이지, 어찌 성스럽고 밝으심이 이와 같사 온대, 즐겨 이런 일을 믿으시는 일이 있겠사옵니까?
*字句- 佛骨<불공>불사리. 鳳翔<봉상>땅이름. 舁入<여입>끌어 들임. 遞迎<체영>차례로 맞이하는 것. 崇奉<숭봉>숭배하여 받드는 것. 詭異之觀<궤이지관>진기한 구경거리. 年豐人樂<연풍인락>해가 풍년이 들고 사람이 즐기는 것. 戲翫之具<희완지구>장난하는 도구.
然百姓愚冥, 易惑難曉, 苟見陛下如此, 將謂眞心事佛, 皆云天子大聖, 猶一心敬信, 百姓何人, 豈合更惜身命, 焚頂燒指, 百十爲羣, 解衣散錢, 自朝至暮, 轉相倣效, 惟恐後時, 老少奔波棄其業次, 若不卽加禁遏, 更歷諸寺, 必有斷臂臠身, 以爲供養者, 傷風敗俗, 傳笑四方, 非細事也,
연백성우명, 이혹난효, 구견폐하여차, 장위진심신불. 개운천자대성, 유일심경신; 백성하인, 기합갱석신명, 분정소지, 백십위군, 해의산전. 자조지모, 전상방효, 유공후시, 노소분파기기생차. 약부즉가금알, 경력제사, 필유단비연신, 이위공양자. 상풍패속, 전소사방, 비세사야.
그러나 백성들은 어리석고 어두워서, 미혹되기 쉽고 깨우치기는 어렵사옵니다. 진실로 폐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고서는, 장차 폐하가 진심으로 불도를 섬기는 것이라고 여기고서, 모두들 말하길 ‘천자의 큰 어지심도, 일심으로 공경하고 믿으시는데, 백성이 무엇이라고, 신명을 아낀단 말이냐?’ 하고, 정수리에 향을 사뤄 손바닥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는 등의 고행을 행하고, 수백 수십이 떼를 지어, 의복을 벗어내고 돈을 모아서 시주함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고, 서로가 옮기고 본받아, 오직 늦을세라 걱정하여, 때마다 老少가 세차게 달음질쳐, 백성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만일 불골을 메고 다님을 금하여 그치게 하지 않으시고, 여러 사찰을 지나가게 하신다면, 팔을 끊고 몸의 살을 베어, 공양하는 자도 있게 될 것이오니, 좋은 풍속을 해치고, 사방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옵니다.
*字句- 愚冥<우명>어리석고 어두운 것. 易惑<이혹>현혹되기 쉬운 것. 難曉<난효>깨닫기 어려운 것. 敬信<경신>공경하여 신봉하는 것. 焚頂<분정>정수리에 향을 불사르는 것. 燒指<소지>손바닥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는 것이며, 분정과 소지는 불교의 고행. 解衣散錢<해의산전>절에 시주하기 위해 옷을 벗어놓고 돈을 뿌리는 것. 惟恐後時<유공후시>오직 때에 뒤질 것을 두려워한다. 奔波<분파>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 禁遏<금알>금지하고 막는 것. 臠身<연신>살을 저미는 것. 傷風敗俗<상풍패속>부패하고 문란한 풍속. 傳笑<전소>웃음거리를 전하는 것.
夫佛本夷狄之人, 與中國言語不通, 衣服殊製, 口不言先王之法言, 身不服先王之法服, 不知君臣之義, 父子之情, 假如其身至今尙在, 奉其國命, 來朝京師, 陛下容而接之, 不過宣政一見, 禮賓一設, 賜衣一襲, 衛而出之於境, 不令惑衆也, 況其身死已久, 模朽之骨, 凶穢之餘, 豈宜令入宮禁, 孔子曰, 敬鬼神而遠之, 古之諸侯, 行弔於其國, 尙令巫祝先以桃茢, 祓除不祥, 然後進弔, 今無故取朽穢之物, 親臨觀之, 巫祝不先, 桃茢不用, 羣臣不言其非, 御史不擧其失, 臣實恥之,
부불본이적지인, 여중국언어불통, 의복수제. 구불언선왕지법언, 신불복선왕지법행, 부지군신지의, 부자지정. 가여기신지금상재, 봉기국명, 내조경사, 폐하용이접지, 불과의정일견, 예빈일설, 사의일습, 위이출지어경, 불령혹중야. 황기신사이구, 고후지골, 휴예지여, 기의영인궁금, 공자왈, 경귀신이원지, 고지제후, 행조우기국, 상령무축선이도여, 불제불상, 연후진조, 영무고취후예지물, 친임관지, 무축불선, 도여불용, 군신불언기비, 어사불거기실, 신실치지.
부처란 본시 오랑캐 땅의 사람으로, 중국과는 언어가 통하지 않고, 의복의 제도가 다르며, 옛 어진 임금들의 어진 말을 한 일이 없고, 몸에는 옛 어진 임금들이 마련한 옷을 걸치지 않았으며, 임금과 신하의 의리나, 부자지간의 정을 몰랐던 것이옵니다. 가사 그가 오늘에 이르도록 생존하여, 그 나라의 국명을 받들어 장안에 와서 조회한다면, 폐하께서는 그를 접견하시되, 다만 선정전<宣政殿>에서 한 번 만나보시고, 예빈원 에서 한번 연석을 베풀어 대접한 뒤, 한 벌의 옷을 하사하시고, 호위를 하여 국경까지 보내주어, 그가 우리 민중을 현혹하지 못하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그가 죽은 지 이미 오래인데도, 썩은 뼈의, 더러운 한 끝을, 어찌하여 신성한 궁중 안에 들어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길, ‘귀신들을 공경스럽게 다루되 그것들을 멀리 할 지니라’ 옛날에는 제후가, 조상의 예를 그 나라에 행함에 있어서도, 오히려 무당으로 하여금 먼저 도열로, 부정을 털어 깨끗하게 하고 난 뒤에야, 조문을 했던 것 이옵니다. 그리하였거늘, 이제 까닭도 없이 썩고 더러운 것을 취하시와, 폐하께서 친히 임하시어 이를 관람하심에, 무당을 시켜 빌지도, 도열<桃茢>로 쓸지도 않으시며, 많은 신하들도 그 그릇됨을 말하지 아니하며, 어사도 그 실책을 들어 말하지 않으므로, 신은 실로 이를 부끄러워하나이다. *桃茢<도열>복숭아나무와 갈대의 이삭. 부정풀이하는데 쓰임.
*字句- 殊製<수제>옷 짓는 방법을 달리하는 것. 宣政<선정>선정전으로 당나라 때 임금이 사신을 접견했던 궁. 禮賓<예빈>예빈원으로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었던 궁전. 孔子 雍也 篇에,“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 日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번지가 지혜에 대해 묻자, 공자 왈, “백성이 의로움에 힘쓰게 하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그것을 멀리 한다면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다.” 어짊을 물으니 이르시길, “ 어진 사람은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나중에 얻으니 어질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 하셨다>
乞以此骨, 付之有司, 投諸水火, 永絶根本, 斷天下之疑, 絶後代之惑, 使天下之人, 知大聖人之所作爲, 出於尋常萬萬也, 豈不盛哉, 豈不快哉, 佛如有靈, 能作禍祟, 凡有殃咎, 宜加臣身, 上天鑒臨, 臣不怨悔, 無任感激懇悃之至, 謹奉表以聞, 臣某誠惶誠恐,
걸이차골, 부지유사, 투제수화, 영절근본, 단천하지의, 절후대지혹. 사천하지인, 지대성인지소작위, 출어심상만만야. 기불성재! 기불쾌재! 불여유령, 능작화숭, 범유앙구, 의가신신, 상천감림, 신불공회. 부임감격간곤지지, 근봉표이문. 신모성황성공.
바라건대 이 불골을, 맡아보는 관리에게 분부하시어, 물이나 불속에 던져서, 근본을 영원히 끊고, 천하의 의혹을 단절시키고, 후대의 의혹을 끊어,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크게 성스러운 폐하의 하시는 바가, 아주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려 주옵소서. 그리하오면 어찌 훌륭하지 않으며, 어찌 통쾌하지 않으오리까? 부처가 만일 신령스러움이 있어, 재앙의 전조를 지을 것 같으면, 닥쳐오는 재앙을, 모조리 신의 몸에 받겠나이다. 하늘이 굽어보심에, 그리되어도 신은 조금도 원망하고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성심으로 감개 분격함을 견딜 수 없아와, 삼가 이표를 받들어 올리옵나이다. 신 아무개는 진실로 황공합니다.
*字句- 尋常<심상>보통, 대수롭지 않은 것. 萬萬<만만>훨씬의 뜻. 禍수<화수>재앙의 빌미<빌미 수로 出+示>. 鑒臨<감림>하늘이 내려다보는 것.
韓愈.한유 <768-842>의 字는 退之<퇴지>로 中唐을 대표하는 문학가이다. 한유는 대표적인 排佛論者<배불론자>였다. 그렇지만 그의 排佛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그가 활동했던 중당의 불교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봉상 법문사의 탑 속에는 석가모니의 佛骨<불골-손가락 뼈>이 있었는데, 헌종은 원화 14년 한유가 刑部侍郞<형부시랑>으로 있을 때, 30년마다 열리는 法文<법문>이 있는 해에는 풍년이 들고 나라가 평안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불골을 궁내에 3일 동안 안치하고 예배하면서 공경대신들도 이 예식에 참여하게 하였다. 그래서 이에 격분한 한유는 본 論佛骨表<논불골표>를 지었다.
한유는 '논불골표'에서 배불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불교를 신봉한다고 하여 반드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해치고 경제적 악영향을 끼친다. 둘째, 석가모니는 오랑캐이므로 중국의 고유 사상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셋째, 불교에 대응하여 도통을 내세워 유가의 체계를 마련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한유는 헌종의 노여움을 사 결국 潮州<조주>로 좌천되는 곤경을 치른다.
남북조 이후로 寺院經濟<사원경제>가 나날이 발전하면서, 불교는 사회생활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역량이 되었다. 더욱이 당의 통치자는 유불도 3교 병행 방침을 세워 불교세력에 대해서 의거하고 연합하며 이용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일부 불교도들은 가사를 벗어 던지고 고급 관료가 되고자 했으며, 명리를 추구하고 사치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점차 종교적 기능을 상실하고 사회적 모순을 초래하였다.
이런 모순이 발생하자 당 무종은 불교를 없애고자 26만의 승니를 환속시키고 15만 개의 사원노비에게 자유를 주었으며, 良田 수십만 경을 몰수하고 사원 수천 개소를 철폐하여 불교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당조의 불교와 도교의 숭상으로 승려계급에게는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부여했고, 이런 까닭으로 평민에게 이것이 과중하게 짐 지워지자 병역과 부세를 피해 사원의 소작인이 되거나 승려가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급기야 이러한 양상은 世族<세속> 지주와 僧侶<승려>지주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더욱이 안사의 난 이후 승려들은 경제적 세력을 확장하면서 정치적으로 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덕종은 정원 6년 岐州<기주>에 풍년과 民安<민안>을 위한 목적으로 무하왕사에서 불공을 궁 안으로 들여와 공양했는데, 그것이 풍습으로 굳어졌다.
한유는 당시 그 누구보다도 불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논불골표' 때문에 좌천될 정도로 불교에 대하여 매우 반대 입장을 지녔던 그가 승려들과 교류하거나 산사에 놀러 간 일을 시로써 읊은 것이다. 이는 山石<산석>,送惠師<송혜사>, 送靈師<송영사> 같은 작품에 나타나고 있다. 한유는 정치가로서 불교를 배격하고자함은 아니었던 것이리라.
한편, 조선조 창업의 개국공신인 정도전<鄭道傳. 상봉.三峯>이 정치도구로서 불교를 배격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사찰이 왕실이나 귀족들의 보호를 받아 거대한 농장과 노비들을 두고서 재물을 축적하고도 더 각종의 불사를 일으켜 재산을 私有하는 등 날로 이러한 폐단이 일고, 또한 사찰에 면세의 특혜로 인한 국가 재정의 궁핍을 초래 하였고, 중생들이 지나친 승려로 전입됨에 따른 軍役, 부역<賦役>의 원천을 감소시키게도 하였다며 삼봉<三峯>은 불교를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고려 말 사회가 안고 있는 권문세가<權門世家>의 토지의 집중적 私有와 각종 제도의 폐단을 혁파<革破>하여 국가의 공전과 균전을 늘리는 개혁가의 시각으로서 마침 사원<寺院>이 연관 되었다 하여 이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불교 교리를 비방하고 필경은 배척에 이르는 사회분위기를 조장케 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적 구호를 기술<記述>의 밑그림을 그리며 조선의 개국에 이바지하려 하고 있었다.
삼봉은 불씨윤회지변<佛氏輪廻之辨>, 불씨인과지변<佛氏因果之辨>, 불씨심성지변<佛氏心性之辨>, 불씨작용시성지변<佛氏作用是性之辨>, 불씨심적지변<佛氏心跡之辨>, 불씨매어도기지변<佛氏買於道器之辨>, 불씨훼기인륜지변<佛氏毁棄人倫之辨>, 불씨자비지변<佛氏慈悲之辨>, 불씨진가지변<佛氏眞假之辨>, 불씨지옥지변<佛氏地獄之辨>, 불씨화복지변<佛氏禍福之辨>, 불씨걸식지변<佛氏乞食之辨>, 불씨선교지변<佛氏禪敎之辨>, 유석동이지변<儒釋同異之辨>, 불법입중국<佛法入中國>, 사불득화<事佛得禍>, 사천도이담불과<舍天道而談佛果>, 사불심근년대우촉<事佛甚謹年代尤促>, 벽이단지변<闢異端之辨> 등과 같은 총체적 불씨잡변을 써서 논조 하였다.
삼봉은 오로지 개혁파에 속할 뿐 정치가로서 반 불교파에 조선 성리학 신봉자로서 성인에는 이르지 아니하는 본 조선왕조를 개창한 주역으로서 그 통치 이념과 행정체계를 정립하고 조선국의 운영의 기초를 닦은 정치가였다. 따라서 그의 불교에 대한 비판은 곧 조선국의 종교정책이 되었다 라 할 수 있는 종교도 정치처럼 혁명적 사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평등적이 아닌 상하관계와 사회적 규모를 명령 관계로만 생각했던 일종의 정치적 사상현상의 혁명을 요구 하였다.
그것은 조선 조정에 긴 해를 넘게 장구한 기간을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니 그의 불교 비판은 조선왕조의 유교적 통치 이념으로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는바, 지금껏 역사에서 불교 중심의 사회를 비켜서 유교 중심의 사회로 전환된 한 계기가 만들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揭帝揭帝 波羅揭帝 波羅僧揭帝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摩訶般若 波羅蜜多心經 摩訶般若 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 바라밀다심경 마하반야 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 皆空度 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 개공도 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他依 般若波羅密多故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다고
心無歌碍 無歌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佛依 般若波羅密多 故得阿 多羅三 三菩提 故知般若波羅密多 삼세제불의 반야바라밀다 고득아 다라삼 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故說 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3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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