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책 속의 향기

징비록(懲毖錄)

淸潭 2015. 7. 11. 11:42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의 일, 그리고 정유재란의

발발과 7년간의 전란이 끝나는 날에 이르는 중요한 사건들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백성의 딱한 사정이라든지 수군통제사 이순신의 활약, 그리고 명나라와의 갈등 등

유성룡 스스로 보고 들은 바를 소상히, 그리고 상당히 객관적 시각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징비록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구성으로 돼 있어

문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훌륭한 재상이었던 유성룡의 재능과 인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면 어떨지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는지?

전쟁을 겪지 않은 대부분의 세대들은, 전쟁은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영화에 등장

하는 소재로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던 탓에

주변 강국에 의해 잦은 침략과 약탈에 시달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했다.

 

최근 한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하는 징비록이라는 드라마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을 겪었던 선조임금과 조선 조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선조는 일본의 침략을

스스로 막아내려 하지 않고 명나라에 의존했다. 또한 자신의 왕권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세자 광해와 바른말을 하는 대신들을 경계하는데 바빴다. 실제 선조는 심신이

약한 편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조선을 유린하고 약탈하였으니 의지할

곳 없는 백성은 굶주림 속에서 헤매야 했고 일부는 일본에 끌려가기도 했다.

 

“3도를 짓밟은 적은 가는 곳마다 민가를 불태우고 백성을 죽였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붙잡기만 하면 코를 베어 위세를 부렸던 까닭에 그들이 직산에 도착할

무렵부터 사람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라고 기록한다.

이 드라마는 실제 징비록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은 7년간의 전란을 겪고 나서 이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담고 있다. ‘징비(懲毖)’라는 말은 뉘우치고 조심하다는 뜻으로

중국의 고전인 시경에서 유래됐다. 징비록의 저자인 유성룡(1542~1607)은 서문에서

시경에 지난날의 잘못을 거울삼아 후일에 일어날 환란을 경계하다’(예기징이비후환,

豫其懲而毖後患)라는 말이 있으니 이것이 곧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의 중책을 맡았음에도 전쟁을 막아내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하며 이 땅에

왜란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책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성룡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안동 하회마을에서 자란 유성룡은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대사헌과 경상도 관찰사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고, 임진왜란 극복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유성룡을 비롯한 몇몇은 당시 동북아의 불안한 정세와 일본의 전쟁 기운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율곡 이이가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것처럼 유성룡은 권율과

이순신을 조정에 천거하여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자고 역설했다.

 

매사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더구나 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경우라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만일 지금 준비하지 않는다면

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략하기로 마음먹고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을 수입해서 병사를 훈련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했다. 그는 조선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심복을 파견했는데, 사신으로 온 요시토시는 매우 거만한 태도로 조

선의 병사들을 비웃었다고 한다. 이렇게 까지 전쟁의 낌새가 있었음에도 조선은

제대로 방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징비록은 임진왜란 전후 7년간 생생한 기록과 이순신의 활약, 그리고

피폐해진 백성의 삶 등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전쟁을 직감해 대비하자 주장했지만 침략을 막지 못함에 참회, 반성을 담고 있다.

징비록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징비록의 배경이 된, 7년간(1592~1598)의 임진왜란(1차 침략)과 정유재란(2차 침략)

후에도, 우리나라 임금과 정치지도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국방을 튼튼히 방어

못하고 내치도 소홀하여, 외세의 침략으로 국토는 짓밟히고 백성들은 고초를 당하였다.

그럼에도 그 후, 치욕의 병자호란(1636~1637), 나라 잃은 36년간의 일제강점시대

(1910년의 한일합방~1945년의 해방), 동족상잔의 6.25전쟁(1950~1953의 휴전협정) 등의

전란으로 인하여 국토는 초토화되고 백성은 죽임과 가난의 참변을 당하였다.

 

징비록의 가르침이 아니라도, 이러한 근, 현대사의 참혹한 역사가 바로 눈 앞에서

오늘의 우리들에게 어떻게 국방을 튼튼히 하고 사회를 안정시켜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우리나라 지도층은 이를 깊이 인식치 못하고 난장판이다.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미 일 중 러의 이해(利害)역학 와중에 제길 찾지 못하는

외교정책, 폭도 같은 북한이 핵을 가지고 언제 전쟁을 발발할는지 모르는 전쟁위협,

전세계적으로 힘들고 불투명한 경제상황 등, 그리고 국내적으로 사회불안, 경제침체,

정치권의 난장판, 부정 부패 비리의 만연, 끼리끼리 고리문화, 계층 세대간의 갈등,

소통부재, 종북 좌파의 선동, 인구의 노령화, 빈부격차의 심화 등, 넘고 풀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내편 네 편으로 갈려 미워하고 공격하고 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징비록의 교훈과 가르침의 채찍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 같다.

 

징비록을 읽으며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니, 이 책에서 나오는 겁 많고 도망하고

나약한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의 자신의 모습이다. 징비록에서 일어난

상황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다면, 땅과 하늘을 뒤흔드는 조총소리와 새카맣게

몰려드는 일본군을 본다면, 나도 겁을 먹고 무기와 식량을 다 물에 빠뜨리고

혼비백산한 군사와 양민을 내버려둔 채 먼저 도망갈지 모른다.

나의 몸에는 그 선조들의 피가 흐르고, 그들이 했던 시행착오와 실수를

나 또한 매일 되풀이하고 있고, 그러고는 곧 뉘우치기 때문이다.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지도자, 대통령을 비롯한 특히 정치, 행정, 국방, 외교

지도자들은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지금 무얼 해야 하며 어떻게 대비해야 하며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 무엇부터 챙겨야 할지 돌아보며, 징비록에서 지적한 유성룡

재상의 뼈아픈 교훈을 귀담아 듣고 가슴에 새겨 정책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가져온 곳 : 
카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
글쓴이 : 恩波|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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