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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삼성의 몰락

淸潭 2015. 2. 14. 14:20

[북리뷰] 삼성의 몰락

  • 손희동 기자

     

  • 입력 : 2015.02.14 08:00

    [북리뷰] 삼성의 몰락
    심정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 300쪽 |1만4000원

    “GM과 소니가 걸었던 몰락의 길을 삼성이 따라 걷고 있다.”

    저자의 출발점은 제목만큼이나 파격적이다. ‘이재용(JY) 시대를 생각한다’라는 부제도 직접적이다. 저자가 삼성맨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더 놀랍다.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을 당시 TF팀에 참여했던 저자는 “GM의 몰락은 삼성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이유를 든다. 미국 자동차 애널리스트 메리앤 켈러가 GM의 문제로 지적했던 것들이다. 책임지지 않는 관료주의, 유리감옥에 갇혀 현장을 도외시한 CEO, 현장 책임자가 아닌 재무부서 출신이 출세하는 인사와 경영시스템, 경영진과 직원 사이의 엄청난 인센티브 차이, 조직내 의사소통 단절 등이 고스란히 삼성의 현재를 진단하는 것 같다고 쓴다.

    저자는 쌍용그룹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해 1993년 삼성그룹 승용차 사업 TF팀인 삼성중공업 중장비사업본부 경영기획실과 삼성그룹 21세기 기획단, 대외협력단, 에스원 등을 거쳤다. 재직 중 만났던 삼성인과 삼성그룹 관련 비화들을 책에서 거침없이 쏟아냈다.

    저자에 따르면,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끌어올린 스마트폰 갤럭시의 성공은 삼성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삼성은 애플보다 늦게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특유의 집중력으로 세계 1위를 거머쥐었다. 스마트폰의 제조는 물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까지 모두 만들어 낸 저력이 원동력이 됐다. 이른바 물량 공세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런 전략으로는 중국 업체를 당할 수가 없다. 삼성의 경영 전략을 따라 하던 샤오미와 화웨이 등이 중국 시장을 잠식해 삼성을 위협하고 있다. 오히려 다양한 영업 채널과 중국인 수요에 맞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삼성은 조금씩 뒤처지는 형국이다. 삼성은 고가 정책에 있어선 애플에 밀리고, 중국 시장은 이제 현지 업체에 내줘야 할 판이다.

    저자는 “삼성이 산업 규범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등에 자만하지 말고 삼성만의 규칙을 만들어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다.

    최근 5년 새 전통 제조업은 공급 과잉을 겪으며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 감소 국면에 진입했다. 이제는 구글과 같은 인터넷 기업과 애플처럼 소프트웨어가 강한 기업, 알리바바나 페이스북 같은 혁신 기업들이 전통 제조업을 앞지르고 있다.

    삼성은 이런 시장 변화에 둔감했다. 알았다고 해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GM과 소니가 1위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후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중국 업체의 반격은 무섭다. 미국의 애플이나 구글은 삼성과의 승부처가 달랐지만, 지금 중국 업체들은 삼성과 같은 시장을 놓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삼성의 전략을 따르던 샤오미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소비자를 이해하는 반면, 삼성은 빅데이터라는 정체가 모호한 대상에 의존해 시장을 이해하려 들었다”고 분석한다.

    경영권 승계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눈앞에 뒀다는 점도 삼성의 숙제다. 저자는 여러 돌발 상황 중에서도 “이건희 회장이 식물인간 상태로 장기 생존할 경우”를 가장 걱정스럽게 생각한다.

    이건희 회장을 보좌하며 1조원대의 부자가 된 이학수 전 부회장을 비롯한 측근들과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의 친인척들이 어찌 보면 경계 대상이라고 저자는 지목한다. 물론 이들이 경영권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여론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한편으론 다독거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재용 체제의 안착을 장담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본다.

    실제 이건희 회장 입원 이후 이재용 부회장이 이렇다 할 경영 성과를 낸 게 없다. 당장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방산ㆍ화학계열사 매각에 대해 저자는 “너무 신속하게 처리돼 이상하다”고 지적한다. 삼성동 한전부지 입찰에서 현대차에 밀린 것도 삼성으로서는 쓰린 상처다.

    이재용 부회장의 결혼과 관련해 다소 흥미로운 분석도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이 호남의 대표적 기업인 대상가와 사돈을 맺음으로써 삼성 입장에서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었던 김대중 정부와 원만하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1998년,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임창욱 대상 회장의 장녀 임세령과 결혼했다.

    저자는 “이재용의 호남 기업 오너 자제와의 결혼이 삼성이 DJ 정권을 잘 견디게 해준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야당 생활을 오래한 김대중 대통령은 호남 지역 기업인으로부터 수십년간 물심양면 도움을 받았다.

    이 밖에도 관리의 삼성이라 불리는 삼성 조직문화의 실체, 직급 관련 제도, 공무원 또는 협력사와의 에피소드 등 삼성 내부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소소한 재밋거리도 볼거리다. 삼성의 경영전략은 물론, 사내문화, 조직체계 등 삼성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여다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