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24 02:58
만화에 등장한 첫사랑
대학 때 소식 끊긴 그녀 총리된 다음해에
모범적 여자 통장이라며 집무실로 표창 받으러 와
-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휠체어에 탄 채 최근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입원한 부인박영옥 여사를 간병하고 있다/ 정진석 전 의원 페이스북
―‘끝없는 세상의 반려’라고 한 박영옥 여사가 요즘 건강이 안 좋다고 들었다.
“병원에 있다. 간호사들이 참 열심히 돌봐준다. 미안한 일이 많다. 호강 못 시켜준 게 제일 미안하다. 전시(戰時)였고, 5·16혁명이 있었고. 젊어서는 예뻤지. 그런데 내가 고생시켜서….”
김 전 총재는 195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 박상희의 딸과 결혼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면이 그렇게 좋았나.
“1950년 전쟁 중인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금 바쁘지 않으면 나랑 얘기 좀 할까?’ 하더라. 무슨 얘기 하려나 하고 따라갔더니, ‘내 조카딸 봤지? 어때?’ 하길래 ‘아하, 나한테 주려는 모양이다’ 했다.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거야, 좀 데려갈 수 없어?’ 하더라. ‘본인이 좋다고 하면 나는 좋습니다’ 했더니 ‘본인이 좋대’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좋다고 했다.”
-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공화당의장/ 조선일보DB
박정희 대통령의 결혼 선물
전쟁 중이라 못 간다면서 소 한 마리 보내 와
그 소로 사흘 동안 잔치 그래도 고기가 남았다
―결혼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황소 한 마리를 선물로 줬다고 하던데.
“결혼식날 저녁에 밖이 시끄러워 나가 보니 박 전 대통령이 소 한 마리를 보냈다. 편지에는 ‘내가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전쟁 중에) 싸우느라 도저히 못 가니 소 한 마리를 보낸다’고 쓰여 있었다. 그게 1951년 2월 15일이다. 그 소로 사흘간 잔치를 하고도 고기가 남았다.”
김 전 총재는 이날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보좌진들은 “요즘 식욕이 없으신지 잘 안 드셔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대신 박 여사를 돌봐주는 간호사들에게 줄 거라면서 빵과 간식을 챙겼다. 김 전 총재는 2008년 12월 뇌졸중을 겪은 후 계속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요즘 가장 규칙적인 일과는 두 개 병원에 차례로 들르는 것이다. 오후에 서울 아산병원에 가서 재활 치료를 받고 순천향병원에 가서 부인을 돌본다.
“국민을 호랑이로 알아라”
―정치를 ‘허업(虛業)’이라고 정의했다.
“경제 하는 사람들은 실업(實業)이라고 한다. 경제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씨를 뿌리고 수확으로 보수를 받지 않나. 정치는 보수가 없다. 잘한 일은 국민들이 나눠 가지니까. 정치인으로서는 일종의 허업 아니냐는 뜻으로 한 얘기다.”
―정치인은 보수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인가.
“남는 게 있으면 국민이 나눠 갖는 것이다. 정치인은 그저 봉사할 뿐이다. 정치인이 자기가 잘해서 나라가 잘됐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미국 캔자스시티에 트루먼 기념도서관이 있는데 거기서 트루먼 대통령을 만난 일이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을 해본 사람으로서 작은 나라에서 봉사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들려줄 교훈이 많을 테니 얘기해 달라고 했다. 그는 교훈은 무슨 교훈이냐고 한참 웃더니, ‘국민을 호랑이로 알라, 맹수로 알라’고 했다.”
―국민을 무섭게 생각하라는 뜻인가.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좀 해놓으면 내가 이렇게 위대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랑이는 사육사가 여름에 더울까 봐 물 끼얹어주고 배고플까 고깃덩어리 주고, 아무리 잘해줘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맹수다. 사육사는 내가 사랑하고 돌봐주니까 호랑이가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기가 뭘 좀 했다고 해서 국민이 아주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바보다. 왜? 호랑이는 아무리 사육사라 해도 자기 발을 밟거나 비위에 거슬리면 왕 하고 물어버린다. 그게 국민이다. 내가 국민을 위해서 이렇게 했으니 날 알아주겠지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건 미련한 거다. 국민이 호랑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트루먼은 아무리 잘해줘도 비위 거슬리면 사육사를 물어 죽이는 호랑이처럼 국민도 대통령과 정치인을 쫓아낸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과 정치인은 국민이 호랑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은데.
“국회에 정치하는 사람 많지만 국민을 호랑이처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국민을 그렇게 무서워했으면 지금처럼 되지도 않는 일을 저렇게 할 리가 없다. 정치인은 더 겸허하게, 더 노력해야 한다. 자기를 버리면서 나라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게 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