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치질 수술을 받은 직장인 김모(49·서울 관악구)씨는 3년 전부터 가끔씩 선홍색 피가 섞인 혈변이 보이자 치질 재발이라고 생각했다. 항문외과에서 검사와 치핵 재수술을 받은 뒤, 증상도 일단 좋아졌다. 하지만, 얼마전 우연히 받은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대장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대장암 진행 때문에 재발된 치질을 단순 치질로 착각해 병을 키웠다"고 말했다.
혈변은 대장·항문 건강 악화를 알려주는 적신호인데, 대수롭잖게 넘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혈변에 대해 정확히 알아본다.
◇색깔: 선홍색도 대장암 가능성
선홍색 혈변이면 치질, 검붉으면 대장암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혈변의 색깔은 대장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생겼는지를 보여줄 뿐, 그것만으로 질병을 구별할 수 없다. 전북대병원 소화기내과 김상욱 교수는 "선홍색이면 항문과 가까운 대장 왼쪽에, 적갈색이면 안쪽 깊은 곳인 오른쪽에 염증이나 종양 등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선홍색 혈변이 보였다고 무조건 치핵 수술을 받아서는 안된다. 김 교수는 "치질과 다른 대장질환이 겹친 사람이 치질 수술만 받으면 대장질환이 일시적으로 묻혀서 악화한다"며 "원래 치질이 있는 사람이 혈변을 보더라도 3~5개월 내에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반드시 대장내시경부터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 고대안암병원 제공
◇횟수: 한 번 혈번으로 숨질 수도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덕우 교수는 "혈변을 한 번만 봐도 생명까지 위험한 경우가 있다"며 "이 경우에는 곧바로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어지럼증이나 구역 등이 생긴 뒤에 혈변을 봤다면, 대량출혈로 이어지는 허혈성 대장염일 수 있다. 대장게실이 터져서 나오는 혈변도 대량출혈을 유발해 목숨을 위협한다. 대장게실이란 약해진 대장벽이 주머니 모양으로 늘어져 튀어 나온 것이다. 혈변과 함께 배가 빵빵한 증상이 있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어지러우면 게실이 터진 것이다.
◇배변습관: 우측 이상은 변화 없어
혈변은 봤지만, 통증이 없고 변이 가늘어지지도 않았으니 대장암은 아닐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자. 고대안암병원 소화기내과 진윤태 교수는 "대장 오른쪽은 대변에 수분이 많고 부드럽기 때문에 종양이 생겨도 변의 굵기나 굳기가 변하지 않아 빠른 진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우측 대장에 종양이 생기면 무른 변을 보거나 설사를 하고, 통증이 없다. 혈변과 함께 변 형태가 바뀌고 통증이 심한 경우는 대장 왼쪽에 종양이 생겼을 때다. 따라서, 혈변이 보이면서 체중이 줄고 빈혈이 생기면, 별다른 배변 불편이 없다고 해도 전문의의 진단과 대장내시경 검사가 필요하다.
◇나이: 20대 혈변도 대장암 신호
젊은 사람은 혈변을 봐도 대장암은 아닐 것이라고 여긴다. 의료계도 대장내시경 검사는 50세 이상부터 5년에 한 번씩 받으라고 권한다. 하지만, 대장암 환자 중에는 젊은 사람도 상당수이며, 젊은 사람의 암은 진행 속도가 빠르므로 방심하면 안된다. 대한대장항문학회가 최근 10년간 대장암 환자를 추적 조사한 결과, 대장암 환자 10명 중 2명은 20~40대였다. 대장암 가족력이 있는 젊은 사람이 혈변을 보면 대장내시경으로 암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 김현정 헬스조선 기자 khj@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