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16 03:07 | 수정 : 2012.03.16 10:35
정기정씨의 원당 '푸른 숲 마을'
도심서 뜻 있어 온 학부모들, 대안학교 바로 옆에 여덞 채… 담백하고 편리한 집으로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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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정기정씨
최근 이 마을 산턱 아래 있는 '준하네 집'을 찾았다. 성경천(43·회사원)·옥정인(43·고교 교사)씨 부부와 대안학교에 다니는 큰아들 준하(11), 대안유치원에 다니는 작은아들 시현(5), 네 식구가 사는 집. 연면적 226.7㎡(약 68.7평), 대지 660㎡(약 200평) 규모의 지하 딸린 1층 집이다. 가족은 경기도 분당 아파트에 살다가 2010년 초 이 집을 짓고 도심 생활을 청산했다.
"함께 '숨 쉬는 집'이 목표였습니다. '자연'과 함께,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집 말이에요."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 정기정(43·유오에스 대표)씨는 "'참된 교육'과 '진정한 이웃'을 원하는 학부모의 공통된 마음을 집으로 풀어냈다"고 했다. 정씨는 푸른 숲 발도르프 대안학교를 설계한 인연으로 이 마을에 유치원과, 준하네 집을 포함한 주택 여섯 채를 설계했다. 푸른 숲 마을 전체의 설계자인 셈이다. 그는 2010년 이 프로젝트를 대표작으로 문화부로부터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건축주의 요구는 소박하지만 분명했다. "남편이 서울로 통근해야 했고 예산도 32평짜리 분당 아파트를 판 돈(4억원)에 맞춰야 했어요. 그저 '시원하고 따뜻하고 아파트처럼 편리한 집'을 지어달라 했어요. 다른 집도 다들 아이들 양육 때문에 빠듯한 살림에서 한 결정이라 사정이 비슷했고요." 창밖으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며 안주인 옥정인씨가 말했다.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에 있는 준하네 집.‘ 예산이 적게 들고 아파트처럼 편리한 집’을 원하는 건축주를 위해 단순한 직사각형으로 1층을 설계했다. 오른쪽 위 데크(나무 마루)가 깔린 부분에 지하 1층을 파 안방과 서재를 배치했다. /사진가 박완순
또 다른 염두는 '나 홀로 집'이 아닌 '함께 하는 주택(집합주택)'이었다. 정씨는 "건축주들이 공동체에도 관심이 많아 자기 집에 대한 욕망만 고집하기보다 단지 전체의 풍경을 생각하더라"고 했다. 그는 "반상회처럼 여섯 집 학부모 건축주와 몇 차례 모여 외벽 소재와 형태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결정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획일'은 아니었다. 각자 개성은 갖되 통일성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따뜻한 마을 분위기를 내려 붉은 벽돌과 적삼목을 외벽에 쓰기로 했다. 준하네 집 역시 이 가이드라인을 따랐다. 건축가가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마을 인상을 좌우하는 지붕이었다. 정씨는 "아이들의 꿈이 비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려 박공(삼각형) 대신 갈매기가 날아가는 형상을 모티프로 잡았다. 집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준하네 집은 갈매기 형태를 뒤집었다.
- (사진 위)출입구 쪽 계단에서 본 집의 옆 모습. 경사지를 살려 지하 1층을 만들어 옆에서 보면 2층집처럼 보인다. (사진 아래)‘푸른 숲 마을’전경. 맨 오른쪽 두 동이 푸른 숲 발도르프 대안학교이고 산 쪽으로 집 네 채가 나란히 있다. 왼쪽 끝 집이 준하네. 모두 정기정씨가 설계했다. /사진가 박완순
이사 온 지 2년째. 교사로서 새로운 교육과 거주를 '모험'하고 있는 옥정인씨는 "삶이 교육이 된 것 같아 만족한다"고 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고 식구가 늘었어요. 진도개 두 마리와 토종닭 다섯 마리가 생겼으니까요." 거실에 앉아 빙그레 웃는 엄마 뒤로 준하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엄마, 닭이 또 알 낳았어. 오늘만 네 개째야!" 준하의 꿈은 목수 또는 농부란다. 자연 속 집이 싱싱하게 길러낸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