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붓다를 만난 사람들] ④ 웁파라반나

淸潭 2010. 6. 18. 14:00

[붓다를 만난 사람들] ④ 웁파라반나(Uppalavaṇṇā)
 
애욕의 실체를 꿰뚫어 속박에서 벗어나다
기사등록일 [2010년 06월 14일 15:10 월요일]
 

남편의 외도 비관해 집 떠나 방황
집착서 비롯됨 깨닫고 승가에 귀의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의 죽림정사에 머무르고 계실 때의 일이다. 소문을 들고 설법을 듣고자 몰려드는 사람들 틈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한 여인이 있었다. 저주받은 자신의 운명을 비통해하며 정처 없이 떠돌던 그녀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간다는 말을 듣고 합류한 것이었다. 삶에 대한 미련 따위 이미 털끝만큼도 남아있지 않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은 깨달은 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런 기구한 삶을 살며 고통 받아야 했는지….

그녀가 죽림정사에 도착했을 무렵, 부처님께서는 이미 설법을 시작하고 계셨다. 저 멀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앉아계신 부처님의 모습이 보였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음성을 좇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부처님께서는 그녀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듯 따스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셨다. 부처님 발 앞에 엎드린 그녀는 흐느껴 울며 말했다. “부처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도대체 제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토록 비참한 불행을 두 번이나 경험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측은한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가엾은 여인아, 인간은 이 세상에 고통 받기 위해 태어났느니, 사람이 고통 받는 이유는 마음에 집착이 있기 때문이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마음, 아집(我執), 이것이야말로 인간 고통의 원인이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그녀의 뇌리에 지난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이름은 웁파라반나. 연꽃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피부색을 지녔다 하여 웁파라반나(연꽃색)라 불렸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 미모의 유래가 과거세까지 거슬러 올라가 말해질 정도이다. 환생할 때마다 보랏빛이 도는 청련의 꽃잎 안쪽과 같은 피부색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원을 세운 결과, 이생에서 이렇듯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사왓티의 어느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태어난 웁파라반나는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혼기가 찼을 무렵, 서인도 아반티국의 웃제니라는 도시에 사는 한 청년을 보고 첫눈에 반해 그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아름답고 상냥하여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웁파라반나, 그리고 성실하고 늠름하여 더할 나위 없이 믿음직한 남편. 이 둘은 서로에 대해 깊은 애정을 느끼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임신한 웁파라반나는 당시 인도의 관습대로 산달이 가까워지자 출산을 위해 친정을 찾았다. 어느 덧 출산의 날이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을 꼭 빼어 닮은 건강하고 예쁜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행복했다. 마치 세상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딸과 남편 공유한 기구한 운명

그러나 행복은 더 이상 그녀 곁에 머물러주지 않았다. 임신한 아내를 걱정하며 틈나는 대로 처가를 드나들던 남편이 자신의 어머니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하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 남자를 어머니와 함께 남편으로 삼게 된 더럽고 저주받은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 웁파라반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두려움을 느꼈다. “어머니와 딸이 같은 사람을 공유하다니…. 이 저주받은 운명이여, 더러운 그 숙연(宿緣)이여.”

깊은 절망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지만, 자신의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웃고 있는 사랑스러운 딸을 버릴 수는 없었다. 또한 피를 이어받은 어머니와 딸이 한 남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이 알려졌을 때 돌아올 비난과 고통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웁파라반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감내하기로 했다. 그녀의 남편과 어머니는 그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관계를 지속했고, 웁파라반나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억누르며 7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 그리고 딸이 일곱 살이 되던 해, 결국 그녀는 자고 있는 딸에게 이별을 고하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정처 없이 떠돌던 그녀가 도착한 곳은 베나레스였다. 지칠 대로 지쳐 길가에 쓰러져 있던 그녀를 발견한 것은 베나레스의 유명한 상인이었다. 따뜻한 마음을 지녀 평소에도 약자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왔던 그는, 웁파라반나를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간호했고, 덕분에 그녀는 원기를 회복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상인은 웁파라반나에게 청혼을 했고, 결국 둘은 결혼식을 올렸다. 더 이상 그녀의 인생에 없을 것만 같던 행복이 다시 찾아왔다.

남편은 오로지 그녀만을 바라보며 정성을 다했고, 웁파라반나도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지워가며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문득 문득 웃제니에 두고 온 딸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올 뿐이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또 다시 불행이 그녀를 찾아왔다.

웃제니로 여행을 갔던 남편이 그 곳에서 만난 젊은 여자를 데려와 두 번째 부인으로 삼은 것이었다. 돈 많은 상인이 두 번째 부인을 둔다는 사실 자체는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 아이가 자신이 예전에 웃제니에 두고 온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 다시 웁파라반나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그녀가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도 기구한 운명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 길로 그녀는 또 다시 집을 나섰고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방황하다, 이렇게 지금 부처님 앞에 서게 된 것이었다.

“사람이 고통 받는 이유는 마음에 집착이 있기 때문이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마음, 아집, 이것이야말로 인간 고통의 원인이니라.”

웁파라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자신의 남편을 어머니와 공유하고, 다시 얻은 남편을 이번에는 자신의 딸과 공유해야만 했던 기구한 운명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두 남편, 어머니, 딸의 집착과 애욕이 만들어낸 상황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애욕과 집착이라는 그물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속박한 채 두려움에 떨어 온 지난 삶을 돌아보며, 그녀는 허탈감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갈애는 목마른 자가 물을 원하듯이 격렬하고 끝없으며 강하다. 갈애는 인간의 이성도 지식도 모두 태워버린다. 이 갈애를 없애지 않는 한, 마음의 평화는 얻을 수 없고, 진정한 행복 또한 찾아오지 않느니라.”

그 날 설법회가 끝난 후, 웁파라반나는 자신의 과거를 부처님께 털어 놓으며 출가를 청했다. 부처님은 따뜻하게 그녀를 받아주셨다. 그녀는 열심히 정진했고, 출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 모든 번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
“쾌락의 기쁨은 모든 곳에서 파괴되고, 무명이라는 암흑 덩어리는 산산조각 났다. 악마여, 알아라. 너는 산산이 부서졌다.”

사왓티라 불리는 화려한 도시 근처의 한 숲속. 웁파라반나는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사라나무 밑에 앉아 고요히 명상을 즐기고 있었다. 수면 위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꽃봉오리를 틔운 한 송이 연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를 향한 남성들의 시선은 뜨거웠다. 그런 시선들을 뒤로 한 채, 한적한 숲속에서 그녀가 홀로 앉아 명상에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비구니여,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너의 아름다움을 탐해 달려들 악한들이 무섭지 않느냐. 어찌 이리 홀로 앉아 있느냐?”

그녀의 명상을 방해하고자 악마가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 같은 악한이 수 천 명이 달려든다 한들, 내가 두려워할 듯 싶으냐. 나는 이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 이제 내게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것은 없다.”

비구니 가운데 신통제일로 불려

어쩌면 이는 그녀 스스로가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자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수많은 애욕의 눈길. 악마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된 그녀에게 있어, 이제 그 무엇도 두려움이나 공포를 일으키며 자신을 속박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 있었다. 애욕으로 뒤엉킨 기구한 삶을 살며 고통 받았던 그녀이기에, 오히려 애욕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녀는 부처님의 비구니 제자 가운데 신통제일로 불릴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깊어 동료수행자나 재가신자들 사이에서 공경 받는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빛나는 피부 안에 숨겨진 지혜의 빛이 애욕으로 뒤덮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훌륭한 수행자로 거듭난 그녀였지만, 또 다시 견디기 힘든 시련이 닥쳤다. 웁파라반나를 연모하던 한 청년이 그녀의 암자에 숨어 있다가 탁발하고 돌아온 그녀를 겁탈한 것이었다.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겁탈은 당했으나, 이미 애욕의 실체를 꿰뚫어 보고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그녀에게는 아무런 욕망도 없었기에, 이 사실을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다른 수행자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처분을 기다렸다. 이 일을 들은 출가자들 사이에서는 과연 번뇌를 제거한 아라한도 정욕에 대한 만족감이 있는가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의문이 일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 ‘번뇌를 제거하여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애욕에 빠지는 일도 없고 정욕에 만족하는 일도 없다’고 하시며, 그녀에게 무죄를 선언하셨다고 한다.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끝없이 애욕의 희생물이 되었던 웁파라반나. 순탄치 못한 어두운 인생을 살며 처절하게 고통 받은 그녀이지만,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삶은 새로운 빛깔로 되살아났다. 기구한 삶을 살았기에 오히려 인간 고통의 실체를 여실하게 직시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은 웁파라반나. 그녀에게 있어 삶은 곧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1052호 [2010년 06월 14일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