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수경스님, 승적ㆍ주지 등 모든 소임 내려놓다

淸潭 2010. 6. 15. 13:56

수경스님, 승적ㆍ주지 등 모든 소임 내려놓다

오늘(6월14일) 오전 서신 남겨

“초심으로 진솔하게 살고 싶다” … 연락 두절

 

 

불교계 환경운동에 앞장서 온 수경스님이 “조계종 승적을 비롯해 화계사 주지,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소임을 모두 내려놓겠다”는 뜻을 밝힌 채 연락이 두절됐다.

수경스님은 오늘(6월14일) 오전 남긴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서신을 통해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며 모든 권위와 소임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어 수경스님은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면서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환경운동에 솔직한 소회도 비쳤다.

<사진설명> 종단 직할사찰 서울 화계사 주지 재임돼 지난 4월12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에서 총무원장 자승스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수경스님.

또 수경스님은 화계사 사부대중에게 남기는 글에서도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대접받는 중노릇을 하겠냐”면서 “더 이상 제 자신을 속이면서 위선적이 살 수는 없다”고 떠나는 이유를 밝혔다.

이 같은 수경스님의 결정에 대해 불교계 단체에서는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면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의 입적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경스님은 지난 1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문수스님 소신공양 기자회견에서 “이제 큰 고민과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4대강 사업 저지와 관련해 수경스님 스스로가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조계종의 한 중진 스님은 “수경스님이 환경 및 생명평화 운동에 나서며 세운 원력을 온몸으로 실현하려고 했던 점과 최근 문수스님 추모 과정에서 나타난 종단의 행보에 대한 총체적인 결과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짐을 스님에게만 맡기고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고 이번 일이 우리들의 각오와 원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울 화계사 부주지 수암스님은 “6.2 지방선거 이후 4대강 사업 저지위한 틀이 마련됐다고 보고 잠시 쉬시고 싶은 마음이 크셨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중 스님들과 함께 흔들림 없이 정상적으로 사찰을 운영해 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불교환경연대는 오늘(6월14일) 오후 긴급회의를 개최, “스님의 결정에 공감하지만 모든 걸 내려놓으시겠다는 스님의 결정을 차마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이 든다”며 “스님의 고뇌를 함께 짊어지지 못하고 용기 있게 실천하지 못한 것을 성찰하고 참회한다”고 밝혔다.

엄태규 기자

 

다음은 수경스님이 남긴 글 전문.

 

   

다시 길을 떠나며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먼저 화계사 주지 자리부터 내려놓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화계사 사부대중께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주지 자리도 내려놓고, 승적도 버리고 떠납니다. 제가 도인이 아닌 이상,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남은 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막상 이렇게 떠나려 하니 화계사 신도님들이 가장 먼저 마음 쓰입니다. 이 역시 수행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40여 년 출가자로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주지 노릇을 한번 해 봤습니다. 그곳이 바로 화계사지요. 제게는 특별한 곳입니다. 선방이나 거리에서 보낸 것과 또 다른 보람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이런 저런 일을 많이 벌였지요. 딴에는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도량을 만들겠다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도님들은 저를 믿고 따라 주었지요. 생각만 해도 눈물 나도록 고마운 인연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들 곁을 떠납니다. 얼굴을 맞대고 작별 인사를 고하는 것이 예의겠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제 마음이 흔들릴 것 같고, 괜히 신도님들을 심란하게 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안 되는 걸 되게 해 달라고 빌 게 아니라, 원의 성취 조건을 만드는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사바라는 세계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온갖 욕망과 업이 충돌하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업력을 원력으로 돌려놓는 그런 기도 말입니다. 늘 말씀드렸듯이 금생인연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더 정진하셔서 좋은 결실 맺으시기 바랍니다.

화계사 신도님들, 이렇게 떠나는 저가 밉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해해 달라고, 용서해 달라고 않겠습니다. 다 지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잘 알듯이 주지 소임을 맡은 동안 안팎으로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늘 돌이켜보면서 부끄러운 점이 많았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과연 신도님들로부터 공경 받을 자격이 있기나 한지 자문해 봤습니다. 제 양심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최근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노라니 제 삶의 문제가 더 명료해지더군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벼락 쳤습니다.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대접받는 중노릇을 하겠습니까. 계속 그랬다가는 얼마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남은 인생이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제 자신을 속이면서 위선적인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이대로 살아서는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드린 대로 기도하는 삶조차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기로 했습니다.

화계사 신도님들, 여러분들은 한 시절 저의 스승이었고 도반이었습니다. 그 고마움을 어찌 제가 잊을 수 있겠습니까. 늘 평안하시기를 빌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2010-06-14 오후 6:49:33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