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바람결이 부드럽기에 도량을 거닐다 그간 미처 챙겨보지 못한 구석진 곳을 찾아가 보니 입춘(立春)이 지난 절기라 그런지 잔설(殘雪)마저 녹아내린 자리엔 어느덧 이름 모를 새싹들이 뾰족뾰족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한동안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산색을 생명력에 대한 경이로움 속에서 바라보는 재미로 지내게 될 것 같습니다.
옛 사람들의 “봄이 오니 풀이 저절로 푸르러진다(春來草自靑)”는 시구를 읊조리면서….
꽃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에 바람이 있는 줄 알고 분주하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뒷뜰에 소리 없이 피어난 매화꽃은 보지 못하고 앞 동산으로 매화꽃을 찾아 다니는 분주한 나그네는 아니더라도 봄향기에 흠뻑 젖어 가슴 설렐 날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산중에 스님들이 해제일을 맞아 가벼운 무명옷 한 벌에도 한없이 감사해하며 길을 떠날 때쯤이면 저도 진묵 스님(震默大師)의 그 웅대(雄大)하고 고준(高峻)한 경지에 풍류시(風流詩)로 흥을 맞추며 떠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을 이불삼고 땅으로 자리하고 산으로 베개삼아
구름으로 병풍치고 달빛으로 촛불 삼고
바다로 술통삼아 거연히 크게 취해 일어나 춤을 추니
긴 소매자락이 곤륜산에 걸릴까 걱정이네.
天衾地席山爲枕
雲屛月燭海作樽
據然大醉仍起舞
却嫌長袖掛崑崙
진묵 스님도 우리도 다 같은 세상에 태어나서 똑같이 눈 있고 귀 있고 마음 있고, 예나 지금이나 하늘 땅 산 구름 등 대자연이 그대로 다 변함없이 있는데 어째서 삶 자체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역시 도(道)의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주인이 되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자연은 그대로 버려두고 늘 어리석은 탓으로 애착과 탐욕만 길러서 주인의 자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구경꾼과 종의 자리에서 허덕이는 것이 세상 모습입니다.
온통 봄 속에서 봄을 찾아 나서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꽉찬 보배창고 속에서도 불빛이 없어서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사람처럼 우리의 외로움과 가난과 고통은 내적인 지혜의 부족에서 시작되는 것이 더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당장 살아가는데 별 문제가 없어도 자신이 가난한 것으로 착각해서 자신의 행복은 저버린 채 남의 행복을 부러워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 도(道)를 닦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진묵 스님의 탕탕무애(蕩蕩無碍)하신 멋은 감히 흉내도 내보지 못하고 항상 육적(六賊: 여섯도둑, 눈·귀·코·혀·몸·뜻)의 침입을 받아서 도깨비불처럼 순간적인 쾌락을 쫓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수행을 한다고 집을 나서서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높은 산에 오르기도 하고 넓은 바다로 떠나기도 해보지만, 산마루에서는 해가 빨리 지는 것을 탓하고 바다에서는 파도소리가 시끄럽다고 탓하다 세월만 다 보내고 마니, 수행자가 이렇게 편협스러워서야 어느 때에 도를 깨쳐서 진묵 스님처럼 장삼소매가 곤륜산에 걸릴 것을 걱정하며 해탈무(解脫舞) 추어가며 살아보겠습니까?
마음의 해탈문이 열려야 비로소 청산이나 저자거리나 절이나 여염집이나 일체 구별 없이 모두 편안하고 청정하고 넉넉한 쉴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묵 스님의 시에 대해서는 그만 느낌의 말씀을 거두고 여러 분의 입학식을 축하하러 왔으니 입학축하선물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제가 말씀드리는 ‘바보 머슴 이야기’부터 잘 들어 주십시오. 그냥 듣는 것은 귀로 듣고 마는 것이고, 잘 듣는 것은 마음에 담아서 깊이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지체 높고 재산이 많은 영감집에 바보 머슴이 있었는데 하루는 영감이 다음날 장에 갈 계획을 세우고는 저녁에 바보 머슴을 불러서 “아무개냐! 내일 일찍 장에 가야 되니 그만 일 끝내고 쉬어라.” 했답니다. 그러고는 그 다음날 장에 가려고 바보 머슴을 찾으니 다른 머슴이 바보 머슴은 아침 일찍 혼자 장에 가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영감이 저녁 늦게 돌아온 바보 머슴을 보자 짚고 있던 지팡이로 후려지며 “네, 이놈! 너 혼자 장에 가서 뭘 하다가 이제 왔느냐?”고 호통치니 바보 머슴이 하는 말인즉 “영감님! 글쎄 저도 그걸 몰라서 하루 종일 장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해는 지고 배는 고프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더라는 것입니다.
영감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손에 있던 지팡이를 바보 머슴에게 주며 “이, 바보 천치야! 이 지팡이를 니 방에 잘 두었다가 혹시라도 너보다 더 바보를 만나거든 그 놈 주거라.” 하였습니다.
그 얼마 후 영감이 깊은 병이 들어서 누우니 병문안 온 사람들 마다 갈 때에는 한결같이 가족들을 위로하며 “영감님께서 이제 가실 때가 되었나 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보 머슴이 이 말을 듣고 지난 번 장에 혼자 간 것도 미안하고 해서 이번에는 잘 모시고 갈 생각에 영감을 찾아가 여쭙기를 “영감님, 요즈음 우리집에 오신 손님들께서 모두 영감님께서 곧 가신다고 준비하라는데 도대체 언제 가실지, 어디로 가실지, 무엇하러 가실지, 언제쯤 돌아오시게 될지 알아야 준비하고 따라나설 수 있기에 왔습니다.” 하니 영감이 아무리 생각해도 깜깜하기만 해서 “도무지 모르겠다. 혼자 가는 것은 분명한데 언제 갈지, 어디로 갈지, 왜 가야 하는지, 또 언제나 돌아오게 될는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바보 머슴은 영감에게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제 방의 선반 위에 두었던 지팡이를 영감에게 다시 돌려주며 “영감님! 이제야 이 지팡이 임자를 찾았습니다. 이제 보니 저보다 영감님이 더 바보이시니 지팡이를 다시 가지십시오.” 하며 따지기를 “지난 번 장에 갈 때에 저는 바보라도 아침 일찍 갈 줄 알았고, 장으로 갈 줄 알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영감님은 하나도 모르니 저보다 훨씬 더 바보가 아닙니까? 그러니 이 지팡이 임자는 영감님입니다” 하고는 지팡이를 영감님 손에 쥐어드리고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자, 이제 제 바랑(鉢囊)에 ‘바보 머슴표 지팡이’가 가득 들어 있는데 영감에게 바보 머슴이 여쭙던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분은 빼고 나머지 분은 한 개씩 선물로 받아가지십시오. 훗날, 바보 머슴의 물음에 다 답할 때가 되면 이 지팡이를 다른 분께 선물하셔도 됩니다. 공부하러 다닐 때 힘들고 게을러지면 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십시오.
저는 지금 여러분들께 입학선물을 골고루 드렸는데 여러분들께서도 제 바랑에 넣어 갈 선물을 좀 담아주셔야겠습니다. 주고 받는 것이 다 세상의 인심 아닙니까? 실은 제 취미가 무엇인고 하면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이 바랑에 모든 사람들의 근심, 걱정, 슬픔, 번뇌를 모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을 모두 지금 제 바랑에 집어넣어 주십시오.
제가 갈 때 몽땅 지고 가겠습니다.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입도 없고 밑도 없다.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
我有一鉢囊
無口亦無底
受受而不濫
出出而不空”
나의 이 바랑은 묘하고 무궁무진한 것이어서 온갖 행복이 다 들어 있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만을 꺼내 보여 드리자면 만족이라는 보물과, 지혜라는 등불과, 반성이라는 거울과, 정진이라는 수레와, 자비라는 옷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오늘 법회에 동참하신 인연으로 빠지시는 분 없이 다 골고루 평등하게 나누어 가지시고 이제부터는 저와 함께 모두 큰 소리로,
“나에게 고통은 없다. 지금의 고통은 착각으로 잠시 있다고 느끼는 것뿐이다. 고통은 본래 없는 것이다. 생사가 본래 없듯이….”라고 외쳐봅시다.
올해에는 수행자의 길로 가고자 불교대학에도 입학하셨으니 부디 지혜로운 마음으로 지나간 날의 일에 속지 마시고, 앞으로 올 날에도 공연한 의심과 욕심을 내지 마시고, 온갖 세상일은 다 부질없는 줄 알아서, 오나 가나 한결같은 생활을 지어갑시다.
늘 행복하시길 부처님께 축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지읍시다.
- 불교대학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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