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야단법석] 국토가 불신(佛身)

淸潭 2008. 3. 2. 22:32

국토가 불신(佛身)

 

인생에 있어서 인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연 있는 때에 인연 있는 곳에서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서 한 업의 무리를 이루어 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군인이라는 동업(同業)으로 모여서 부처님을 모시는 인연으로 수계법석(受戒法席)이 장엄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군인은 한 겨울 매서운 바람에도 떨지 않는 체력과 한 여름 불길에도 두려워 않는 정신으로 국토를 지키려는 투철한 국가관과 온 국민을 어버이처럼 존경하고 자식처럼 사랑하여 적으로부터 지키려는 강인한 민족관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려움이 다가오더라도 산과 같은 큰 뜻을 지녀서 흔들리면 안 되고 바다와 같은 넓은 뜻을 지녀서 변해서도 안 됩니다. 군인이란 모름지기 조국애와 민족애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숭고한 정신과 반듯한 행위를 지어가는 단체가 되기 위하여 규칙과 법률이 있듯이 지혜로운 마음과 자비로운 행동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불제자들에게는 ‘계’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계라는 것은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서로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덕목(德目)이요, 인행(仁行)을 권하는 좌표와 같습니다. 삶에 있어서 고통의 강을 건너는 뗏목이요, 행복의 세상으로 오르는 사다리인 것입니다.
군인에게 있어서 계의 기본 정신은 국가와 민족을 잘 지키기 위한 한 방편이기에 국가의 안녕을 위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오계(五戒)를 말씀드리는 것 또한 국가를 잘 지키고 국민을 잘 보호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의 의미로써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지 결코 군인의 신분을 버리면서까지 계를 지키라고 다짐받자는 것은 아닙니다.
계라는 것은 지눌 스님(佛日智照國師)의 말씀처럼 잘 지키고 파(破)하고 열고 닫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 쓰임이 손의 쓰임의 원리와 같아서 잡을 때는 잡고 놓을 때엔 놓아야 하며 문의 쓰임과 같아서 닫을 때는 닫고 열 때는 열 줄 알아야 됩니다. 문이라는 것은 열고 닫기 위해서 있는 것이니 늘 닫아 놓을 바엔 그냥 벽으로 둘 것이요, 늘 열어놓을 바에는 뚫어놓으면 그만인 것을 편리하자고 문을 달아놓는 것처럼 계도 수행의 문처럼 잘 열고 닫을 줄 알아야 공부에 진전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받으실 계는 군인의 길을 가는 데 인생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목마를 때에는 청정수가 될 것이요, 길을 헤매일 때는 나침반이 될 것이요, 병이 들었을 때는 약방문이 될 것이요, 가문 날에는 식량이 될 것입니다.
참다운 수계자는 대자비(大慈悲)의 실천을 위해서 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대자는 일체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요, 대비는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여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군인의 신분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자비의 실천행인지 늘 깊이 생각한 연후에 행동으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행동의 근원은 모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구경(法句經)에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악한 마음이 어디에서 생기느냐.
바로 너의 마음에서 생긴다.
선한 마음이 어디에서 생기느냐?
바로 너의 마음에서 생긴다.
지옥을 누가 만드느냐?
바로 너의 마음에서 생긴다.
극락을 누가 만드느냐?
바로 너의 마음에서 생긴다.”

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계란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며 선업을 쌓기 위해서 지켜가는 것이니 마음을 선하게 잘 지키면 계도 또한 잘 지키는 것이요, 늘 극락세계에 사는 것처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계를 지키는 정신으로 무장되어서 늘 마음을 선하게 가지면 일체가 다 잘 풀리고 화합도 절로 되고 몸은 건강해지고 정신은 맑아지는 공덕이 옵니다.
하지만 마음을 악하게 먹으면 아무리 단단한 무쇠도 제 몸에서 스스로 녹이 생겨서 삭아져 없어지듯이 자신의 몸과 정신도 병들고 화합도 깨지고, 군인이 병이 들면 국가의 안보도 무너지고 국가의 안보가 무너지면 국민의 평화와 안정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니 한 사람이 악한 마음을 일으키면 결국에 가서는 국가의 질서와 국민의 행복이 무너지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피어난 녹이 큰 무쇠덩어리를 다 삭게 해서 없애는 것처럼 마음 속에 있는 악의 존재의 병폐를 말씀드렸으니 이제부터는 생각을 좀 바꾸어서 국가를 무너뜨리는 것이 적군에게만 있다는 생각으로만 조국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적군보다 더 무서운 마음속의 악을 지켜서 물리쳐야 한다는 각오로 전쟁에 나갈 때 무기를 잘 챙기듯이 순간 순간에 계율을 잘 챙겨서 악한 마음은 무너뜨리고 선한 마음을 잘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지구상에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유일한 나라가 우리의 조국입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요, 가슴 저미는 일입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전쟁의 상처와 공포가 남아있는 가운데 평화통일을 열망하면서도 온 국민의 바람대로 통일의 길이 환히 보이지 않으며, 군복무의 의무도 없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은 휴전(休戰)의 상태이지 종전(終戰)의 상태도 아닌지라 이런 시점에서 국가가 태평하고 국민이 안락한 가운데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범국가적으로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해가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강대국인 마가다국의 아사세왕이 주변의 작은 밧지국을 침략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부처님께 뜻을 여쭙기 위해서 우사라는 대신을 보냈습니다. 우사의 설명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우사를 옆에 앉혀 놓고 아난 스님(阿難尊者)에게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질문을 하셨고 이에 대해 아난 스님이 대답하였습니다.
“질문의 첫째는, 밧지국 사람들은 요즈음도 서로 모여서 올바른 일을 의논하고 서로 회의를 자주하고 있느냐?
둘째는 밧지국 사람들은 임금과 신하가 화목하고 순응하여 상하 관계에 있어서 서로 존경하는 사회로 되어 있느냐?
셋째는 밧지국 사람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법도를 잘 알고 예의를 존중하며 어긋남이 없느냐?
넷째는 밧지국 사람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가?
다섯째는 밧지국 사람들은 전통적인 종묘(宗廟)를 잘 받들고 조상에게 공경을 다하느냐?
여섯째는 밧지국 사람들은 여인들이 추한 행동을 않고 말씨가 정직하고 순결하느냐?
일곱째는 밧지국 사람들은 스님들을 잘 받들고 종교지도자들을 존경하는 일에 게으름이 없느냐?”라고 부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이에 아난 스님이 공손히 진실되게 부처님의 질문에 대해 “예, 예” 하면서 밧지국 사람들이 모두 잘 실천하고 있음을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는 “밧지국 사람들이 이와 같이 살고 있다면 그 나라 국민은 더욱 화목할 것이요, 그 국가는 길이 안녕하며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곁에서 겸손히 듣고 있던 현명한 우사는 곧 돌아가 아사세왕을 설득시켜서 밧지국과의 전쟁을 미리 막았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밧지국과 같이 일곱 가지를 다 지키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인간이 서로 모여 삶의 터전으로 국가를 이루고 그 국가를 중심으로 인간들이 서로 만나서 국민을 이루고 사는 이상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국가의 주춧돌이며 근본이며 중심이며 기둥인데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큰 적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의 도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국가를 지켜 가는 것이라 국가의 안보는 모든 국민의 삶에 따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가(儒家)에서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도록 먼저 자신을 닦고 가정을 닦고 국가와 천하를 다스린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전통이 지켜져 온 나라입니다. 부처님께서 당신의 조국 카필라국에 코살라국의 군대가 쳐들어가자 그 길목에서 뙤약볕 아래 앉아계시어 지켜주신 것처럼 신라시대의 원광 스님(圓光法師), 의상 스님(義湘大師), 원효 스님(元曉大師)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시에는 서산 스님(西山大師), 영규 스님(靈圭大師), 사명 스님(四溟大師) 등이 나서주셨고, 일제의 강점기에는 만해 스님(卍海禪師), 용성 스님(龍城大師), 만공 스님(滿空禪師)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스님들께서 심신을 다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살다가 가셨습니다.
이처럼 스님들께서 신심과 도력으로 수많은 승려들을 이끌고 국가를 지키고 민족을 보호한 것은 국토가 곧 부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님들께서는 이 국토를 지키는 것이 부처님 나라를 지키는 것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요, 정토세계를 지키는 것이요, 중생을 지키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면밀히 호국불교정신을 오늘에까지 이어오신 것입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해인사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역시 외적의 침입 중에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서 이루어진 불사이며 각종 팔관회(八關會)와 수륙재(水陸齋)를 국가 차원에서 봉행한 것 또한 이러한 정신에서 이루어진 행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서로 부처님의 가피에 힘입어 뜻깊고 좋은 인연이 되어서 호국불교의 한 마당에 서게 되었으니 부디 호국경의 대표적인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의 말씀에 따라 지혜를 부지런히 닦고 지켜서 안으로는 우리 마음 속의 번뇌를 제거하여 이 국토를 살기 좋은 극락세계로 만들고, 밖으로는 국가의 재난 즉 전쟁, 내란, 질병으로부터 국토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대승보살은 세속을 초월한 지혜나 세속 속에 묻혀 살아있는 번뇌가 둘이 아님을 스스로 알아서 적절히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는 이시니 호국불교의 이 땅을 어찌 저버리겠습니까?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 확고히 태어나는 수계법회에 동참하신 여러분들께서는 부디 호국불교의 정신을 이어받고 오늘의 조국이 건재하는 데 힘이 되어왔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호국불교의 상징인 대한민국 군인정신으로 군복무에 최선을 다하시길 바라며 부처님의 가호 가피와 화엄성중님의 절대적인 용맹스런 힘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부처님전에 향 사르고 축원 올립니다.
신심이 강한 불자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불자로 자라납니다. 자랑스런 대한의 공군이 됩시다.
                    
- 공군교육사령부 수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