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서예실

한 자리에서 만나는 진경산수의 절정들

淸潭 2007. 5. 14. 16:19

한 자리에서 만나는 진경산수의 절정들

내일부터 우암 송시열 탄신 400주년 기념 서화전

 

올해는 조선후기 가장 강력한 지배이념을 세운 성리학자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태어난 지 꼭 400년 되는 해다. 간송미술관에서 이를 기념해 당대의 문화를 보여주는 ‘우암 송시열 탄신400주년 기념서화전’(13~27일·무료·02-762-0442)이 열린다.

▲우암 송시열이 신사임당의 그림에 써준 발문.

송시열만큼 극단적인 평가가 엇갈리는 학자도 드물다. 그는 율곡의 학통을 계승한 수장이었고, 노론의 영수로서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 이상 언급될 정도로 당쟁의 한복판에 있던 정치가이기도 했다. 신분질서가 요동치던 17세기에 그는 오히려 주자학의 의리론을 조선으로 가져오는 소중화(小中華) 사상을 내세워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남인과 벌였던 숱한 정쟁 때문에 83세에 임금이 내린 사약을 마시고 죽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노론이 다시 집권하면서 그는 전국 23개 서원에 제향되는 성인(聖人)의 자리에 올랐고, 그의 사상은 조선 후기 가장 강력한 지배이념이 될 수 있었다.

우암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우암의 작품은 단 한 점이고, 우암과 진경산수화를 무리하게 연결시킨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가 조선 후기 최고의 성리학자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실장은 “이념이 뿌리라면 예술은 그 뿌리에서 피어난 꽃이다. 우암이 확립해 놓은 조선성리학의 뿌리가 있었기에 진경산수의 꽃이 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시는 이런 시각에서 출발해 진경산수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둔다.

작품은 시대순으로 보여진다. 먼저 진경산수의 막을 열었다 할 수 있는 창강(滄江) 조속(趙涑·1595~1668)에서 시작한다. 그의 ‘고매서작(古梅瑞鵲)’은 늙은 매화나무에 앉아 있는 까치를 실제 보며 사생한 것이다. 이전까지 중국의 그림을 보고 그리던 것에서 벗어나 실경(實景)을 스케치한 것이므로 진경산수의 출현을 알렸다. 조속은 실제 금강산 진경산수를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겸재 정선의‘금강내산’. 간송미술관 제공

낚시꾼과 나무꾼이 문답을 하는 그림인 ‘어초문답(漁樵問答)’으로 서로 다른 두 화풍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어초문답은 세속에 찌들지 않은 낚시꾼과 나무꾼이 천지사물의 이치를 논한다는 북송시대 유학자 소옹의 글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명욱이나 홍득구의 어초문답 속 나무꾼은 중국식 빈 멜대를 메고 있지만, 겸재가 그린 어초문답에는 조선의 나무꾼들이 실제 메고 다녔던 지게가 등장한다. 겸재는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한강을 따라가며 광나루, 압구정, 인왕산, 남산 등을 그린 ‘경교명승첩’, 절정의 솜씨를 보여준 ‘삼부연’, 자신의 그림 두 점과 자신의 모습을 집어 넣은 ‘독서여가’ 등 겸재의 명작 20여점이 나온다.

우암의 시대가 변혁과 보수세력이 갈등하던 시대였던 만큼 문화 역시 전환기였다. 따라서 전환기 문화를 보여주는 서포 김만중, 호방한 여류 문필가 정명공주 등 17~18세기 문인과 화가들의 서화 100여점이 이 전시에 나온다. 우암의 글씨로는 신사임당의 그림에 써준 발문(跋文)이 나온다. 꾸밈 없이 중후한 글씨체가 우암의 성격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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