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筆 法
지면에 점획을 揮毫(휘호)할 때 올바른 집필법과 자세에 의하여 붓의 성능을 잘 살려서 어떻게 하면 점획에 자세와 性情(성정)이 잘 표현되어 생동미 있는 書를 揮毫(휘호)할 수 있는가 하는 즉 筆의 使用法(사용법)을 말하는 것이다.
用筆(용필)의 시간적 연속에 있어서 筆運(필운)의 요령 즉 抑揚(억양),緩急(완급) 遲速(지속),筆壓(필압)等의 變化(변화)에 의하여 書에 筆의 氣勢(기세)를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운필이란 간단히 말해서 점을 찍고 획을 긋는 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1획을 쓸때 처음에 붓을 대어서 끝으로 붓을 거둘 때까지의 붓의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붓의 운용 방법이다. 그리고 운필은 단순한 기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손을 함께 쓰는 수양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을 바르게 함과 동시에 손의 움직임을 같이 해야하는 수양이다. [心手竝用. 心正卽筆正]
1) 頓(돈) 提(제)
붓은 상대적인 활동(예: 가고 멈춤, 느리고 빠름, 가볍고 무거움 등)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그리고 글씨를 쓰는 것은 이러한 모순 대립되는 움직임, 특히 頓(按)과 提의 반복 교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 提 : 획을 쓸 때 붓끝을 당겨서 끌듯이 하는 것이다. 提는 붓을 점점 가늘어지게 하거나, 起筆 收筆 부분에서 붓을 누르고 난 뒤 붓을 움직일 때 행해진다. 구체적으로는 波 (파책)을 모을 때, 掠(약) 策(책)의 收筆 과정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 頓(按) : 提와 정반대로 붓끝을 누르거나 머무르는 것이다. 頓은 기필 수필의 꺾는 부분이나 방향전환시,그리고 점점 굵어지게 쓸 때 행해진다. 구체적으로 파책부분과 策 啄(탁)의 시작부분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하나의 획에는 굵고 가늠(粗細)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頓 提는 항상 한 획속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진다. 한 획이나 획 사이에 頓 提가 명확하면 할수록 粗細(추세)가 분명해지며, 粗細의 변화가 뚜렷하면 리듬감을 주어 肥瘦(살찌고 마름) 輕重(가볍고 무거움)의 변화도 나타나게 된다.
2) 轉(전) 折(절) 方(방) 圓(원)
* 轉 : 붓을 종이에 대고 둥글게 굴려 돌려서 모나지 않은 필획(筆劃)을 만드는 것이다. 행필과정에서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고 속도를 고르게 해야 한다. 전서(篆書)나 초서(草書)에서 많이 쓰인다.
* 折 : 꺾는다는 뜻으로 모난 필획을 만드는 것이다. 주로 기필이나 수필할 때 방향을 바꾸는 데 쓰이며 획의 방향전환 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折의 방법은 우선 頓(누름)으로 붓끝을 눌러 굵게 하면서 잠시 멈추는 듯하여 행필의 방향을 바꾸어 꺾은 후에 붓을 점점 들어서 가늘어지게 提한다. 따라서 꺾이는 획은 折 전에는 頓, 후에는 提가 있어야 한다.
* 方 : 필획 중에서 획의 모양이 모난 것을 이른다. 그 모양이 方整(방정)하고 頓할 때 骨力이 밖으로 향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외척(外拓)'이라고 한다. 기필 수필할 때 붓끝을 꺾어서 움직이면 '방필(方筆)'이 된다. 한예(漢隸)와 북위(北魏)의 해 서(楷書)에서 많이 보이는 필획이다.
* 圓 : 붓을 댄 곳과 뗀 곳이 둥근 형태를 이루게 하는 것으로서 그 필획의 둥글고 힘이 센 듯한 느낌을 풍긴다. 획의 모양은 속으로 살찐 듯하여 강한 骨力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내함(內含)'이라고 표현한다.
3) 中鋒(중봉), 측봉(側鋒), 은봉(隱鋒), 노봉(露鋒)
* 中鋒(정봉正鋒이라고도 함)은 한개 획을 쓸 때 필봉을 서선의 중간으로 행필한다는 뜻으로 설명하는데 붓의 털 부분을 전부 가지런히 하여 필봉의 위치를 항상 서선의 중간에 가게 하여 써 나가는 방법을 중봉용필, 또는 중봉법이라고 한다. 이렇게 용필을 하면 먹물이 종이 뒷면까지 힘있게 침투하여 웅경(雄勁)하고 절대로 경박하거나 태만해 보이지 않으며 병든 글씨 같지가 않게 되는 것이다. 筆鋒은 劃에서 骨(골)을 形成(형성)하게 되며 劃에서의 骨은 반드시 筋肉(근육)의 正中間에 와야되므로 한글서예는 물론 篆,隸,楷,行,草(전,예,해,행,초)의 모든 書法(서법)은 마땅히 中鋒을 爲主(위주)로 運用(운용)하게 되는 것으로 이 中鋒用筆은 바로 書法의 전통적 필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中鋒 用筆을 하면 자연히 萬毫齊着(만호제착)도 되는 것이니 정확한 執筆(집필)과 運腕(운완)으로써 부지런한 연습이 또한 요구된다.
* 側鋒(측봉): 側鋒(측봉)은 흔히 偏鋒(편봉)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點劃의 어느 한쪽(側)으로 筆鋒이 치우치는 것을 말한다. 옆으로 劃(획)을 그을 때 筆鋒(필봉)이 上端(상단)이나 下端(하단)으로 치우쳐 가거나 아래로 내려그을 境遇(경우) 왼쪽으로 치우쳐 그어 졌다면 이것은 글씨를 쓴 것이 아니라 먹을 종이에 그냥 바른 것이 된다. 또한 편봉으로 운필을 하면 서선의 한쪽은 매끈하고 반대편은 서선이 거칠게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쓴 글씨는 획형이 평평하고 가벼우며 힘이 없어 보인다. 중봉으로 쓴 글씨는 입체적이고 서선이 살아있는 듯하지만 편봉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힘이 약하고 획형이 보잘것 없어 보인다.
* 立鋒(입봉): 立鋒(입봉)이란 收筆(수필)할 때 필봉이 휘어지지 않고 똑바로 선 상태를 말하는데 입봉이 되지 않으면 다음 획을 연속으로 쓸 수 없으므로 입봉이 되도록 練習해야한다.
* 隱鋒(은봉): 隱鋒(장봉藏鋒이라고도 함)은 鋒芒(봉망)을 안쪽으로 하여 밖으로 노출 되지 않게 하는 形式(형식)을 말한다. 하나의 획을 쓸 때 처음 부분에 필봉을 어떻게 들이대느냐에 대한 운용방법인데 붓끝 즉, 필봉을 서선의 처음 부분으로 밀어서 대면 붓끝이 감추어지게 된다. 이렇게 필봉을 감추어지게 대는 것을 장봉이라고 한다. 그래서 장봉은 붓을 순서대로 대지 않고 역으로 입필한다고 하여 역입(逆入)이라고 하는데 역입을 하면 필봉은 자연히 장봉으로 된다. 밀어 올렸다가 아래로 행필을 하고 횡획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미는 듯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필봉을 행필한다. 그래서 이러한 필봉의 움직임 을 역입장봉(逆入藏鋒)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글씨를 써야 필력이 강하게 보이게 된다.
* 露鋒(노봉)
露鋒은 起筆할 때 鋒끝(筆鋒)을 생긴 그대로 紙面에 대어 鋒芒(봉망)鋒의 가장 끝, 뾰족한곳이 劃의 表面(표면)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노봉은 행서나 초서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연미(姸美)하며 활발한 느낌을 준다. 초심자는 반드시 장봉으로 써야 하며 노봉이 쉽고 편하다고 버릇을 들여 놓으면 헛일이다.
4) 기필(起筆), 행필(行筆), 수필(收筆), 절필(折筆)
* 기필(起筆) : 우선 가고자하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붓을 대어 붓끝이 나타나지 않도록 한다 [逆入]. 가로획의 경우에는 붓을 댄 후 왼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세로획의 경우에는 붓을 댄 후 위쪽으로 향하여 갔다가 다시 아래로 향한다. 이렇게 하면 붓에 힘이 모아질 수 있다.
* 행필(行筆) : 붓의 움직이는 속도를 起筆 收筆보다 빠르게 하고, 한획마다 적당한 지점에서 머물러 붓을 세우는 과정을 2 - 3회 반복한다. [頓 提]
* 수필(收筆) : 붓을 거둘때는 오던 방향으로 돌려서 붓끝이 나타나지 않게 한다[回鋒회봉]. 가로획의 경우에는 오른쪽으로 가 던 것을 꺾어서 왼쪽으로 향하게 하며[無往不收무왕불수], 세로획의 경우에는 아래쪽으로 가던 것을 꺾어서 위쪽으로 향하게 하여 거 둔다 [無垂不縮무수불축]. 起筆 收筆 부분을 너무 의식적으로 표현하면 어색하므로 그 행동범위를 작고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 折筆(절필): 曲線(곡선)은 小直線(소직선)의 連結(연결)이므로 小直線은 點(점)의 연결, 즉 직선은 점이모여 선을 이룬 것이라 한다면, 한 획을 그을 때에도 점을 찍어 나가는 마음으로 하되 그 획이 겉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全身精力이 筆鋒에 이르러 運筆할 때 그 획이 굳고 강하며 부드러운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 오랜 숙련을 통하여 마음으로 절필이 되도록 해야한다.
2. 임서(臨書)
* 形臨(형림) : 文字(문자)의 형태에 중점을 두는 방법으로서 주로 用筆,運筆(용필,운필)의 원리가 이해되면서 형상이 파악된다.
* 意臨(의림) : 筆法,筆勢(필법,필세)등을 이해 체득하면서 書 자체가 지닌 감정을 감지하는 방법. 즉 어림은 거기 있는 정신에 자기의 역량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 背臨(배림) : 형림과 의림으로 체득한 관념과 능력을 기초로 해서 範本(범본)을 떠나 연습하는 방법.
* 古人(고인)들이 어떠한 태도로 글씨를 썼는가를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
* 전통적 표현 기법을 배워 書의 성격을 이해하고 체득하기 위해서
* 書의 창작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 法帖(법첩)에 依據(의거)하여 자기표현을 시도하기 위해서
3. 구생법(九生法)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옛 문인들이 아홉 가지 새로운 멋을 찾았다.
* 生筆 : 붓모가 항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 生紙 : 신선하게 잘 보관된 종이.
* 生硯 : 먼지나 때가 묻지 않은 신선한 벼루.
* 生水 : 항상 신선한 물을 사용하여야 한다.
* 生墨 : 먹을 간 직후에는 먹물이 (-)전하를 띠므로 30분 - 1시간 경과 후의 먹물이 좋다. 먹을 갈 때는 조금씩 물을 부어 간다.
* 生手 : 손을 깨끗이 하고 손이 피곤할 때에는 붓을 잡지 않는다.
* 生神 : 마음을 가라 앉히고 정신을 집중한다.
* 生眼 : 눈이 피로하면 붓을 잡지 않는다.
* 生境 : 글을 쓸 때에는 주위환경을 깨끗이 한다.
4. 문방사우(文房四友)
* 종이(紙) : 먹의 흡수와 먹색의 농도가 투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좋다. 화선지가 널리 쓰이며 보관 시에는 햇볕이나 바람 닿는 곳을 피한다.
* 붓(筆) : 붓의 털 재료는 보통 양호필을 사용하고, 서예용 붓은 장봉, 중봉을 선택하는 것 이 좋다. 털이 곧고 끝이 뾰족하며 탄력있는 것이 좋다. 붓은 사용후 언제나 깨끗하게 씻어서 습기없고, 동풍이 좋은 곳에 보관한다. 먹이 묻어서 굳어진 붓은 벼루바닥에 문지르거나 먹으로 짓눌러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고 물에 담가 두 어 저절로 풀리게 해서 사용한다.
* 먹(墨) : 비교적 가볍고 광택이 나며 향기가 나는 것이 좋으며 먹물을 갈아서 탁하지 않고, 부드러워야 한다.
* 벼루(硯) : 숫돌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 먹이 맑게 갈리고 물이 잘 마르지 않는 것이 좋다.
5.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한글서체
전서는 진한 이전의 여러 서체를 통칭하는 말이다. 전서는 크게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으로 나누고, 100년전에 발굴된 은상 시대의 복사문(卜辭文)도 대전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 시기에는 거북, 동물의 뼈등에 새긴 복사문 이외에도 청동기에 새기기도 하였는데 이를 금문(金文) 또는 종정문(鐘鼎文)이라고 부른다. 또한 대전은 주문이라고도 하는데 주나라 때 사주(史주)가 문자의 짜임을 실용적으로 간소화시켰으므로 붙여졌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주대의 석고문(石鼓文)이 있다. 소전은 진시황(B.C. 246-210)이 중원을 통일하였을 때 승상 이사(李斯)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새로운 모양으로 정리한 것이다. 대전이 자연스럽고 질박하다면 소전은 반듯하고 중후한 감을 준다. 소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진시황의 공적을 기록한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역산비가 있다. 소전은 모두가 원필이며 자형이 아래위로 길다.
※ 갑골문(甲骨文)
갑골문은 귀갑수골(龜甲獸骨)의 준말이다. 갑골문은 은나라 때에 점을 치기 위한 정복문(貞卜文)과 그 당시 사실을 적은 기사문(記事文0이다. 곧 제사. 전쟁. 사냥. 농사. 질병에 대한 길흉을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서 거북의 배 부분의 뼈나 소와 사슴의 어깨뼈에 정인(貞人)이나 제주(祭主)가 의문이나 해답 그리고 점친 후의 징험들을 새겼다. 갑골문은 상형문자에 가까우며, 예리한 공구로 새겨서 직선이 많으며 획의 끝이 뾰족한 것이 그 특징이다. 갑골문은 1899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 금문(金文)
금문은 청동기 시대의 산물로 그 대부분이 종정(種鼎) 곧 종이나 솥 따위에 주각(鑄刻)하였으므로 종정문이라고 부른다. 그릇, 무기, 거울, 도장, 돈 같은 것에서도 발견된다. 동기에 문자를 기록하는 것은 상(商에서 한(漢)대에까지 이른다. 상대의 것은 그림문자도 많으며, 대개의 금문은 갑골문을 계승하고 진(秦)대의 소전(小篆)에 이어지는 대전(大篆)이다.
※석고문(石鼓文)
대전 자체(字體)의 가장 구체적인 작품이며, 중국역사상 가장 오래된 각석으로 북모양으로 다듬은 돌에 세겨져 있다하여 석고문이라 부른다. 돌의 수는 10개이고 표면에 700여자가 실려 있으나, 판독이 가능한 글자 수는 270여자,현재 통용되고 있는 글자 수는 470여자 정도이다.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나, 동주의 위열왕 4년(기원전 481)에 진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석고문은 4언구로 현재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전국시대의 진나라 군주가 사냥을 하는 것과 영토의 개척으로 도읍을 세운 것, 제사에 관한 일들이 기술되어 있다. 석고문은 금문과 소전의 중간에 속하고 금문보다 잘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소전보다 방편(方遍)하고 복잡한 것이 있고 자체는 대체로 정방형을 이루고 있다.
진시황은 중원을 통일한 뒤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었다. 이에 따라 공문서 등이 증가하면서 전서를 간략하게 만든 새로운 서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때 만들어 진 것이 예서이다. 예서는 한나라로 그대로 이어지면서, 해서, 행서, 초서 등 여러 서체로 다시 분화 발전하였다. 예서는 1cm정도의 폭을 갖는 죽간(竹簡)에 쓰였던 초기에는 세로로 긴 형태였으나 목판과 비석으로 옮겨가면서 점차 가로로 충분한 길이를 갖게 되었고, 이때 파책의 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서 파책은 빈 공간을 조형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로써 예서는 나름대로 조형성을 갖게 되었고, 후대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전서는 대칭을 맞추어야 하고 곡선이기 때문에 쓰기에 불편하다. 그리하여 곡선을 직선으로 바꾸고 원필도 방필로 많이 바꾸고, 필획도 줄여서 쉽게 쓰게 한 것이 예서(隸書)이다. 기록에 보면 예서는 장막(程邈)이 만들었다. 그가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 십 년을 연구하여 예서 삼천자를 지어 진상하였는데 진시황이 좋게 여겨 어사를 시켰다. 예서란 말은 진대의 복역수를 도예(徒隸)라 하였는데 정막이 그러했으므로 예(隸)자를 따서 지었다. 예서에서 파책(波 )이 없는, 곧 전서와 근접한 것을 고예(古隸)라 하고 파책이 있는 것을 팔분(八分)이라 한다. 예서는 전한과 후한에 걸쳐 끊임없이 발달하였다. 조전비와 예기비 같은 유려형(流麗型), 장천비 같은 방정형(方整型), 하승비(夏承碑)같은 기고형(奇古型)들로 분리되며, 그 수많은 서적(書蹟)은 이루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예서의 자형은 납작한 것이 보통이다.
※ 예 기 비(禮 器 碑)
예기비가 새겨진 것은 약 1800여 년전 후한의 환제 영수(永壽) 2년의 일이며, 한래비 라고도 부른다. 이 비문의 내용은 노나라의 제상이던 한래의 공적을 칭송한 글인데, 그는 공자를 존중해 그 자손 일족에게는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주장, 징병이나 노역을 면해 주는 등, 진심어린 예우를 다했다. 또 그는 진시황제의 폭거 이후 산뚱성 취무에 있던 허물어진 공자묘(이곳은 한이후 역대의 비가 많아 곡장비림(曲章碑林) 이라 불린다.)를 수리하고 제사에 쓰이는 가장 중요한 기구류, 즉 예기를 정비하고 또 공자의 생가를 수복하고, 묘 주변의 배수 사업 등도 했다. 이와 같은 한래의 작업에 감동한 사람들이 그의 높은 덕을 기리고자 돌에 새긴 것이 바로 이 예기비이다. 한비는 중후한 것과 연미(硏美)한 것이 있는데 이 비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중용을 지키고 있다. 문자의 구성이 알맞고 운필이 정교하여 높은 품격을 지니고 있는 비로서 새김도 훌륭하고 글자 수도 많아 예서를 익히는데 적당하다. 그리고 예기비의 선조(線條)에 관하여서는 유(여윔),경(단단함),청(맑음),정(곧음)이 언급되어진다.
해서는 문자의 부호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쓴 형태를 말하며, 이런 까닭에 정서(正書)라고도 불린다. 예서가 더 실용적으로 변모하면서 위진 남북조 시대에 와서 해서의 특유한 풍격을 이루었다. 역사적으로 볼때 동한 말에 이르러 해서보다는 행초서가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행초서가 다시 해서화를 추구하게 되는데,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기에 만들어진 이른바 북위(北魏)의 해서와 이를 더욱 단아하게 만든 수당(隋唐)시기의 해서가 그것이다. 북위의 해서는 예각을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날카로운 획과 비대칭의 조형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수당의 해서는 직각을 사용하여 대칭의 안정된 조형을 추구한다. 수당 초기의 구양순 등이 북위에서 수당으로 옮겨오는 역할을 하였다면, 뒤에 오는 안진경은 대칭의 미학을 완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종요와 왕희지를 거쳐 초당의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이 북위서를 계승하고 왕희지법을 더하여 방필에 원필을 가미한 완미(完美)에 가까운 체계를 이루었고 그 후 안진경이 출현하여 거의 원필을 이용하여 웅장한 남성적인 해서를 완성하였다. 해서의 자형은 정방형에 가깝다.
※ 안근례비(顔勤禮碑)
안씨가묘비와 더불어안진경해서의 2대 역작 중의 하나이다.
비가 세워진 연도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비문 중에 기재된 사실을 감안해 입비(立碑)는 안진경의 말기의 글씨로 추정되어 진다. 비는 사면각이나 셋째 면은 갈아 없어졌고, 약 1천 6백 여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안근례비는 비의 자획이 온전하며 특히 삼면의 글씨는 원필이며 강,유가 잘 조화되어 있다.
또한, 장봉의 표현이 세련되어 있으며 그의 해서 중에서 가장 우수한 기교 표현 작품이라 한다.
안진경의 필법은 구양순의 경우와 다른 바 없으나 구법(歐法)보다도 약간 붓을 세우며, 안서(顔書)의 가로획은 우상향세(右上向勢:손에 쥔 붓을 그대로 댄 후 일단 조금 띄웠다 오른 쪽으로 그음)의 수법을 사용한다. 구(歐)의 배세(背勢), 안(顔)의 향세(向勢)라고 부르는 이 상대적인 조형수법은 해서 기법의 양극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의 내용은 안진경이 그의 증조부인 안근례의 일대기를 써 놓은 것이다
※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天銘)
이 비는 당태종 6년(632)에 당태종이 수나라의 인수궁을 수리하면서 만든 구성궁에 샘물이 뿜어 나오게 된 것을 기념하여 만든 비이다. 문장은 위징이 쓰고 글씨는 황제의 명에 따라 구양순이 특별히 정성들여 썼다.구양순의 나이 75세때의 서(書)로 구양순이 왕희지의 필법을 배웠으나, 이미 글씨는 구양순 자신의 자체였다. 그리고 해서의 필법이 극에 달했다고 평가된다.
전각은 양문으로 되어 있고 구성궁예천명의 여섯 글자가 2행에 있고, 본문은 24행으로 되어 있다. 남북서풍을 융합한 수대의 서풍을 전,예서에 바탕을 둔 구성법으로 방향을 바꾸어 장방형의 형태로 씌어져있다. 내핍법(內逼法) 혹은 배세(背勢)에 따르고 있으므로 점,획이 중심에 모여 있으나, 비의 결체는 여유가있고 전절(轉折)과 구부러진 곳의 용필은 아주 훌륭하다. 구성구예천명비는 새 시대 감각을 불어 넣은 것으로 화도사비(化度寺碑)와 더불어 구양순의 대표작이다. 해서를 쓰는데 있어서 정통이라 할 수 있으나, 너무도 정제된 필획의 구성을 하고 있어서 자칫하면 형태만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기 쉽다.
※ 장맹룡비(張孟龍碑)
육조 시대의 대표적인 해서이다. 서도에서의 힘은 적절한 조화가 따라야 한다. 결구법이 바로 그것인데, 장비액(張碑額)은 그런 것의 본보기라 하겠다. 본문도 점획의 배치에 따라 소박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이지적으로 당대(唐代)의 서와 같은 정제미를 나타내고 있다. 경중의 배합, 각도의 변화, 그리고 글자의 흐름에 따라 그것들을 조절하는 의욕적인 필력, 이러한 모든 요소가 큰 비석에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흔적들을 표면에 나타나지 않게 할 것, 여기에 서도의 비결이 있다. 장맹룡비는 북위서 가 유행하던 때의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용문(龍門)의 강함과 예리함, 정도소(鄭道昭)의 온화함, 고정비의 완성된 계획성 등이 함축되어 있는 훌륭한 유산으로 여겨진다. 비면은 해서로 26행,한 행에 24자씩 새겨져 있고, 비음은 이 비를 세움에 있어서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의 관위 성명을 연서한 것이 10여단 있다. 이 비의 비액에서 '청송(淸頌:덕을 칭송한다)'으로 표현 되는 바와 같이 송덕비이다. 장맹룡은 당시 불교가 성행하고 있었지만, 공자와 맹자의 학문을 깊이 믿는 유교를 선양하였다. 그 공적 이 컸기 때문에 향당(鄕黨)들이 이에 감탄하여서 장맹룡의 덕을 기리고자 비를 세웠고, 그의 일대기에 관한 것과 칭송이 그 내용이다.
행서는 초서와 해서의 중간 형태로 아마 해서와 거의 동시에 생겨나서 발전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왕희지의 난정서(蘭亭書)는 고금에 빛나며 그 후 당의 저수량과 안진경을 거쳐 청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발달하였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해서, 행서, 초서가 널리 쓰이면서 당 이후에는 전서와 예서가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청나라 초기와 중기에 비학의 풍토가 일어나면서 다시 문인 묵객의 작품에 전서와 예서가 등장하여 지금까지도 작품에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다.
※ 난정서(蘭亭敍)
행서의 용(龍)이라 불리는 난정시서(蘭亭詩敍)는 왕희지가 51세 때에 '흥에 겨워서 쓴' 작품으로, 고금의 서적중에서 영원히 빛나는 밝은 별이라 하겠다. 동진의 목제(穆帝) 영화(永和)9년 3월에 명승지 난정에서 우군장군(右軍將軍) 왕희지의 주재하에 성대하고 풍아(風雅)로운 모임을 가졌다. 거기서 각지의 명사들이 모여 시를 지었는데 이것으로 난정집을 엮었다. 여기에 왕 희지가 전서(前序)를 보탰는데 이것이 유명한 난정서가 된 것이다. 즉석에서 시편의 서(序)를 짓고 쓴 것이지만 서(書)뿐만 아니라 문장이나 사상도 지극히 높은 수준의 작품이라 한다. 이 진적은 줄곧 왕가(王家)에 진장되어 7대째인 지영(智永)에게까지 전해졌다가, 당태종이 왕희지의 글씨를 몹시 사랑하여 이 난정서를 입수했다. 후에 당태종은 이를 존중히 여겨 "천하 제일의 행"라 명하고 죽을 때 관속에 같이 넣게 함으로써 아쉽게도 진적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
홍복사(弘福寺)의 승려 회인(懷仁)이 칙령에 의해 궁중에 비장(秘藏)된 왕희지의 법첩중에서 집자한 서이다. 몇몇 조수와 함께 무려 25년간에 걸친 비상한 각고끝에 집대성한 것이다.{감형 3년(672) 12월 8일 경성법려건립(京城法侶建立)} 집자성교서는 변이나 방을 취합하거나 점획을 해체, 합병시키거나 했는데, 사진술(寫眞術)도 없던 당시에 그 노고가 어떠했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내용은 당태종이 명승 현장삼장(玄奬三藏)의 신역불전(新譯佛典)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성교서(聖敎序)와 당시 황태자였던 고종이 그 경전 번역까지의 경과를 적은 술성기(述聖記)와 그리고 현장삼장이 번역한 반야심경(般若心經)이 함께 비문을 이루고 있다. 30행에 각 행마다 80 여자씩 1904자로 되어 있다. 이 성교서는 당대(塘代)의 모본이기는 하나 왕희지 행서의 진수를 파악하는데 불가결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서(書)는 왕희지의 진적으로부터 집자하여 새긴 천하의 명비로 품격이 높고 형이 정제되어 습벽이 없다. 게다가 용필이 유려하고 다채로와 한없는 정기를 깊이 간직하고 있어 예로부터 행서 입문에 필수적 교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왕희지의 조형원리는 엄격히 정돈된 구조가 아니고, 부조화(不調和)라고 생각될 정 도로 비뚤어진형태의 것들이 많다. 그러나, 그 비뚤림은 각도나 용필에 일정한 벽이 없이 종횡 무진으로 변화하고 있다. 부 조화속의 조화와 변화의 원칙을 이 집자성교서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집자성교서는 이때 만들어진 원비(源碑)와 송대의 탁본을 가장 귀하게 치는데, 명의 시대에 이르러 원비가 절단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 것을 미단본(未斷本), 그 이후 것을 이단본(已斷本) 이라 구분해 부른다.
한나라 때 예서가 주로 쓰였지만 초서의 기원이라 볼 수 있는 특유한 서체가 대나무나 나무조각에 쓴 편지글 등에서 나타났는데 그것이 곧 장초(章草)이다. 장초는 획이 예서와 비슷하나 글씨의 짜임은 초서에 가깝다. 장초의 장(章)은 사유(史游)가 지은 급취장(急就章)의 서체에서 이름 붙여졌다. 장초는 그 뒤에도 계속 발달하여 왕희지에 이르러 초서의 완전한 체계를 굳히게 되었다.
※ 행초서(行草書)
행서는 문자의 부호를 있는 그대로 갖추고 있으면서 동적인 형태로 만든 서체이다. 초서는 부호를 생략하여 동적인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 둘은 동적인 흐름을 같이 보여주기 때문에 서로 어울려 많이 쓰이고 있다. 획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형태를 만들어내는 행초서는 쓰는 이의 감정을 있는 그애로 드러내어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수많은 자연스런 형상은 서예를 문자의 기록보다는 회회로 까지 인식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런 이유로 행초서는 서예가 뿐만 아니라 화가들도 반드시 익혀야되는 필수과목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고체(古體)
고체는 한글이 처음 반포되었을 때의 옛 서체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 를 둥근 점모양 그대로 쓴 [훈민정음해례본]과 를 짧은 방형으로 바꾸어 쓴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등 두 가지 서체가 있었다. 고체는 방형의 모양으로 썼기 때문에 대칭의 조형성을 갖는 장엄한 성격을 가졌다. 고체는 선조 때까지 이어졌지만 새로운 서체를 예견하는 점진적인 변화도 갖게 되었다.
2) 한글의 판각화(板刻化)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글을 보급시키기 위하여 한글로 된 책들을 많이 만들게 하였다. 한글이 널리 보급되면서 더욱 많은 책들이 필요해졌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목판본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목판본의 서체는 단아한 맛을 지니거나 조형적 완성에는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지방마다 또는 판각자 개인의 성향도 나타나게 되었다. 한글의 판각화는 고체가 이미 퇴화한 뒤 나왔으므로 한글의 변화된 여러 서체를 목판의 제작에 잘 어울릴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필사형태와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재료의 변화에 따른 글씨체의 발굴에 더욱 관심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3) 궁체(宮體)정자
궁체는 대궐의 글씨라는 뜻이다. 궁체를 궁녀들이 쓴 글씨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궁녀들이 많이썼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것일 뿐 여러 왕과 대신들도 궁체를 썼다. 한글이 만들어진 뒤 왕실에서는 철저히 한글을 지켜왔다. 특히 왕후를 중심으로 이 전통을 지켜왔고, 따라서 한글은 내전을 중심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발전하였다. 궁체라고 불리는 한글서체는 선조 이후에 나타났으며, 크게 정자와 흘림으로 나뉜다. 정자는 한자의 당해와 흐름을 같이 한다. 이 글씨는 장중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절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창제 당시의 고체가 모든 글자의 길이를 같은 크기로 구속하였다면 궁체는 그 길이를 글자의 모양에 따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조형적인 자유로움을 얻게 하였다. 이점이 바로 궁체의 조형적 성격을 결정짓는 요인이라고 하겠다.
4) 궁체(宮體)흘림
궁체흘림은 한문의 행서에 비유된다. 선조전후 한글이 널리 보급되면서 한글은 기호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을 찾기 시작하였다. 글자 크기의 구속을 벗어나며 자유로움을 얻은 한글은 붓의 역동적인 흐름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서체를 요구하였고, 이 요구가 바로 궁체 흘림의 출발이 된다. 흘림은 처음 비교적 자유로운 모양이었으나 점차 정제과정을 거치며 정형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글은 부호가 단순하여 한자의 초서와 같이 생략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생략의 길보다는 도리어 정형화의 길을 선택하여 지금 우리가 쓰는 흘림의 모양으로 정착되었다.
6. 서예에서 잘 쓰이는 말
서예가 본디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므로 한자어로 된 서예 용어가 많다. 여기에서 잘 쓰이는 말의 뜻을 알아보자.
* 법서(法書) 전통적인 서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글씨이다.
* 속서(俗書) 법서의 반대라고 할수 있다. 서법에 근거를 두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쓰는 글씨이다.
* 비갈(碑碣) 비석의 형식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는 것을 비라 하고 둥근 모양의 것을 갈이라 한다.
* 비학(碑學) 비의 원류, 시대, 체제, 탁본의 진위와 문자 내용등을 연구하고 고증하는 학문이다. 첩학과 상대되는 말인데, 청나라 초기 이전에는 법첩을 숭상하다가, 완원이 남북서파론을 제창하고 포세신이 북비의 중요성을 부르짖음에 따라 비각을 숭상하는 풍조가 생겨 크게 성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비학은 북파라 하고 첩학은 남파라 부르게 되었다.
* 첩학(帖學) 법첩의 원류와 우열 그리고 서적의 진위와 문자 내용 등을 연구하고 고증하는 학문이다.
* 법첩(法帖) 돌이나 나무에 모각된 법서와 그것의 탁본들이 포함된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고전 법서의 책자들을 법첩이라 부른다.
* 자체(字體) 글지의 형체, 이를테면 전자체, 예자체, 해자체 등을 말한다.
* 서체(書體) 문자의 체세를 일컫는다. 자체와 비슷한 말이다.
* 속자(俗字) 이체자의 일종이다. 본래의 글자와는 조금달리 민간인들 다수가 사용한 간체 따위를 말한다.
* 필획(筆劃) 자형을 구성하는 갖가지 형상의 점와 선이다.
* 조충서(鳥蟲書) 전서의 변체로 획이 새나 벌레의 모양을 이룬다. 춘추 전국 시대에 자주 사용 되었다. 무전 진 시대를 전후로 인장에 쓰이던 전서체로서 그뒤로 전각에 쓰이는 문자가 되었다. 무는 일종의 헝겊인데 헝겁에 글씨를 쓰면 이리저리 늘일 수 있는 이치대로 전서가 상하좌우로 늘이거나 줄이기 쉬워서 사용되었다. 명과 청 시대에 와서 문이들 전각을 새기는데 반드시 전서를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 금예(今隸) 예서에서 해서가 발전되었는데, 위진 이후 곧 종왕 이후의 예서의 변체를 금예라 한다. 곧 해서이다.
* 종왕(鐘王) 종요와 왕희지 또는 그 필법을 이르는 말이다.
* 이왕(二王) 왕희지 부자 또는 그 필법을 이르는 말이다.
* 안류(顔柳) 안진경과 유공권 또는 그 필법을 이르는 말이다.
* 비백(飛白) 일종의 특수한 풍격의 글씨인데 어느 장인이 흰가루를 사용하여 쓸 듯이 글씨를 채옹이 보고 개발한 것을 '비백서'라 한다. 요즈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백은 획이 마르거나 거칠 때 또는 부지불식간의 속도에서 희게 나오는 특수한 선질을 일컫는다.
* 현침수로(懸針垂露) 세로획을 형용하는 말인데 곧 아래 끝의 뽀족한 모양이 침을 매달아 놓은 것 같다 하여 현침이라 하고, 아래 끝에 마치 이슬이 맺혀 있는 모양이라 하여 수로라 한다.
* 역입평출(逆入平出) 붓 쓰는 법의 한가지로 붓을 댈 적에 획이 나아갈 방향의 반대편에서 들어와 장봉하여 만호제착을 만들어서 나아가는 것이다.
* 잠두안미(蠶頭雁尾) 예서의 한일자에서 앞 부분이 누에머리, 파책 부분이 기러기 꼬리와 같이 생긴 데서 나온 말이다.
* 서미(鼠尾) 현침이나 약획 등의 끝부분이 털같이 뽀족하지 않고 쥐꼬리의 끝부분같이 도톰한 모양을 내는 것을 말한다.
* 마제잠두(馬蹄蠶頭) 한일자에서 처음의 모양이 마치 말발굽같다 하여 마제라 하고 끝나는 부분이 누에의 머리같다 하여 잠두라 한다.
* 절차고(折叉股) 굽어진 획을 긋는데 중봉을 하는 방법과 그 획의 모양을 형용하는 것으로 붓을 바르게 세워 둥글게 비틀려 돌아감을 말한다. 금비녀를 구부렸을 때 그 둥근 형체를 보존하는 형상을 연상하면 된다.
* 옥루혼(屋漏痕) 필획의 원활함이나 생동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단순히 긋는 획이 아닌 호흡과 맥박이 있는 획을 그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낡은 집에 물이 새어 벽을 타고 내릴 때 물이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주름을 내며 마디를 이루고 흐르듯이 획도 그러한 맛이 나야 한다는 표현이다.
* 추획사(錐劃沙) 붓 쓰는 방법으로 붓을 세워 중봉으로 쓰는 법이다. 곧 송곳으로 모래사장에 글씨를 쓸때 송곳이 바로 서지 않으면 확실한 획이 나타나지 않는다. 만일 옆으로 뉘어 쓰면 모래가 획을 덮어 버려 획이 어렴풋이 나타나는 이치이다.
* 인인니(印印泥) 참으로 어려운 표현으로 필봉이 저절로 획 중에 감춰지고 쓰고자 하는 생각과 뜻이 획보다 앞서야 한다는 황정견의 해석이다. 인주에다 도장을 찍으면 그 본래의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나타나는 데서 형용된 말인데, 말하자면 붓을 댈 때 심경이 안온하고 필법도 표준이면 능히 마음에 둔 글자를 유감없이 구성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 영련(楹聯) 보통 대련이라 한다. 양쪽 기둥에 걸어 놓는 일이 많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 임지(臨池) 연못에서 글씨를 공부한는 것을 일러 임지라 한다.
* 제발(題跋) 서적이나 비첩, 서화 따위에 서명을 하거나 제목 또는 설명을 다는 것을 말한다. 본래는 앞에 쓰는 것을 제라 하고 뒤에 쓰는 것을 발이라 하는데 지금은 대개 작품의 본문을 쓰고 뒤에 서명이나 설명 따위를 쓰는 것을 말한다.
* 돈좌(頓挫) 돈은 굵은 획으로 변해 갈 때 붓을 약간 틀면서 누르는 동작으로 전절의 관절 부분에서 하는 동작을 말하며, 좌는 획의 방향이 바뀔 때 붓의 쓰는 면을 바꾸어 주는 것을 말한다. 돈좌를 모르고 필관을 손가락으로 돌린다거나 계속 한면으로 쓰면 결코 의미있는 획을 그을 수 없다.
* 전절(轉折) 획의 방향이 바뀔 적에 붓을 궁글려 붓의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전은 원필에 쓰는 방법이며 절은 방필을 쓰는 방법이다.
* 결구(結句) 한 글자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간가라고도 한다.
* 장법(章法) 행간의 좁고 넓음 또는 자간의 좁고 넓음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데 이러한 공간 포백을 하는 법을 장법이라 한다.
* 낙관(落款) 작품을 할 적에 본문을 다 쓰고 나서 서명을 하고 전각을 찍는 행위를 말한다. 말하자면 서명 날인을 한꺼번에 일컫는데 요즈음에 와서는 서명도 낙관한다고 표현하고 도장도 낙관이라 하는 경향이 있다.
* 전각(篆刻) 전서를 새긴다는 뜻으로 ,도장을 말한다. 전각에는 성명인, 아호인, 한장, 장서인, 수장인, 관인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7. 永字八法(영자팔법)의 意味(의미)
해서(楷書)의 기본적인 필법을 갖춘 문자로서 '永'字가 있다. 이 '永'字에는 문자구성상 특징이 되는 필획이 비교적 고루 갖추어져 있어 옛부터 이 문자를 연습함으로써 필법의 기초를 연마하는데 활용해 왔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글씨입문의 초보단계에 이 '永字八法'의 숙달을 통해 필법을 익히게 있다. 永字八法에는 다음과 같은 각부분의 명칭이 있는데 각 필획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어원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설명을 가해보기로 한다.
一. 側(측) : 이것은 점획(點獲)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永字의 첫머리 점이 마치 側(옆)으로 기울어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 이다. 그러므로 '側'으로써 점획을 쓸 때에는 반월형(半月形)으로 기울어진 머리를 연상케 하는 모양이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점획에는 실로 여러가지 형태의 것이 있어서 모두를 '側'로 처리해서는 물론 안된다.
二, 勒(늑) : 말을 말안장으로 누르는 느낌과 같다 하여 지닌 이름이다. 특히 이 획의 수필은 벼랑에서 말을 힘껏 누르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 획은 이른바 '一'字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보기에는 가장 원시적인 획인데 흔히 '한일字 조차 제대로 쓰기 힘들다' 고 한탄하 듯 얼핏 단순한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실은 이 단순함 속에 의미 깊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획 수가 적고 구성이 단순하면 할수록 쓴 사람의 성격이 잘 나타나는 법이다. 이 一畵은 글씨 가운데 그 수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결구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畵의 성공여부로 작품 전체의 우열을 결정하게 되는 수가 적지 않다. 앞서 말한 통속적인 말과는 반대로 '한일字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면 대부분의 글자는 바르게 쓰게 된다'는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
三, 弩(노) : 마치 활을 당겨 힘껏 당길때의 勢(세)를 닮았다고 해서 칭하는 말이다. 이것은 내리긋는 획(竪劃)이다. 竪劃(수획)의 본질은 그 명칭으로도 짐작이 되는 것처럼 수직이 원칙이다. 그런데 단순한 수직이 아니라 상하끝부분에는 돌을 튕겨낼 만한 弦(현)이 매어져 있는 것이어서 여기에는 집중된 힘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상하의 힘에 대응해서 중간부분에는 탄력성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다소 彎曲性(만곡성)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성질을 통해서 생각할 때, 수직은 단순한 직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각적인 직선일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런 만큼 중간부분의 彎曲性과 이 上下의 힘찬 상대관계는 이 획의 佳拙(가졸)을 결정하는 요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 획에 있어 중요한 점은 鋒의 움직임에 따라 전체의 佳拙을 결정하게 되는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漢字는 縱書(종서)이므로 이 획이 수직으로 보이지 않거나 중심을 통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문자가 굽거나 흐느적거리게 보이게 되어 결국 전체의 구성이 우습게 되어 버린다
四, 적(趯): 이것은 공이 튀는(躍) 것 같은 筆勢(필세)에서 붙혀진 이름이다. 공이 벽에 부딪혔을 때, 그 탄력으로 벽을 차고 튀어나오듯이 이 획이 갖고 있는 내용도 그 힘의 변화와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이 획이 갖고 있는 중요한 의의는 내용에 있어서의 힘의 분배와 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勒'이나 '弩'에 있어서는 기필에서 수필까지 사이에 시간적으로 극단적인 불연속성이 없으나 이 획은 '跳躍(도약)'이 주체인만큼 오히려 극단적인 리듬감이 수반된다. 이러한 리듬감이 주체가 되면 筆毛의 성질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기도 한다. 즉, 剛毛筆(강모필)은 특별히 의식을 하지 않아도 탄력성이 있으나 軟毛筆(연모필)은 기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五, 策(책) : 이 획은 말에 채찍을 치는(打) 筆勢를 가진 것을 가르켜 생긴 명칭이다. 보통, 말에 채찍을 댈 때에는 옆으 로 하되 위를 향해서 치게 된다. 이 획은 어느 만큼 勒(늑)의 성질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으나 筆勢에서 보면 전혀 다른 것이다. 이 획이 勒과 전적으로 다른 것은 수필이다. 이 수필의 경묘함은 의미가 깊은 바 있어 많은 연습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六, 약(掠) : 이 획은 두발을 빗어 내리는 모양을 생각케 하는데서 온 말이다. 긴 머리를 빗을 때, 먼저 빗을 머리 위에서 부터 넣고 머리털을 따라 끝부분까지 빗어내리게 되는데 이 빗에 힘을 넣는 방법과 筆意(필의)가 흡사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획의 특징은 마치 빗을 머리에서 뗄 순간에는 엉킨 머리털을 세게 풀어주어야 할 때, 순간적인 힘이 빗에 가해지는 것처럼 수필에 있어서도 鋒에 가해지는 힘이 순간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보통 쓰이는 '掠'이 모두 이러한 운필에 따라야 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명칭이 생긴 어원을 깊이 생각할 때, 거기에 이러한 '鋒의 약동'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적어도 바른 운필이라고 말할 수 없겠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음 '啄(탁)'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며, 그 근본적인 차이는 수필에서의 봉을 다루는 방법 여하에 달려있다 하겠다.
七, 啄(탁) : 이 획은 새가 모이를 쪼을 때의 주둥이를 닮은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닭이 쌀을 쪼을 때 보면 주둥이를 콕콕 하고 재빨리,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움직이는데 이 때의 주둥이 움직임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掠'(약)에 비하면 붓은 훨씬 가볍고 예리하고 빠른 것이 된다. 이 획은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긋는 것이어서 '策'과는 반대의 형상을 보이고 있으나 운필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 서 '策'은 '勒'의 변형이라기 보다는 '啄'과 한 그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는지 모른다. 이 획은 마치 '側'처럼 가벼운 運筆(운필)이 특징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지나치게 경묘해 지는 나머지 조잡해 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경계가 필요하다.
八, 책: 이 획의 고기를 자르는 기분으로 붓을 이끈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고기를 자를 때 처음에는 칼에 가볍게 힘을 넣었다가 점차 힘을 세게 더하면서 최후에 쭉 빼는 방법과 같은 뜻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운필에 있어서는 이 기분을 그대 로 붓에 나타내면 좋은 것이 된다. 이 기분은 관념상으로는 매우 쉬운 것 같으나 실제 운필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어서 일반적으로 책은 힘든 획의 하나로 치는 것이다. 이획의 특징은 한 획 속에 가는 부분과 굵은 부분이 두드러지게 섞여있다는 것이며 또하나의 특징은 한 문자의 최종획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책은 그 문자의 성패나 분위기를 본질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다. 문자 속에서 이 획이 특히 눈에 잘 띤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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