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자기 자리를 지킬 때 세상은 좀 더 맑고 향기로워질 것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이 어지럽기는 마찬가지
-법정스님- 성북동 길상사 개원 9주년 법회서 설법
“남의 자리를 넘보지 말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 살아야 합니다.”
불교계 원로인 법정(法頂·71) 스님은 10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개원 9주년 기념법회에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이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라면서 “각자가 자기 자리를 지킬 때 세상은 좀 더 맑고 향기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기념법회에서 길상사 개원 비화를 공개했다. 길상사는 법정스님이 1996년 김영한 씨에게서 고급 요정이던 대원각(大苑閣)을 아무런 조건없이 기부 받아 이듬해 개원한 사찰이다. 대원각은 기부 당시 평가 금액이 1000억원대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법정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서 혼자 살 때 겨울나기가 힘들어 1987년부터 겨울철에 3~4개월씩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고려사에 머물며 책을 번역하거나 설법을 하면서 지냈다”라며 “그 때 로스앤젤레스에서 김영한 보살을 만나 대원각을 사찰로 만들고 싶다는 제의를 처음 받았다”고 밝혔다.
대원각을 사찰로 바꾸는 과정에서 김영한 씨의 재산관리인이 “이사와 감사를 두어 절을 운영하자“고 주장했을 때 법정스님은 “그만두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했다. “절 살림은 그 절에 사는 스님과 신도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전통이며 그것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김영한 보살로부터 이 곳을 무상으로 받았지만 개인의 절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이곳에 내 개인 방이 없고, 지난 9년간 이곳에서 하룻밤도 묵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법회에 참석할 때도 주지실에서 잠시 머물다 돌아갈 뿐이란 설명이다.
강원도 산골에 혼자 살고 있는 법정스님은 “사찰의 재산을 개인이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은 율장에 규정돼 있으므로 개인의 방을 갖지 않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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