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형님, 엄니 우리 집으로 모셔 갈게요"

淸潭 2006. 10. 25. 22:12
“형님! 엄니 우리 집으로 모셔 갈게요”
 

  가을답지 않은 더운 날 연속되더니, 여름폭우같이 쏟아 붓고 지나가고 난 뒤, 날씨는 제법 쌀쌀해 진 듯 찬 바람 속에 벌써 겨울을 살짝 느끼게 하는 요즘입니다.

 

며칠 전, 차를 가져 간 남편이 포도를 두 박스나 가지고 왔습니다.

“어? 웬걸 이렇게 많이 사 왔어요?”
“하나는 산 것이고, 하나는 선물 받았어.”

“선물 받았으면 됐지 사기는 왜 샀어요?”
“엄마 갖다드리려고…….”
“아! 맞다. 엄니 머루포도 아니 과일 좋아하시지?”
눈치도 없이 왜 샀냐고 했던 맘 괜스레 미안해졌습니다.

아이들 저녁 챙겨 주고 둘이서 40분 거리쯤 되는 시댁으로 달려갔습니다.

갑작스럽게 전화도 없이 우리들이 나타나자 반가움으로

“야야, 너희들이 어쩐 일이여?”
“네, 아범이 포도를 사 와서 엄니 드시라고 가지고 왔어요.
“그걸 주려고 이 밤에 왔다구?”
“네. 엄니 과일 좋아 하시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사실, 남편의 마음을 알고 보니, 매일같이 안부전화를 드리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어머님이

허리가 아프시다 말씀하셔서 확인도 할 겸 찾아 온 길이었습니다.  

“엄니! 허리는 어때요?”
“보건소를 가도, 의원을 가도 소용이 없다”

정말 많이 아프신지 허리도 못 펴시는 것 같았습니다.

“엄니! 그냥 짐 챙겨서 우리 집으로 가요. 침이라도 맞아 봐요”
“난 침이 안 맞는 것 같아.”
“그럼 병원이라도 가 봐야죠.”

“안돼, 저렇게 인천서 보내 온 보약도 있고, 텃밭에 늘어놓은 것도 많고.”
“약은 가져가면 되고, 텃밭에 농사는 우리가 일요일 와서 하면 되죠."
“늦어서 안 돼. 한 이틀 견뎌 보고 정 안 되면 내가 전화할게”

“그러세요. 그럼”

어머님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그냥 되돌아 와야 했습니다.

혼자 두고 나오는 데 돌아가신 친정엄마처럼 가여워 보여, 내 맘 너무 아파 남편 몰래 눈물을 삼켜야만 하였습니다.


 

  주말에 와서 막내삼촌이 자기 집으로 모셔간다고 하기에, 토요일 늦은 오후, 남편과 뒷산에 올랐다가 하산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형님! 엄니 우리 집으로 모셔 갈게요”
“지금 어디야?”
“사천 고속도로 올리려고 해요”

"전화를 미리 하지 그랬어?"
"통화 중이시던데..."

“차 돌려~”
“왜요?”
“그냥 가면 어떻게 해. 집에 있는 배도 좀 가져가고 그래야지”
“00아빠 차 안 돌리려고 할걸요.”

“김치, 김치 없다고 해! 묵은 김치 달라고 했잖아!”

“알았어요.”

“그리고 저녁 먹고 가”
“네”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동서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 해 벌써 아들 녀석이 씻어 놓은 쌀로 압력솥에 밥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엄니, 허리는 어때요?”
“좀 괜찮아”

화장실에 걸어들어가시는 어머님의 걸음걸이를 보니, 그 날 보다는 훨씬 괜찮아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습니다.

얼른 된장국을 끓이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 꺼내어 두 집 식구가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배 7.5kg 한 박스, 양파 20kg 절반, 지리산에서 사 온 건 표고버섯, 마른 산나물, 식용유 2개, 유자청 한 통, 고구마, 참기름 한 병, 쇠고기, 호박 죽, 유산균 음료, 사과 즙 등, 집에 있는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담아 내었더니 보고 있던 삼촌이 “한 살림 차려주십니꺼?” 라고 합니다.

별 먹을 건 없지만, 그래도 나눠 먹는 게 가족이란 생각이 들었고, 또 어머님을 모셔 가서 정형외과를 데리고 다닌다는 동서의 예쁜 마음이 기특하여 다 주고 싶은 내 심정이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동서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 잘 도착했어요. 그런데 김치 통을 안 가져 왔어요.”
“어디다 두고?”
“엘리베이터 앞에 있을 겁니다. 짐이 너무 많아 서로 미루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참나!”

딸아이가 급히 내려 가 보니 김치 통은 그대로 얌전히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동서, 김치 통 있으니 걱정 마”
“네, 형님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고맙긴, 고생 해”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참기름을 국산 참깨로 짠 것을 준 것입니다.

양념보관고 속에 참기름이 세 병 있었는데, 두병은 중국산으로 짠 것이고, 한 병은 국산으로 짠 것인데,  그 진짜를 줘 버린 것이었습니다.

괜한 내 욕심에  ‘아이쿠! 이 바보’ 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으니 남편이 곁에서 듣고 선 

“왜?”

“허걱, 참기름을 진짜로 줬다.”

“다시 가져오라고 할까?”
“당신은.....”

“잘 한거야, 맛있게 먹으라고 해”

“그래야죠.” 
 

  우리 시댁형제는 6남매로, 대구, 여수, 인천, 통영, 부산 등 제법 먼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일 가까운 셋째 아들인 우리가 무슨 일 있으면 달려가곤 했는데, 통영 살고 있는 막내삼촌이 시어머님을 모셔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안 그랬으면 내가 조퇴를 내 가면서 이러 저리 병원을 뛰어 다녀야 할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어머님은 당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혼자 끓여 드시고,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시지만, 팔순이란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6남매 키우시느라 고생하셨기에 이젠 노후는 편안히 보냈으면 하는 맘 가득합니다. 뼈 마디마디 안 아프신 곳이 없는 빈 소라껍질 같은 어머님이십니다. 내 몸 태워 불 밝혀주는 촛불같이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시며 사셨건만, 지금은 그저 힘 없고 여윈 육체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정성 하나로, 이렇게 자식들 번듯하게 잘 키워주셨기에 큰아들, 작은 아들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 모두 다 사랑스럽게 키운 자식들인데 말입니다.

 

막내며느리의 시중 받으며 건강 빨리 되찾길 바라는 맘 가득합니다.

쉬는 토요일 날, 김치 통 들고, 사골이나 하나 사서 찾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님!

오래 오래 우리곁에 머물러 주시길 바래 봅니다.

 

쌀쌀해진 날씨,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