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오빠, 올 추석엔 엄마 올까…”

淸潭 2006. 9. 28. 18:53

[추석이 슬픈 이웃들] “오빠, 올 추석엔 엄마 올까…”

 

병든 할머니와 사는 한영·한별 남매
5년전 엄마·아빠 가출… 카드빚만 남아
겨울엔 이불 뒤집어쓴채 끌어안고 버텨

 

할머니(이경희·52·서울 송파구 마천2동)는 “제발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린 오누이 한영(9·K초교 3년)이, 한별(여·5)이랑 함께 산다. 추석…. 갈 곳도 올 사람도 없다. 작년 추석도 그랬고 재작년 추석 때도 그랬다. 할머니는 그저 “바람이나 쐴 심사로 어린이대공원에 데려갈 생각”이라고 했다. 갈라진 목소리 틈새로 물기가 가득하다.
 

오누이 엄마는 한별이를 낳고서 두 달 만에 집을 나갔다. 그때 엄마 나이 스물 두 살. 어린 나이에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시집도 가난했고 친정도 가난했다. 엄마는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집을 나갔다. 이후 소식 두절. 아빠도 소식이 끊겼고, 카드 빚만 잔뜩 남았다. 2001년 2월이었다.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폭음(暴飮)을 하고, 수시로 집을 비운다. 그래서 할머니와 한영이와 한별이 셋이 무인도처럼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갑상선기능항진증과 관절염에 고혈압을 앓으며 식당 일을 하고 있다. 병 있다면 일을 못하게 될까봐 내색도 못한다.
 

곰팡이 가득 핀 여섯 평짜리 두 칸 반지하방엔 문고리마다 약봉지가 걸려 있다. 절반은 할머니, 절반은 눈병, 축농증을 앓는 한영이 약이다. 대출 받은 2200만원으로 사는 전셋집. 한 달 이자만 18만원이다. 수입은 정부 보조금 40만원, 식당 월급 30만원 이렇게 70만원. 지난 겨울 한 달 가스비가 2만5000원이었다. 가스보일러 끄고 이불 두 채 깔고 한 채는 뒤집어쓰고 셋이서 겨울을 났다.
 

엄마를 본 적이 없는 한별이, “오빠랑 나는 할머니가 낳은 거지?”하고 묻는다. 오빠 한영이는 할머니 맨살만 보면 얼굴을 비벼대고 입을 맞춘다. 지난해 우연히 서랍에서 찾아낸 엄마 주민등록증. 한영이가 낮잠 자던 한별이를 깨웠다. “엄마야, 우리들 엄마.” 아이들은 그때 한참을 울더라고 했다. 할머니는 엄마 사진, 아빠 사진 몽땅 태워버렸다. 이후로 아이들은 엄마를 찾지 않았다.

사랑으로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할머니는 까막눈이다. 학교에서 한영이 준비물, 가정통신문이 와도 읽지 못한다. 준비물 안 가져 오는 아이…. 아이는 학교에서 수시로 혼이 나지만 집에 오면 말이 없다.
 

“내가 무학이라, 그저 애들 부둥켜안고 살면 되리라 싶었는데 세상이 그게 아니다”라고 했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가는 한별이, 한글학원에 보낸다. 10만원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한영이, 그렇게 미술학원 보내달라고 했는데 돈이 없다. 10만원이다. 10만원짜리 한(恨)이다. 꿈을 물었다. 고개를 흔들다가 아이가 대답한다. “…화가요.” 할머니가 말을 막는다. “아니야,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돼야 해. 그래야 이 ‘할머니 때를 벗고’ 잘 살지.” 할머니가 또 울었다. 한가위를 보름 앞둔 가을날 오후였다.

 

박종인기자 seno@chosun.com

입력 : 2006.09.20 00:45 29' / 수정 : 2006.09.20 13:21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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