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 다 야구 못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난투극 정리, 장훈의 카리스마
감히 반말을? 50년 전 소문의 진상
다카다 시게루(79)라는 인물이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황금기를 이끌던 선수다. 공수주 3박자가 완벽했던 좌익수다.
별명이 하나 있었다. ‘펜스의 마술사’다. 어느 구장에 가도 완벽하다. 담장에 맞고 튀는 타구를 기가 막히게 예측하고, 반응한다. 역대 최고의 좌익수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고비가 찾아왔다. 입단 9년 차였다(1976년). 선수 한 명이 트레이드로 영입됐다.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다.
문제는 포지션이다. 좌익수 자리가 겹친다. 그런데 장훈이 누군가. 당대 최고의 타자다. 감히 비빌 상대가 아니다. 교통정리는 간단하다. 구단은 다카다에게 3루 전향을 권했다. 물론 말이 권유다.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이때부터다. 묘한 소문이 돈다. 밀려난 돌이 텃세를 부린다는 수군거림이다. 그럴듯하다. 다카다의 32세 때다. 이미 덕아웃 고참이다. 선수단 내에서 카리스마도 꽤 있는 편이었다.
“여긴 교징(巨人, 자이언츠)이야. 입단 서열을 따져야지. 어딜 감히….” 그러면서 장훈에게 ‘이래라, 저래라’ 했다는 말이 돌았다.
아무리 그래도. 제법 나이 차이(5살)도 있다. 무엇보다 고교(오사카 나니와 상고) 5년 선후배 사이다. 그래서 더 놀라운 얘기였다.
그로부터 거의 50년이 지났다. 어느 기자가 그때 얘기를 물었다. “진짜로 장훈 씨에게 반말을 하셨어요?”라는 질문이다.
80을 앞둔 당사자가 펄쩍 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거짓말이야. 거짓말.”
그러면서 기자에게 역정을 낸다.
“생각해 봐. 그 정도 대타자에게 그런 무례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그때 우리 팀이 어려웠지. 나가시마 씨가 은퇴하고, 꼴찌로 곤두박질쳤어. 도와주려고 와준 사람이 장훈 선배야. 나 따위가 경쟁 상대가 될 리가 없지.”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문이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반말? 장훈 씨가 어떤 사람인 줄 알면서 그런 말을 해?’ 하는 느낌이다.
감독에게 ‘당신…’ 하던 선수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롯데 오리온즈(지바 롯데 마린즈)에서 뛰던 아이코 다케시(62)의 얘기다.
“18살(1980년) 때였죠. 드래프트 1순위로 롯데에 입단했어요. 이듬해 2월에 첫 스프링캠프가 시작됐죠. 야마우치 가즈히로(1932~2009년) 감독이 선수단 전체 미팅을 소집했어요. 아마 첫날이니까 훈시 말씀을 하겠다는 뜻이겠죠. 난 한마디도 빠트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들었죠.”
그런데 고졸 루키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감독의 별명이다. ‘갓파에비센(かっぱえびせん)’이다. 우리의 ‘새우 과자’와 무척 닮은 스낵의 이름이다. 왜냐. CM송이 이렇다. “♪♬ 멈출 수 없어. ♩♭ 끊을 수 없어…”가 계속 반복된다.
“감독님 말씀이 워낙 길어요. 처음에는 열심히 듣죠. 그런데 나중에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멍~해져요. 드디어 끝났다 싶었어요. ‘오늘도 다치지 않게, 열심히’. 그래서 일어날 준비를 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요.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아이코 씨는 기억만으로도 하품이 나는 것 같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다.
“그때였어요. 맨 앞 줄에 앉았던 누군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죠. ‘그러니까, 결국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버럭’의 주인공은 장훈 씨였다.
“깜짝 놀랐어요. 프로 팀에서 감히 선수가 감독에게 ‘당신(アンタ)’이라고 부른다는 건 상상도 못 해봤어요.” 장훈 씨가 40세 시절이다. 감독과 8년 차이다. 팀을 옮긴 지 2년 된 이적생이었다.
난투극 단골이지만 23년간 퇴장은 ‘0’
애송이 투수가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시즌 중에 있었던 사건은 그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어느 날 세이부와 경기였어요. 몸에 맞는 볼 때문에 시비가 일어났죠. 양쪽 모두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달려 나왔어요. 뭔가 크게 한판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죠.”
그러나 괜한 걱정이다. 홈 팀에는 끝판왕이 있다.
“소리 지르고, 멱살잡이에, 그라운드가 온통 어수선했죠. 그런데 잠시 뒤에 벤치에서 누군가 느릿느릿 걸어 나오더라고요. 장훈 선배였어요. 그러면서 한마디 해요. ‘이봐, 고이치. 여기 있는 애들 전부 야구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고이치’는 세이부의 최고참 다부치의 이름이다.
“그 말 한마디로 끝났죠. 다들 겁을 잔뜩 먹는 눈치였어요. 기가 눌려서 하나 둘 돌아서더라고요. 대단했어요. 정말로 야쿠자 영화 뺨치더라고요. 말 한마디로 그 살벌한 분위기를 정리한다는 게 말이 돼요? 만약 야구계에 반초(番長ㆍ짱, 혹은 우두머리)가 있다면 그건 단연 장훈 씨라고 확신하게 됐죠.”
사실 싸움하면 일화가 많다. 야사도 여러 개를 남겼다. 야쿠자 조직, 덩치 큰 외국인 선수…. 다양한 상대와 다채로운 상황 속에서 활약(?)했다. 연루된 난투극만 해도 열 손가락이 부족할 지경이다.
그러나 뜻밖의 사실이 있다. 선수생활 23년간 2752경기를 출장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퇴장을 당한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귀기가 느껴지는 스윙 연습
감독에게 입바른 소리 하고, 눈빛 하나로 그라운드 정리하고…. 물론 대단하다. 하지만 진정한 카리스마는 그런 것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다시 18살 신입의 기억이다.
“캠프 초반에는 꽤 실망했어요. 장훈 선배 훈련 태도가 영 별로였기 때문이죠. 스트레칭도 열심히 하지 않아요. 그리고는 연습 배팅 잠시 하고는 사라져요. 숙소로 돌아갔다고 하더라고요. ‘대단한 타자라고 훈련도 대충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아니었다.
“막내라서 궂은일을 많이 하죠. 사인 심부름도 그중 하나예요. 특히 껄끄러운 선수들에게 많이 보내요. 그날도 장훈 선배 방에 좀 다녀오라는 거예요. 부탁받은 사인 때문이죠.”
똑똑똑, 조심스레 방문을 두드린다.
“선배님 저, 사인 좀 해 달라고….”
“응? 일단 들어와.”
“방문을 열었죠. 깜짝 놀랐어요. 그 방에는 침대가 없었어요. 대신 온통 다다미가 깔렸죠. 그 위에서 온통 땀투성이가 돼서 배트를 휘두르고 있는 거예요.”
눈이 휘둥그레진다. 꼼짝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그냥 스윙이 아니었어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분위기였죠. 귀기(鬼気) 느껴진다고 할까? 하여튼 뭔가 엄청난 기합과 박력 같은 것들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역시 초일류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뭔가 다른 게 있구나. 그런 걸 느꼈죠.”
에필로그
지난 6월 모습이 팬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지팡이를 짚고, 걸음도 온전치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지금은 꽤 좋아졌다. 스스로 “허리 수술 때문에 조금 불편했다”면서 “이제는 괜찮다. 쌩쌩하게 돌아다니면서 술도 꿀꺽꿀꺽 잘 마시고 있다”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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