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칠석(七月七夕)
1. 칠석의 유래 음력 7월 7일을 칠월칠석(七月七夕)이라고 한다 이 날은 1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내려온다. 견우직녀설화 [牽牛織女說話]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결혼하였다. 그들은 결혼하고도 놀고 먹으며 게으름을 피우자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하고 1년에 1번만 만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이 두 부부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태우면서 지내야 했다. 이러한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은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 들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 주었으니 그것이 오작교이다. 그 다리의 이름이 까마귀와 까치가 이었다 해서 '오작교'(烏鵲橋)라고 한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1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진다. 그래서 칠석날 세상에는 까치와 까마귀는 한 마리도 없으며, 어쩌다 있는 것이 병이 들어 하늘로 올라갈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한다. 또 까마귀와 까치는 이날 다리를 놓느라고 머리가 모두 벗겨지게 된다고 한다. 칠석날에는 보통 비가 내리는데 견우와 직녀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 한다. 이날 오는 비, 곧 칠석우(七夕雨)는 서로 타고갈 수레 준비를 하느라고 먼지 앉은 수레를 씻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물이 인간 세상에서는 비가 되어 내리므로, 이 비는 '수레 씻는 비' 즉 '세차우'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칠석날 저녁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여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하며, 이튿날 새벽에 비가 내리면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의 비를 '눈물 흘리는 비', 곧 '쇄로우'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한대의 괴담을 기록한 책인 <재해기>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7월 7일 저녁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갈라졌던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자연적인 현상에서 성립되었다. 즉 천문학상의 명칭으로 견우성은 독수리 별자리의 알타이어 별이고, 직녀서은 거문고 별자리의 베가 별을 가리키는 것으로 원래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의 둑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별은 태양 황도상의 운행 때문에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꼐 낮에 떠있고, 봄 초저녁에는 동쪽 하늘에 나타나며 칠석 때면 천장 부근에서 보게 되므로 마치 1년 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최남선의 <조선상식>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이 1년에 한번씩 마주치게 보이는 것이 일찍이 중국 주대 사람들이 해매다 경험하는 천상의 사실이었는데, 여기에 차츰 탐기적인 요소가 붙어 한대에 와서 칠석의 전설이 성립된 것이라고 하였다. 기록된 설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 양(梁)의 〈형초세시기 荊楚歲時記〉에 실려 있다. 이같은 전설은 중국 주(周)나라에서 발생하여 한대(漢代)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져서 지금까지 구비전승되었다. 견우직녀설화는 동양에 널리 알려진 설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409년 축조된 평양 덕흥리(德興里) 고구려 고분벽화에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앞에는 견우, 뒤에는 직녀가 그려져 있다. 2. 칠월 칠석의 풍속 칠석의 풍습으로는 칠석물맞이, 칠식기원, 칠석놀이, 쇄서폭의 등이 있다. 칠석물맞이는 칠석날에 목욕을 하는 풍속으로, 칠석날 내리는 빗물을 약수라 여겨 목욕을 하면 땀띠, 부스럼 등 피부병이 낫는다고 믿었다. 이 날에는 빗물 뿐만 아니라 산간계곡의 약수터나 계곡, 폭포 등을 찾아 목욕을 하기도 했다. 칠석기원은 칠석의 대표적인 풍속으로 견우성과 직녀성을 보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직녀를 하늘에서 바느질을 관장하던 신으로 여기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기 때문 이는 중국 한나라의 걸교(乞巧)와도 비슷하며, 여자들이 길쌈을 더 잘 할수 있도록 직녀성에게 비는 것이다. 이 날 새벽에 부녀자들은 참외, 오이 등의 초과류를 상위에 놓고 절을 하며 여공이 늘기를 빈다. 시 후에 상을 보아 음식상 위에 거미줄이 쳐져 있으면 하늘에 선녀가 소원을 들어주었으므로 여공이 늘 것이라고 기뻐한다. 혹은 처녀들이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은 다음,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바느질 재주가 있게 해달라고 비는데, 다음날 재위에 무엇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다고 믿었다. 원래는 칠석날 밤에 궁중이나 민가의 부녀자들이 바느질감과 과일을 마당에 차려 놓고 바느질 솜씨가 있게 해달라고 널리 행한 중국 한대의 걸교의 풍속에 따른 것이다. 이 풍속은 당나라대에 와서 주변 민족들에 전파되었다. 칠석놀이에는 바느질, 수놓기 대회, 새끼꼬기, 시짓기 놀이 등이 있다. 칠석날 견우성, 직녀성을 보며 소원성취 칠석요를 부르며 여인들은 바늘질이나 수놓기 대회를 했고 남자들은 새끼꼬기, 농악, 씨름을 즐겼다. 선비와 학동들은 두 별을 제목으로 시를 지으면 문장을 잘 짓게 된다고 하여 시를 지었다. 쇄서폭의는 여름 휴한기에 장마철을 지나며 눅눅해진 옷과 책을 내어 말리던 풍습을 의미한다. 칠석에는 집집마다 옷과 책을 내어 말리느라 마당이 그득했다고 전해진다. 장마를 겪은 후인 이때, 농가에서는 여름 장마철 동안 눅눅했던 옷과 책을 내어 말리는 풍습이 있다. <동국세시기> 7월 7일 인가에서는 옷을 햇볕에 말린다 하여 이는 옛날 풍속이라 하였는데, 이 날에 내어 말리는 옷과 책의 수량에 따라 잘살고 못사는 것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의 칠석 풍속은 중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날 각 가정에서는 밀전병과 햇과일을 차려놓고 부인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수명장수와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기도 한다. 또 이북지방에서는 이 날 크게 고사를 지내거나 밭에 나가 풍작을 기원하는 발제를 지내기도 한다. 중부지방에서는 '칠석맞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단골 무당에게 자녀의 무사 성장의 기원을 부탁하는 것이다. 무당은 물동이를 타고 기원의 상징인 명다리를 내어 바람에 불리고, 다시금 무사 성장의 기원을 한다. 칠석에는 지역에 따라 여름 장마비에 더러워진 우물을 청소하고 우물이 깨끗하게 잘 솟아나오게 해달라고 소머리를 바쳐 기원하는 우물고사를 올리기도 했다. 또 호남지역에서는 ‘술멕이날’이라 하여 두레꾼들이 술푸념을 기념하는 날로 지내기도 했다. 한편 7월이면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시기이다. 농가에서는 김매기를 다 매고 나면 추수때까지는 다소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농사 절기상으로는 세벌 김매기가 끝나고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 하여 한여름철의 휴한기에 접어드는 탓으로 호미걸이 등을 놀면서 휴식을 취했다. 술과 떡, 안주를 준비하여 놀고 풍물 판굿이 꾸려지는 마을축제를 벌인 것이다. 아낙들은 아기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면서 백설기를 쪄서 칠성제를 올리기도 했는데, 칠성제는 정갈하게 지내는 것이라 소찬으로 준비하고 흰무리를 빚는 것이 원칙이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에는 칠석은 원래 중국의 속절로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공민왕은 몽고 앙후와 더불어 내정에서 견우 지겨성을 제사하였고, 또 이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으며,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행들에게 절일제의 과거를 실시하였다고 하였다. 다양한 생활 주기와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오늘날 칠석의 풍속은 다만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동심의 세계에 꿈을 부풀리는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3. 칠월 칠석의 시절음식 칠석은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시기로, 이때가 지나면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므로 밀가루 음식은 밀냄새가 나서 꺼리게 되어 마지막으로 밀가루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쌀이 귀하던 시절 밀가루 음식은 여름철 주식의 하나였으며, 칠석 즈음은 밀을 수확하는 시기이기도 하여 칠석의 시절음식은 밀국수와 밀전병, 수제비, 밀쌈 등이 대표적이다. 밀국수는 밀가루를 반죽해 만들어 먹는데, 미역국을 끓여 반죽한 밀가루를 떠 넣어 수제비처럼 먹기도 했고 얇게 썰어 칼국수로 끓여 먹기도 했다. 칼국수에는 호박, 쇠고기, 달걀지단을 고명으로 올리고 반죽에는 콩가루나 메밀가루를 섞기도 한다. 밀전병은 밀가루반죽을 동그랗게 부쳐 갖가지 채소, 고기와 싸먹는 음식으로 특별한 비법 없이 손쉬우면서도 근사한 요리. 밀전병을 부쳐 접시에 놓을 때 그냥 놓으면 서로 들러붙을 수 있으므로 사이사이에 잣가루나 콩가루 같은 것을 살짝 뿌려주면 좋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 곳이 바로 오작교 다리난간 위였다지요 . 견우와 직녀는 서로가 연모하는 사이였지만 둘 사이에는 멀고 험한 굴헝이 있어 안타깝지만 둘은 서로 그리움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답니다 이를 알게 된 까마귀와 까치들이 회의를 한 끝에 견우와 직녀 사이에 몸으로 다리를 놓아 그들을 상봉하게 만들자 그래서 칠월 칠일 칠석날 친구들 총동원령을 내려 둘 사이의 허공에 날개를 파득이며 다리를 놓고 견우와 직녀가 만나 포옹하도록 도와주었다 합니다. 사람들은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을 잊지 않으려 남원 광한루 앞에 오작교 다리를 놓았습니다 물론 오작교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만나 뜨거운 포옹으로 그들의 사랑을 불태웟던 곳이기도 하지요 견우와 직녀의 사랑은 돌에 새겨지고 두고 두고 사람들은 그 사랑을 부러워한답니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은 서양에도 전파되어 이태리 가이올라 섬에 가면 서양식 오작교가 놓여있는데 이곳에서도 견우와 직녀를 흉내내는 이들이 있다 하네요 ㅎㅎ 서양의 두 연인도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었나 봐요.^^* 사랑도 좋지만, 에구 저는 보는것만도 앗찔하네요 ㅎㅎ 저러다가 아래로 떨어 지면 어쩌죠? 바람만 살짝불어도 ..에고 생각만 해도 앗찔 ~~. 8월2일 음력 7월 7일 .. 칠설날이라해서 인테넷 사이트에서 자료를 찾아 올렵보니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참 재밌네요. 그 옛날에 이 얼마나 알콩달콩한 이야기입니까! 예부터 내려오던 이날의 풍속들은 참 많은데요, 여자들은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가 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기도 하고, 남자들은 신이 점지해 준다고 일찍 들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호박부침이나 밀국수 등을 해먹었다고 하네요! ^^ 지금은 서양의 무슨 데이 무슨 데이 하면서 많은 데이가 들어와서인지 우리 젊은 이들이 전통적인 유래를 잊은것같아 씁쓸 한 마음입니다..~~ 어느 사이 주말입니다... 이번주가 휴가 피크라는데.. 그리움님들은 휴가 를 다녀오신분들도 계실거고 또 오늘쯤 떠나는 분들도 계시겠죠 그런데 지금 태풍 나크리로 인해 많은 비가 온다 하니 일기예보를 잘 들어 보시고 오내만 하면 계곡 은 피하는게 좋을듯 싶네요.. 즐거운 주말과 함께 신나는 음악 들으시면서 좋은 시간들 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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