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도선사 조실 경하(熲霞) 현성(玄惺) 스님의 법구가 나무 위에 앉았다. 상좌스님들이 불을 넣었다. 청담 스님 가르침에 뿌리 내리고 사바에 불법(佛法)의 그늘 드리웠던 나무 하나 타들어 갔다. 출가수행자 53년의 삶 동안 살며 중생 교화에 애쓰던 육신은 연기처럼 하늘로 사라져갔다. |
서울 도선사 조실 경하(熲霞) 현성(玄惺) 스님이 1월24일 마지막 길을 떠났다. 청담문도회 장의원회(위원장 혜성 스님)는 삼각산 도선사 호국참회원과 남양주 천마산 보광사서 영결·다비식을 엄수했다. 사부대중 500여명이 눈물로 현성 스님을 배웅했다. 조계종 전 원로회의 의장 밀운, 원로의원 종하, 교육원장 현응, 동국대 이사장 자광, 범어사 주지 경선,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 내빈들도 자리를 지켰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었다. 한파에 풍경이 시리도록 울었다. 현성 스님과 청담 스님을 은사로 사형사제의 지중한 인연을 맺은 스님들은 저마다의 인연을 떠올리며 추모했다. 눈물은 애써 아꼈다.
500여 사부대중 눈물로 배웅 법구 보내며 “나무아미타불” 남양주 보광사서 다비식 봉행 “돌아와 다시 포교하자” 애도 3월9일 도선사에서 49재 막재
| | | ▲ 현성 스님과 청담 스님을 은사로 사형사제의 지중한 인연을 맺은 스님들은 눈물을 애써 아꼈다. 저마다 현성 스님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추모했다. 혜성 스님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도를 닦겠다고 약속했다. |
청담문도회 문장 혜성 스님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도를 닦겠다고 약속했다. 군종교구장 선묵혜자 스님은 아침에 죽을 먹을 때 “막내 혜자 많이 묵으라”고 했던 인자한 모습을 기억했다. 청담장학회 이사장 동광 스님은 도선사에 내린 흰 눈처럼 하얗게 빛나던 현성 스님의 눈썹을 애틋한 심정으로 떠올렸다. 도선사 주지 도서 스님은 부처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더 전하려고 매진했던 현성 스님의 뜻을 받들겠다고 발원했다.
실제 현성 스님은 4번의 종정 표창은 물론 교정대상 자비상, 세계인권선언의 날 국민훈장 동백장(교정교화부문) 등 수많은 공적을 남겼다. 하지만 늘 포교현장에 있거나 관심이 필요한 어린이청소년, 수용자, 군장병 포교를 물심양면 지원하는 등 포교원력이 더 빛났다. 입적 전까지 어린이청소년 포교 효시격인 사단법인 청소년교화연합회 총재를 맡았으며, 2016년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도 단상에 올라 청소년 포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서울 홍은동 현성정사에 주석하며 최근까지 안양교도소 불교 종교위원회 회장으로서 수용자 교화에도 남다른 원력을 실천으로 옮겨왔다.
그래서 조계종 전 원로의장 밀운 스님은 “법신은 가고 없어도 큰스님의 가르침은 이 사바세계에 두루 펴져 있음을 안다”며 “전등의 불빛이 휘황하게 빛나소서”라고 현성 스님을 기렸다. 동국대 이사장 자광 스님도 “이왕 길 떠나셨으니 저승에 점 하나 찍고 속히 돌아와 같이 군포교, 청소년·수용자 교화도 하자”며 현성 스님의 원력에 고마움을 표했다. 재가자를 대표해 정병국 현성정사 신도대표는 “큰스님의 높은 가르침을 따라 항상 초심을 간직하고 앞장서는 불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 | | ▲ 상좌스님들은 은사스님 향한 그리움이 애잔했다. 상좌 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은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능인선원장 지광 스님은 평소 은사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현성 스님의 법구는 도선사 대웅전에 삼배 올린 뒤 보광사로 이운됐다. |
상좌스님들은 은사스님 향한 그리움이 애잔했다. 상좌 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은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능인선원장 지광 스님은 평소 은사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상좌를 대표해 추모대중에 감사를 전한 지광 스님은 “삼각산 자락서 행자생활을 하며, 능인선원서 삼각산 영봉을 바라보며 큰스님 가르침을 새겨왔다”며 “평소 열심히 수행해서 중생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야 하셨다”고 말했다.
도선사 대웅전에 삼배 올린 현성 스님 법구는 남양주 보광사로 이운됐다. 법구가 나무 위에 앉았다. 상좌스님들이 불을 넣었다. 부처님 가르침에 뿌리 내리고 청담 스님이라는 물줄기로 성장해 사바에 불법(佛法)의 그늘 드리웠던 나무 하나 타들어 갔다. 출가수행자의 삶 동안 살며 중생 교화에 애쓰던 육신은 연기처럼 하늘로 사라져갔다.
1월20일 법랍 53년 세수 80세로 입적한 현성 스님은 이렇게 껍데기를 버렸다. 겨우내 꽁꽁 언 땅과 물이 녹으면 빈 가지마다 꽃 피우듯 현성 스님의 덕화는 그렇게 다시 삼각산의 봄을 준비했다.
“나무아미타불” 정근이 천마산을 휘감았다. 사부대중은 합장했다. 현성정사, 고성 옥천사, 부산 내원정사, 현성정사, 능인선원, 부산 미타선원을 거쳐 3월9일 도선사에서 봉행되는 49재의 막재까지 왕생극락을 발원하겠노라 다짐했다. 입적 전 현성 스님이 남긴 부탁의 글에 어느 추모객의 시선이 멈췄다.
“나를 낮추는 것이 나를 귀하게 하는 것이고, 내가 양보하는 것이 나를 편안케 하는 것이니 일체중생이 한 몸이고 천지가 한 뿌리임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양주=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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