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선과 성공한 악의 교훈
죽산(竹山)의 탄현(炭峴)에는 이씨(李氏)들이 살고 있었는데 가문이 매우 번창하였다. 무신역란(戊申逆亂) 때 탄현은 역도들이 서울로 북상하는 길목에 위치한 요충지였다. 이씨 일족이 모여 밤에 술을 마시며 이튿날 아침에 피난을 가기로 약속하였는데, 몇몇 젊은이가 분개하며 말하였다.
그러자 노인들이 심사숙고하고 말하였다.
이때 양지(陽智) 수령과 잘 아는 젊은이가 말하기를,
하자 모두 좋다고 하였고, 부녀자들도 모두 호응하였다.
새벽이 되어 양지 수령을 보러 가려 하였으나 군복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흰 무명옷을 겹소매를 잘라 버린 뒤 입고 화살을 차고 활을 메고는 떼 지어 원수의 진영 뒤편으로 달려가서는 헤매며 두리번거리니, 그 모습이 마치 정탐하는 자들 같았다. 척후병이 이들을 붙잡자 큰 소리로
하였다. 그런데 당시 역도들이 자칭 의병이라 하였고 옷도 이들과 같은 백색이었으므로 관군은 마침내 이들을 적으로 오인하고 모두 베어 죽였다. 수령을 잘 아는 자만은 이 소리를 들은 양지 수령의 구원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으나, 이씨 집안은 망하고 말았다.
역적 박필현(朴弼顯)이 일찍이 상주(尙州)에 살았는데, 박동형(朴東亨)이 노복처럼 그를 따라다니며 잘 섬겼다. 관상을 잘 보던 박필현은 항상 말하기를,
하였다.
무신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박필현은 태인(泰仁) 땅을 근거지로 반란하려 하면서, 박동형을 불러서는 고을에서 거둔 세금의 절반을 주며 말했다.
박동형은 이것을 받아 가지고 돌아갔다.
반란이 실패하자 박필현은 박동형에게 달려갔다. 박동형은 그를 꾀어 깊이 숨게 하고는 주(州)로 달려가서 고발하였다. 주에서 박필현을 잡아 죽이고 박동형의 공로를 국가에 상주하니, 국가에서는 그에게 군(君)을 봉해 주고 또 박필현의 재물을 상으로 주었다. 박필현은 박동형이 반드시 귀하게 될 줄은 알았으나 자기 때문에 귀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은 다만 남을 귀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뿐이다. 그러나 이씨는 의리에 분발하였는데도 망하였고, 박동형은 역적에 가담하였는데도 군(君)에 봉해졌다. 그러므로 일이 아무리 좋더라도 잘못 거행하면 실패하고, 마음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시기에 맞으면 성공하는 것이다.
[주D-002]박필현(朴弼顯) : 1680 ~ 1728.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역적 김일경(金一鏡)을 추종하였고, 1726년 이인좌(李鱗佐)가 상주(尙州)로 이주하였을 때 그와 사생지교(死生之交)를 맺었다. 태인 현감(泰仁縣監)으로 부임하자 곧 반란을 꾀하고는 태인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금구(金溝)를 거쳐 전주(全州)에 도착하였으나, 반란 계획이 부하들에게 발각되어 모두 도주하는 바람에 실패하였다. 아들 사제(師濟)와 함께 상주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어 참수되었다.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 제3권 > 성언(醒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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