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속에 피어난 연꽃 -법장- |
글쓴이 : 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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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태어나 평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지표로 삼고 섬길 수 있는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깨달음에 목적을 두고 형이상학(形而上學)에 몰두하는 수행자에게 길을 제시해 주는 스승의 존재는 어둠 속의 빛과 같습니다. 처음 발심출가(發心出家)하여 태산을 옮길 만한 신념이 있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애를 써도 공부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뜻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기에 스승의 존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법등(法燈)을 지닌 선지식을 만나는 인연은 과거세로부터 선업(善業)을 많이 지었어야 금생에 주어지는 큰 복이니 이는 참으로 정법을 지닌 스승을 만나야 정법을 배워서 정법을 깨달아 정법을 잇고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불교가 청정한 교단과 지혜롭고 자비로운 교단 쪽으로만 발전해가지 못하고 때로는 많은 잘못된 쪽으로 가는 것도 기본적으로 교육과 수행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스승이 책임감을 가지고 제자들을 이끌려는 마음이 부족하고 제자 또한 스승의 뜻을 모름지기 받들어 행하려는 뜻과 노력이 없으며, 스님들은 신도들을 엄하게 가르치려는 의지가 없고 신도들은 정법을 가르치는 스님보다 다정하고 술법(術法)을 쓰는 스님을 찾아 몰려다니니 참으로 우리 집안의 일이 걱정입니다. 스승과 제자가 법으로 맺어진 인연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인심 따라 의지와 은혜를 저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떠난다면 어느 세월에 정법이 서고 눈 밝은 도인들이 배출되겠습니까? 저는 본래 둔기(鈍器)라 이 세상 가운데 내세울 것이 없으나 불문(佛門)에 들어와 맺어진 인연복(因緣福) 하나는 남들에게 망설임 없이 자랑할 수 있습니다. 위로는 부처님을 모시고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이신 경허 스님(鏡虛禪師)의 골수정신(骨髓精神) 면면이 이어져온 이 곳에서 평생을 몸담고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다행스럽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스님(德崇叢林 方丈 圓潭 禪師)의 천진무구(天眞無垢)하신 성품,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는 말씀이 없으셔도 법어(法語)의 극치이시니 스님을 모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불법에는 흥하고 쇠할 것이 없으나 따르는 무리들의 신심과 수행에 따라 차별이 있고 불법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으나 그 또한 따르는 무리들에게 귀하고 천한 것이 있으니 수행을 많이 하신 귀한 어른을 모시는 것이 어디 쉬운 인연이겠습니까? 저는 우리 스님을 모시면서 젊은 날부터 주위에서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마음 속으로 ‘우리 스님은 도인이시니 거친 회오리바람이 천 번 만 번 몰아쳐도 쓰러지지 않는 쪽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 가까이에서 정성껏 모시다 보면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라는 확신으로 세밀히 살피면서 모시다 보니 남들이 스님의 근본까지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까지도 저는 보고 알게 되어 공부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요즈음 스님들은 어른을 잘 섬기지 않는 병폐가 있는데 이것은 지혜가 부족하여 잠시 거짓으로 이루어진 이 몸에 따른 욕심과 집착을 진실된 것으로 알고 교만을 부리고 자신만을 높여서 대접을 받으려 하는 풍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스승을 가벼이 여기고 그 인과로 도와는 점점 멀어지고 복은 점점 박해지는 것이니 이제부터라도 도와 복을 구하려 하면 모름지기 ‘나’라는 상(相)을 꺾고 공손히 예의를 갖추어 스승을 섬겨야겠습니다. 달마 스님(達磨大師)의 법을 받은 혜가 스님(慧可禪師)께서도 처음 입문(入門)할 때에 눈 속에 앉아서 왼팔을 끊어 바치지 않았습니까? 주역(周易)에도 “겸양은 덕의 자루와 같다.” 하였고, 서경(書經)에도 “네가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는 너와 다투지 않는다.” 하였으니 도를 배우는 자가 어찌 스승 앞에서 자신의 뜻을 송곳처럼 세워서 스승을 불편하게 하겠습니까? 오직 스승을 믿고 따르다 보면 스승도 이에 감동하시어 자신의 깨달음을 지성껏 전하시고 모자라는 것은 또 새로운 스승에게 인도하여서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로 길러내 주실 것입니다. 중국 동진(東晋) 때 도안 스님(道安大師)이 계셨는데 당시 사람들이 찬탄하기를 “하늘 아래 전체에서 오직 석도안(釋道安) 한 사람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안 스님도 12세에 출가하셨으나 생김새가 뒤떨어지고 추해서 3년 동안 은사스님 밑에서 행자로 궂은 일만 하시다가 하루는 스님께서 주신 변의경(辯意經)을 한 나절 동안 밭에서 일하시며 다 외우셨습니다. 이에 출가(出家)를 시키시고 곧 불도징 스님(佛圖澄大師)에게 보내시니 불도징 스님께서 단번에 알아보시고 “명마가 훌륭한 마부를 만나지 못하여 소금가마나 끌고 다녔구나.” 하시며 바르게 교육시켜서 천하제일 스님을 키워내셨으니 도안 스님이 3년 동안 참고 스님을 모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졌으며 은사스님 또한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고 머리 굽혀서 불도징 스님에게 보내지 않았으면 또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졌으며 불도징 스님께서 가르치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이루어졌겠습니까? 양심적인 은사스님 만나서 큰 도는 못 배웠어도 인연을 맺어주신 은혜 또한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불사는 찬탄하지 않고 왜 계속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연을 강조하는가 하면 이 도량의 불사야말로 일찍이 일엽 스님(一葉禪師)께서 위로는 선지식을 잘 모시고 자신은 늘 하심(下心)하시며 아래로는 제자들을 잘 길러내신 결과라는 생각이 앞서서 그럽니다. 이 곳이 유서 깊은 유명사찰이 되어서 전 국민의 관심과 애정이 서리게 된 것도 일엽 스님의 공덕이라고 생각되고 그래서 이 불사도 더욱 원만히 장엄하게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께서 생전에 탁월하신 안목으로 비구니 수행도량 건립에 힘쓰시고 교육에 힘쓰시며 인재불사에 힘쓰신 결과 오늘날 훌륭한 제자를 배출해서 가람불사가 이루어진 것이니 인재불사가 곧 가람불사요, 정신불사가 곧 물질불사라는 생각 또한 듭니다. 언젠가 공림사 감인선원(堪忍禪院)을 지으시고 칠순 연세에도 대중과 함께 정진하시던 진공 스님(眞空; 呑星禪師)을 뵈오니 말씀하시기를 “한 철에 공부하려고 애쓰는 수좌 한 두 명 보고 선방 외호 하는 겁니다. 대중이 다 애쓰길 바랄 수는 없지요. 한 명이라도 외호할 수 있는 것이 어딥니까?” 하시며 빙그레 웃으셨는데 저도 가끔 그 생각을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대중스님들을 외호합니다. 사실 모든 스님들이 한 철에 모두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무심도인(無心道人) 한 분이라도 그 가운데 계시리라 믿고 가람불사도 하고 대중 외호도 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가람이 이루어진 만큼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기를 바라며 일엽 스님 영정에 향을 사룹니다. 이 도량에서 이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인물이, 일엽 스님에 버금가는 제자가 배출되기를 기원합니다. - 일엽 스님 다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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