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붓다를 만난 사람들] 13. 파타차라

淸潭 2010. 11. 10. 15:48

[붓다를 만난 사람들] 13. 파타차라
 
핍박받는 여인들의 아픔 보듬은 자비의 보살
기사등록일 [2010년 11월 08일 13:23 월요일]
 

하룻밤 새 모든 가족 잃고 충격에 방황
부처님 법 의지해 슬픔 딛고 해탈 얻어

 
삽화=김재일 화백

여성출가자들의 고백과 회상을 담은 『테리가타』라는 초기문헌에는 파타차라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읊었다는 슬픈 내용의 게송이 전해진다.

“분만이 다가와 길을 가고 있었을 때, 저는 남편이 길 위에 쓰러져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출산한 후, 저는 친정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가엾은 여인의 두 아들은 죽고, 남편 역시 길 위에서 죽고, 부모도 오빠도 하나로 쌓아올린 장작더미 위에서 재로 변해갔습니다.”

사왓티의 부유한 상인 집에서 태어난 파타차라.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과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그녀의 불행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일까. 당시 인도에서 여자가 하층 계급의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부모와 형제를 저버리고 사랑하는 남자와의 삶을 선택했다. 낯선 곳에서의 불안하지만 행복한 그와의 일상.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파타차라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출산을 앞두고 불안해진 그녀는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고 싶다고 생각하며 길을 나섰지만 가는 도중에 길에서 아들을 출산하고 말았다.

두 번째 아기를 임신하여 산달이 다가오자 그녀는 남편과 아들의 손을 붙잡고 다시 친정으로 향했다. 그런데 또 가는 도중에 산기를 느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녀는 남편이 마련해준 임시 피난처에서 배를 움켜쥐며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밖에 있던 남편이 독사에게 물린 채 온 몸에 독이 퍼져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녀는 산고 끝에 또 한 명의 아들을 얻었다.

하인과 결혼해 가족과 결별

길고도 긴 밤을 보낸 파타차라는 두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남편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싸늘하게 변한 남편의 주검뿐…. 자신 때문에 남편이 죽어버렸다고 생각한 그녀는 자책하고 또 자책하며 통곡했다. 이제 그녀가 갈 곳은 부모와 형제가 기다리는 친정뿐이었다. 두 아들을 품에 안고 하염없이 걷다보니 강이 길을 가로막았다. 지난밤의 폭우로 강물이 가슴에까지 와 닿을 정도로 불어나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건널 수 있는 깊이가 아니라고 판단한 그녀는 큰 아이를 남겨둔 채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강을 건넜다. 어렵게 강 건너편으로 건너간 파타차라는 갓난아이를 재워두고 큰 아이를 데리러 다시 강을 건넜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까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중간쯤 왔을까. 매 한 마리가 갓난아이를 노리며 날아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까지 차올라 가파르게 흐르는 물길 때문에 빨리 움직일 수도 없는 그녀는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매를 쫓아 보내고자 손을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매정한 매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아이를 낚아챈 후 유유히 저 멀리 허공으로 사라져갔다. 한편 강 저편에서 파타차라의 모습을 보고 있던 큰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며 말을 걸고 있다고 생각하여 물속으로 서둘러 뛰어들었다. 그렇게 그 조그마한 몸은 허우적거리며 저 멀리 탁류 속으로 흘러 사라져갔다.

이제 혼자가 된 파타차라. 자신이 왜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깊은 절망감에 휩싸인 그녀는 이제 홀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걸어왔다. 그녀의 친정 가까이에 살던 사람이다. 가족들의 안부를 묻자 그는 대답했다.

“지난밤의 폭풍우로 집이 무너져 내려 아가씨의 아버님도 어머님도 그리고 오빠도 모두 깔려 죽어버렸습니다. 지금 한창 화장되고 있습니다. 저 멀리 연기가 보이시지요.”
측은한 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멍하니 응시하며 그녀는 주저앉았다.

하룻밤 사이에 남편도 두 아들도 부모도 형제도 모두 잃어버린 너무나도 가엾은 여인은 자신의 몸을 두르고 있던 천이 흘러내리는 줄도 모른 채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그녀가 ‘옷을 입고 걷지 않는 여인’이라는 뜻의 파타차라라 불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알몸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실성한 여인에게 사람들은 동정은 커녕 쓰레기나 오물 등을 던지며 비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처님께서 제타숲에서 설법을 하고 계실 때, 마침 파타차라가 그 곳을 지나갔다. 법을 듣기 위해 모여 있던 군중들이 그녀를 쫓아내려 했지만, 그녀에게서 지혜가 성숙되어 있음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그녀를 데려오게 하셨다. 부처님의 목소리에 제정신이 든 파타차라는 아무 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누군가 옷을 던져주자 받아 걸친 그녀는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구제를 청하였다.

“누구나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하고 있나니, 아들이든 친족이든 의지처가 되지는 못하느니라. 생사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구하여라.”

부처님의 말씀은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만신창이가 된 파타차라의 심신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조금씩 그녀의 슬픔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자신이 집착하던 슬픔의 실체를 여실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지혜도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 그녀는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생사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겠노라 다짐하며 출가를 청했다. 그렇게 출가수행자의 길을 걷게 된 파타차라는 이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 정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파타차라는 발을 씻으며 그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발을 씻은 물을 천천히 부어버리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물줄기가 흘러갔다. 그 물의 흐름을 응시하며 마음에 안정을 얻은 그녀는 등잔불을 손에 들고 승방으로 들어갔다. 누울 자리를 살피며 침상으로 다가가 바늘을 쥐고 등의 심지를 내렸다. 순간 등잔불이 사라지듯 그녀에게는 마음의 해탈이 일어났다. 기름에 담긴 심지에 불을 붙이면 불꽃은 타오르고 등의 심지를 내리면 불꽃은 사라진다.

마치 등불처럼 반복되는 생사의 고통. 불꽃을 일으키는 기름과 불을 여의고 사라진 등잔불처럼 모든 집착과 욕망을 떠난 그녀의 마음에 열반의 경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파타차라는 생사를 초월한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찬다 비구니 등 수많은 출가자 지도

이후 파타차라는 자신처럼 친족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많은 여인들을 위로하며 그들을 생사로부터 벗어나는 길로 인도했다. 부처님의 만년, 아버지인 파세나디왕을 폐위시키고 코살라국의 왕이 된 비두다바는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로, 특히 석가족에 대해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외가인 카필라성에 갔다가 어머니의 출신 성분이 낮다는 이유로 큰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석가족은 비두다바에 의해 멸망당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석가족의 여인들은 남편과 자식을 잃고 친족을 잃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들에게 파타차라의 가르침은 최고의 위안이 되었던 듯하다. 파타차라는 설한다.

“그 아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면서 당신은 ‘오, 내 아가’라며 슬퍼하는구려. 그 아이가 왔다가 다시 떠난 길을 당신이 알고 있다면 그를 위해 슬퍼하지 마시게. 살아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니….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저 어딘가에서 찾아와, 또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이곳을 떠나가는구려. 그 어딘가로부터 와서 그저 며칠 머문 후에…. 그는 이곳에서 또 다른 곳을 찾아 옮겨가리.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죽어 윤회하며 스쳐지나가는 것이니, 왔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떠나가는구나. 이를 한탄한들 무엇 하리오.” 파타차라의 가르침을 들은 이들은 말했다.

“아아, 당신은 제 가슴에 깊이 박힌 화살을 빼주셨습니다. 당신은 슬픔에 빠져 있는 저로부터 슬픔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화살을 뽑아내고, 집착을 여의며, 평안을 얻었습니다. 이제 저는 부처님과 그 가르침 그리고 승가에 귀의하겠습니다.”

콜레라로 남편도 자식도 친족도 모두 잃고 홀로 7년 동안이나 떠돌며 걸인처럼 살아온 찬다(canda) 비구니도 파타차라로 인해 불법을 만난 여인 가운데 한 명이다. 어느 날 파타차라가 다른 비구니들과 공양을 하고 있는 곳에 한 여인이 서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찬다였다. 파타차라를 비롯한 비구니들은 지난날의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아낌없이 음식을 내주었다. 그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찬다는 공양 후 이어지는 파타차라의 설법을 들었고, 생사의 반복을 설하는 가르침에 마음이 움직여 출가를 청했다. 그리고 파타차라의 지도하에 열심히 수행 정진한 찬다는 불사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 여성은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아들에게 철저히 자신을 맡긴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 생사를 반복하며 탐진치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존재인 이상 완전한 의지처가 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죽음이라는 이름 앞에 무릎을 꿇기도 하고, 때로는 애욕과 집착으로 인해 그녀들을 괴롭히는 짐승으로 돌변하기도 하며, 때로는 폭력으로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 어디서도 위안을 얻지 못하는 그녀들에게 부처님은 완전한 의지처를 구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는 길을 열어주셨다. 파타차라는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삶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지혜를 발견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 지혜를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는 그 시대의 다른 여성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나누어줌으로써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수많은 여성출가자들이 그녀를 존경하며 추종했던 이유이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1071호 [2010년 11월 08일 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