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붓다를 만난 사람들] 11. 난다

淸潭 2010. 10. 12. 13:59

[붓다를 만난 사람들] 11. 난다
 
왕궁의 부귀 버리고 포살·설법 대가 거듭나
기사등록일 [2010년 10월 11일 14:38 월요일]
 

부처님 설법 듣다가 얼떨결에 출가
천상 쾌락도 덧없음 깨닫고 정진행

 
삽화=김재일 화백.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슛도다나왕은 여러 차례 부처님께 사람을 보내어 카필라성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성자가 된 아들의 모습, 아니 그냥 있는 그대로의 아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은 늙은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부처님은 청을 받아들여 고향을 찾았다. 그리고 친족들을 위해 설법을 하셨다.

첫째 날도 둘째 날도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3일째 되는 날, 부처님은 난다가 카필라성의 태자로 책봉되어 새로 마련된 궁전으로 들어간다는 소식, 그리고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난다는 부처님의 이복동생이었다.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남편인 슛도다나왕은 마야부인의 동생이었던 마하파자파티를 후비로 간택했는데, 바로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난다였다.

소문을 들으신 부처님은 난다를 제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는지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부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난다가 기다리다 나와 보니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위해 빈 발우를 들고 계셨다. 부처님께 음식을 드리고자 빈 발우를 받아들자,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그 길로 오던 길을 되돌아가셨다. 당황한 난다는 발우를 돌려드리기 위해 황급히 뒤를 쫓았다. 결국 부처님의 처소에까지 따라가게 된 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다 얼떨결에 출가하고 말았다.

삶의 고통이나 깨달음에 대한 열망, 그 어느 것도 일찍이 느껴본 적 없는 난다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왕의 아들로서 그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아온 그이다. 앞으로는 또 어떠한가? 앞날을 예기할 수 없는 것이 삶이라고는 하지만, 그에게는 왕이라는 지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그에게는 카필라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다는 자나파다칼야니라는 매력적인 아내가 있었다. 이제 막 신혼의 단꿈을 즐기려던 참인데 출가라니…. 출가해야 할 이유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깨달음을 얻어 성인이 되어 고향을 찾은 형의 권유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 저질러버린 일이었다.

결국 출가는 했으나 난다의 심신은 여전히 카필라성의 태자로 머물러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고된 출가생활은 그를 더욱더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난다는 출가하기 전에 아내가 헤어지면서 남긴 ‘빨리 돌아오세요’라는 한 마디를 잊지 못한 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실없는 웃음을 짓거나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공상을 하며 넋을 잃고 앉아 있곤 했다. 또 왕자 시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채 온 몸을 치장하기를 좋아했으며, 때로는 좋은 옷과 발우를 든 채 희희덕대며 시내를 걸어 다니기도 하는 등, 출가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여 부처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곤 했다.

원치 않은 출가로 부처님 원망도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서도 꽃미남 중의 꽃미남이었던 난다였기에 그의 행동은 더욱 더 눈에 띄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또렷한 느낌의 단정한 모습은 부처님을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우 유사한 모습이었다. 형제이니 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 멀리 난다가 오는 모습을 본 비구들이 그를 곧잘 부처님으로 착각하여 일어나서 예를 갖추고 맞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여, 훗날 그를 위한 특별한 색의 옷을 만들어 입힐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아름다운 난다’라는 의미의 ‘순다라난다(Sundarānanda)’라고까지 불렸겠는가.

이 잘생긴 난다는 자신이 두고 온 권력과 부,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채 깊이 방황했다. 게다가 그의 너무 왕성한 성욕 역시 골칫거리였다. 결혼하자마자 부처님의 손에 이끌려 출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솟구치는 성욕을 억제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했다. 이처럼 난다는 세속의 보통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권력과 재물, 잘생긴 외모, 건강, 게다가 아름다운 배우자까지…. 부처님의 뜻을 어기지 못해 반강제로 출가한 난다는 화려한 세속생활을 꿈꾸며 자나 깨나 환속할 궁리 만 했다.

그러나 부처님 역시 질세라 그가 밤중에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정사의 문을 잠그게 하기도 하시고, 또 음욕이 초래하는 재난을 적극적으로 설하시는 등, 그의 환속을 막고자 필사적인 노력을 하셨다. 그러나 난다의 머리속에는 하루라도 빨리 환속하여 아내가 있는 궁전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난다를 데리고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는 그 곳에 있는 늙은 암컷 원숭이를 가리키며 ‘네 아내인 자나파다칼야니는 매우 미인이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 늙은 원숭이와 네 아내 가운데 누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셨다. 난다는 어이 없어하며 대답했다.

‘부처님, 제 아내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찌 저런 늙은 원숭이와 비교하십니까?’그러자 이번에는 그를 데리고 천상계로 올라가 그 곳 궁전에 살고 있는 500명의 천녀들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난다야, 이 500명의 천녀들과 네 아내를 비교하면 어떠하냐? 누가 더 아름다우냐?’라고 물으셨다. ‘늙은 원숭이와 제 아내를 비교할 수 없었듯이, 이 천녀들과 제 아내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제 아내에 비해 이 천녀들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서 법제자로 거듭

이 대답을 들으신 부처님은 난다에게 열심히 수행하면 목숨이 다한 미래세에 이 천녀들과 즐기며 살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난다는 열심히 수행하기는 했지만 그 수행은 애욕을 근본적으로 끊기 위해서가 아닌 천상에 태어나 천녀들과 즐거운 날들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난다의 모습을 지켜보시던 부처님은 그를 다시 지옥으로 데려가셨다. 가마솥에 펄펄 물을 끓이는 모습을 본 난다는 옥졸에게 다가가서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부처님의 동생인 난다를 위해 끓이는 물이라고 대답했다. 천녀들과의 즐거운 삶이 끝난 후에는 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난다는 아연실색했다. 천녀들과의 즐거운 삶이 끝이 아닌 것이었다.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던 난다는 지난날의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열심히 정진했고 멀지 않아 깨달음을 얻었다.

난다의 이런 변화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비구들은 그가 아직 출가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난다에게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난다는 ‘이제 저는 더 이상 재가생활에 미련이나 집착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비구들이 부처님께 난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아뢰자, 부처님께서는 예전에는 난다의 성품이 허술하게 지붕을 이은 집과 같았으나 지금은 지붕을 잘 이은 집과 같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허술하게 지붕을 이은 집에 비가 새듯이, 탐욕은 평정과 통찰의 수행을 닦지 않은 마음에 스며드는 법이다. 지붕을 잘 이은 집에 비가 새지 않듯이, 탐욕은 평정과 통찰의 수행으로 잘 닦은 마음에는 스며들지 않느니라.”

난다 역시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이런 게송을 읊었다고 한다. “나는 올바르게 사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치장에 빠지고, 들떠 있었으며, 희희덕대고, 애욕으로 고뇌하고 있었다. 태양의 후손이며 능숙하게 인도하는 부처님의 도움으로 나는 올바르게 실천하여 미혹의 생존으로 향하는 마음을 뿌리 채 뽑아버렸다.”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도 난다를 걱정하여 방문했다가 난다의 굳건한 마음을 확인하고는 안심하며 ‘이제 난다존자가 아라한이라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고 말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이를 들은 부처님은 단정한 비구로 난다를 이길 자 없다고 하시며 그를 ‘감관을 제어한 자들 가운데 최상의 자’라고 평가하셨다. 깨달음을 얻은 난다는 왕성한 성욕을 제어하여 두 번 다시 성욕에 지배당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가 되었던 것이었다.

난다는 설법교계에도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설법교계란 보름마다 한 번 있는 포살일마다 한 명의 비구가 비구니승가에 가서 설법하는 것을 말한다. 그의 설법교계 능력에 대해 부처님은 ‘난다야, 네가 비구니를 교계하는 것이 나와 전혀 다를 바가 없구나’라고 칭찬하셨다. 또한 비구니들도 그의 설법을 매우 즐겨 한번은 기원정사에서 법을 듣던 중 날이 저물어버려, 사왓티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늦어 성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에 문 밖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벌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훗날 난다는 홀로 조용히 명상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시는 것은 마치 우담바라꽃이 피듯이 진귀한 일이다. 게다가 그 여래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희귀하고도 희귀한 일이다. 모든 것이 휴식하듯 그 분 덕에 나는 번뇌를 남김없이 멸할 수 있었다.” 진리의 세계를 미처 알지 못했을 때, 그는 자신을 반강제적으로 출가시킨 부처님을 죽도록 원망했을 것이다. 왜 원하지 않는 자신조차 출가시켜 이런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에 눈뜬 난다는 이제야 부처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해 주신 부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부처님의 애정 어린 가르침이 없었다면, 평생 실체 없는 무상한 것들에 집착하며 고통 받는 삶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을 것을, 그 분의 인도로 심신의 평안을 얻고 이제 완전한 정신적 자유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우 난다의 변화가 부처님은 또 얼마나 기쁘셨을까. 무상한 재물의 상속이 아닌, 영원한 법의 상속이 이루어짐으로써 부처님과 난다는 피를 함께 나눈 세속의 인연을 이어 다시 한 번 성자로서의 끈끈한 인연을 나누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1067호 [2010년 10월 11일 1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