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붓다를 만난 사람들] 14. 수닷타

淸潭 2010. 11. 23. 13:11

[붓다를 만난 사람들] 14. 수닷타
 
기원정사 건립 등 승단 외호 앞장선 부호
기사등록일 [2010년 11월 22일 13:36 월요일]
 

차별 없는 자비 실천으로 ‘보시제일’ 칭송
오계 수지해야 고용하는 등 전법에도 적극

 
삽화=김재일 화백

부처님께서 활동하시던 기원전 5~6세기 무렵, 갠지스강의 중류 지방으로 이주해 온 아르야인들은 적극적인 개간을 통해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상공업의 발달은 생활 물자의 풍요, 화폐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는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의 형성을 초래했다. 도시에 막대한 부가 축적되자 상공업자들은 다수의 조합을 조직하여 도시 내부의 경제적 실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로 인해 막대한 재산을 지닌 자산가들이 사회의 새로운 실세로 등장하게 된다.

특히 조합장과 같은 위치에 있던 장자(長者, seṭṭhi)라 불리는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자산을 지닌 이들로 때로는 몇 개의 조합을 소유하며 대단한 세력과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초기불교문헌에서는 이들이 초기불교교단의 교화 거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지원자로 거론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성도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로 들어가 빔비사라왕이 보시한 죽림에 머무르고 계셨다. 이곳에는 아직 정사라 불릴 만한 건물은 없었기 때문에, 부처님을 비롯한 제자들은 그저 대나무 숲 안에 있는 나무 밑이나 돌 위에 앉아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이른 아침이었다. 산책을 즐기다 이곳을 지나가게 된 라자가하의 한 장자는 수행승들의 위의 있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다가가 물었다.

“제가 만약 방사 같은 것을 만들어 드린다면 그 곳에 머무시겠습니까?” 아직 방사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던 비구들은 망설이며 부처님께 장자의 뜻을 전했다. 부처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고, 장자는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하룻밤 사이에 60개의 방사를 지어 기진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장자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승원 짓고자 동산 황금으로 덮어

그는 라자가하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장자로 다른 나라에서 무역을 위해 찾아오는 장자들과도 친분이 깊었다. 그 중에는 코살라국의 사왓티에서 온 수닷타라는 장자도 있었다. 수닷타는 라자가하를 찾을 때마다 이 장자의 집에 머물며 친하게 지냈는데, 장자의 여동생과 결혼하게 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더 친밀해졌다. 수닷타가 부처님을 알게 된 것도 이 장자 때문이었다.

사업차 라자가하를 찾은 수닷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장자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여느 때와는 달리 몹시 흥분한 모습으로 장자가 온 집안사람들에게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죽을 끓이고 음식을 만들어라. 국을 끓여라. 맛난 과자를 만들어라”며 손수 공양 준비의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를 본 수닷타는 ‘예전에 이 사람은 내가 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오로지 나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겼는데 오늘은 무슨 일일까’라고 생각하며 “형님, 도대체 무슨 잔치를 준비하기에 이리도 요란스럽게 음식 준비를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장자는 대답했다. “내일 붓다와 그 제자들을 초대하기로 했다네.” “붓다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정말 붓다라고 하셨지요?” 수닷타는 세 번이나 되물으며 확인한 후, 이렇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붓다라 불리는 자는 그 음성을 듣는 것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당장 그 분을 뵈러 가도 될까요?” 내일 아침 적당한 때를 보아 가라는 장자의 권유에 일단 잠자리에 들었지만, 내일이면 붓다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수닷타는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날도 채 새기 전에 부처님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닷타가 부처님을 찾아갔을 때 부처님은 한림에 머무르고 계셨다. 한림이란 시체를 매장하는 곳으로 당시 도시의 주변에 있던 한적한 곳이었다. 썩어가는 사람의 육체를 관찰하며 부정관을 닦기에도 좋고, 또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쉬고 있는 곳이므로 마음의 평안을 얻기에도 좋다 하여 명상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생각되고 있는 곳이었다.

부처님께 다가간 수닷타는 예를 갖춘 후 이렇게 물었다. “간밤에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청정하고, 집착이 없으며, 모든 장애를 여읜 자는 항상 어디서든 편안하게 잘 수 있는 법이니라. 일체의 집착을 끊고, 마음의 고뇌를 제어하고, 평안함에 도달하고, 마음의 적정을 얻은 자는 편안하게 자느니라.” 이어 부처님은 보시, 지계, 생천의 가르침 그리고 여러 가지 욕망이 초래하는 재난과 해악, 더러움 그리고 출리의 뛰어난 이익을 설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수닷타가 건전한 마음과 유연한 마음,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 기뻐하는 마음, 맑은 마음이 된 것을 꿰뚫어 보시고는 고집멸도의 진리를 설하셨고, 수닷타는 마치 한 점의 얼룩도 없는 새하얀 천이 물들 듯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그 자리에서 진리를 보는 눈을 얻었다고 한다.

우바새가 된 수닷타는 내일 자신이 준비한 공양에 부디 꼭 참석해 달라는 말을 남긴 채 장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맛난 음식을 준비하여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대접한 수닷타는 “부처님, 부디 제자들과 더불어 사왓티에서 우안거를 지내주십시오”라며 내년에는 꼭 제자들과 함께 사왓티를 방문해 달라는 청을 올렸다. 그리고 자신은 사왓티를 향했다.

사왓티를 대표하는 장자로 아는 사람도 많았던 수닷타는 지인을 만날 때마다 “승원을 만드시게. 정사를 세우시게. 보시를 하시게. 이 세상에 붓다가 출현하셨다네. 그 분은 내 초대를 받아 이 길을 지나가실 것이네”라며 권유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권유대로 승원을 만들고 정사를 세우고 또 보시를 했다.

사왓티로 돌아온 수닷타는 주변을 돌아보며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머물 만한 토지를 물색했다. 마을로부터 그리 멀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으며, 왕래하기 편하고,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우며, 소음이 적고, 인적이 드물며, 번거롭지 않고, 명상하기 적합한 그런 곳을 찾아 헤매던 수닷타는 어느 날 마음에 꼭 드는 곳을 찾아냈다.

그것은 사왓티성 밖의 남쪽에 있는 동산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토지는 코살라국 파세나디왕의 아들인 제타태자의 소유지였다. 수닷타는 자신이 보시할 이상적인 절의 후보지로 이 토지보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은 없다고 생각하며 기타태자를 찾아가 “왕자님, 저에게 이 동산을 주십시오. 승원을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불자 아니면 사돈 맺기도 거부

태자는 농담 삼아 “원하는 땅 위에 황금을 깐다면, 그 만큼의 토지를 그 황금과 교환하여 너에게 팔겠노라”고 조건을 내걸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어 내건 조건이었으나, 수닷타는 매우 기뻐하며 토지 위에 황금을 깔아갔다. 대부분의 땅을 황금으로 뒤덮었는데, 마지막에 황금이 모자라 약간의 땅이 남았다. 이를 보고 있던 태자는 수닷타의 신심에 놀라며 나머지 땅은 자신이 보시하겠노라고 했다. 수닷타가 땅 위에 깔았던 황금은 당시의 가치로 18억금이었는데, 그는 또 18억금을 내어 정사를 세우고, 18억금을 더 내어 승가에 공양했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된 정사는 다양한 시설을 구비한 이상적인 불교 사원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 19회나 안거를 보내셨다고 한다. 당시 사왓티는 바라문이나 자이나교, 아지비카교 등과 같은 이교도의 세력이 강했던 곳으로 불교교단이 정착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원정사의 건립을 계기로 교화의 거점을 확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수닷타는 신심이 매우 깊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 집안과는 사돈을 맺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자신의 집에 오는 자는 모두 청정한 신앙을 얻어, 죽은 후 천계에 태어나는 자뿐이라고 자신했다. 부처님께서 그 연유를 묻자 “저희 집에서 일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먼저 삼귀의를 시키고 또 오계를 준 후 일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수닷타는 ‘잘 베푸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인데, 가난한 사람이나 고독한 사람, 사문·바라문과 같은 종교인들에게 한없는 자선을 베풀었기 때문에 ‘고독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자’라는 의미의 아나타핀디카(Anāthapiṇḍika)라 불렸고, 언제부턴가는 본래의 이름보다 이 말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보시제일’이라 칭하며 칭찬하셨다고 한다.

당시 인도의 새로운 시대의 기수이자 대표적인 사회적 존재였던 장자들. 막대한 부의 축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는 최고의 위치에 있던 그들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각자(覺者)와의 만남을 고대하는 그들 앞에 부처님이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 속으로 뛰어들었다. 재물이란 쌓이면 쌓일수록 그만큼 욕망도 늘어가는 법. 재물의 노예가 되어 눈앞의 이익만을 쫓으며 살아갈 수도 있는 그들을 부처님은 올바르게 재물을 사용함으로써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셨다.

“노력하여 부를 얻었다 해도 자신만이 그 재산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재산을 축적하고자 하는 욕망의 망자(亡者)로만 남아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으리. 재산은 살려서 사용해야 한다. 재산을 올바르게 사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막대한 부를 얻어도 스스로 즐길 줄도 모르고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지도 못하다 결국 몰수당하거나, 도둑맞거나, 화재나 홍수로 잃거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속인에게 빼앗기곤 한다. 올바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재산이란 이렇게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재산이 적다해서 못 베푸는 것도, 재산이 많다해서 더 베푸는 것도 아니다. 공덕을 쌓기를 원하며 올바르게 진리를 꿰뚫어보는 자야말로 베풀 수 있는 법이니라.” 

이자랑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상임연구원


1073호 [2010년 11월 22일 1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