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산하 복지시설에서 직원들의 퇴직금 등 체불임금을 지급하지 않아 유지재단의 통장이 압류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이번 사건이 불교방송 이사장이자 동국대 이사,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인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이 운영하던 산하 시설에서 발생해 향후 종단의 복지시설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유지재단이 “석왕사가 운영하던 전 부천 스포피아 직원의 체불임금을 유지재단이 지급해야 한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상고심에서 ‘기각’을 결정, 석왕사가 고용한 부천 스포피아 직원들의 퇴직금 등 체불임금을 유지재단이 부담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전 부천 스포피아 직원 14명은 4월 14일 퇴직금을 비롯해 체불된 급여와 이에 따른 법정 이자를 포함, 총 1억 1500여만 원을 강제 추심하겠다며 유지재단의 통장을 압류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직원들이 강제 추심을 진행할 경우 유지재단은 지난 2007년 부천 스포피아의 체불 공과금 7600여만 원을 대납한 것을 포함해 영담 스님이 스포피아를 운영하면서 발생한 총 1억 9000여만 원의 손실액 모두를 떠안아야할 상황이다.
총무원, 종단 재산손실 입힌 건 징계 사유
이와 관련 조계종 총무원은 4월 16일 종무회의를 갖고 이번 사안이 향후 종단의 복지사업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종단 차원의 강도 높은 대응책을 수립하기로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총무원은 부처님오신날(5월 2일) 이전까지 영담 스님을 만나 석왕사가 운영 사찰이었던 만큼 유지재단에 부과된 직원 체불임금을 갚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여의치 않을 경우 영담 스님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 및 종단 차원의 징계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계종 종헌종법에 따르면 ‘사찰 재산의 관리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끼치게한 자’는 최대 공권정지 5년의 징계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영담 스님이 부천 스포피아를 운영하면서 직원들의 체불임금을 지급하지 않아 종단에 큰 손실을 입힌 점은 명확한 징계대상이라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영담 스님이 종회의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징계를 위해서는 전체 종회의원 중 3분의 2 이상 동의를 구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영담 스님, “지관 스님 사과-종무원 징계” 요구
한편 총무원이 영담 스님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도 유지재단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부천 스포피아 수탁 계약에서 제3자에게 관리운영권을 넘기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는 점 때문에 손실액 100%를 모두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종단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영담 스님은 석왕사로 인해 발생한 직원 체불임금 지불은 고사하고 오히려 “복지재단이 스포피아 문제를 언론에 알려 개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재단 대표이사의 사과와 복지재단 종무원의 징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영담 스님은 최근 복지재단에 공문을 발송, “유지재단 대표이사인 지관 스님의 사과와 복지재단 종무원의 징계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스포피아와 관련된 돈을 지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져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총무원 관계자는 “부천 스포피아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1차적으로 운영자인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이 책임져야 한다”며 “그럼에도 그 책임을 종단에 전가하고 그것도 모자라 대표이사의 사과와 종무원의 징계를 운운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100여 개에 이르는 복지재단 산하의 시설들이 석왕사처럼 문제를 저질러 놓고 재단에 떠넘기기 시작하면 종단의 복지사업은 사실상 접어야할 것”이라며 “영담 스님은 승려로서 기본적인 양심마저 포기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유지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전 부천 스포피아 직원 중 일부 직원이 석왕사 부설기관인 송내 사회체육관, 김포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부천 원종사회복지관 등의 복지시설에 재취업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특히 이들 대부분은 유지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시점인 2007년 경 재취업된 것으로 알려져 “영담 스님이 이번 소송의 배후”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부천종합법률사무소의 대표 변호사인 이모 변호사도 영담 스님이 발행했던 「부천시민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한 바 있어 관계자들 사이에선 “우연의 일치로 보기만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영담 스님이 이번 소송의 배후” 의혹도
이와 관련 한 종회의원 스님은 “자신들을 고용한 석왕사 주지가 퇴직금과 급여를 주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면서 또다시 석왕사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에 재취업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정황상으로 보면 이번 소송에 영담 스님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부천 스포피아는 1999년 유지재단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위탁 받아 영담 스님이 주지로 있는 석왕사가 운영해 왔다. 그러나 2005년 9월 근로복지공단이 공개매각을 통해 부평 ‘진리와 은혜’ 교회에 스포피아를 전격 매각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한 석왕사는 공단의 매각 방침에 대한 부당성을 제기하며 같은 해 8월부터 12월까지 발생한 공과금은 물론 직원들의 임금과 퇴직금 지급을 유보했다. 그러자 직원들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수탁 계약을 맺은 유지재단을 상대로 임금 및 퇴직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인천지법 부천지원 재판부는 “부천 스포피아의 실질적 운영주체는 석왕사 혹은 주지 영담 스님”이라며 “부천 스포피아 직원들의 미지급 임금 및 퇴직금에 대한 책임은 석왕사와 영담 스님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직원들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유지재단이 근로복지공단과 수탁계약을 맺으면서 부천 스포피아의 관리운영권을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다고 약정했고, 영담 스님을 시설장으로 임명했다”며 “따라서 부천 스포피아의 운영주체는 유지재단인 만큼 직원 체불임금은 유지재단에서 지급하라”고 원심을 뒤집었다.
이후 유지재단이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되면서, 전 부천 스포피아 직원들의 체불임금은 종단이 책임지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결국 종단 산하 복지시설을 운영하던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이 직원들의 퇴직금과 임금 등을 지급하지 않아 모든 책임을 종단이 떠안게 된 셈이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995호 [2009년 04월 17일 10:58]